Chapter No.5
어둠의 또 다른 면모인 '선명함', 그 안의 '실재'
어느덧 시간이 지나니, 배고픔을 제대로 느끼기 시작했다. 생각해 보니 이게 첫 끼였던 것이다. 나가기 전에 몇 곳 찾아놓고 움직여야겠다 싶어 지도를 켰고, 열심히 검색해 먹고 싶은 음식이 담긴 식당 몇 곳을 찾아냈다. 그리고 시간을 보니 저녁 8시를 향해 달리고 있기에 아늑함을 선사해 준 이 공간과 작별인사를 나누며 밖으로 나갔다. 언젠가 월정리를 다시 여행하다면 그 강아지를 또 만나길 바라는 마음도 품으며.
찾아놓은 곳들이 모두 도보로 갈 수 있어 감사했고, 먼저 그중에 가장 가고 싶었던 곳인 '흑돼지불고기백반집'으로 걸음을 옮겼다. 그러나 이 날 가게는 내부 사정으로 열지 않았는데, 아쉬울 틈도 없이 다음 메뉴인 '갈치 덮밥'집으로 재빨리 움직였다. 자칫하면 하루 통째로 끼니를 거를 수도 있으니 말이다.
다행히도 활짝 열려 있어 곧장 들어가 해당 메뉴와 같이 먹을 미니 탕수육도 함께 주문했다. 첫 끼라 그런지 밑반찬도 감칠맛이 제대로 느껴졌고, 주문한 메뉴들도 남김없이 포식했다. 옆 자리에서 갈치구이까지 주문한 외국인 커플도 있었는데, 어디서 와 얼마나 지냈는지는 모르나 그들도 또한 여유를 즐기는 듯했다. 그런 의미로 시간의 구애를 받지 않는다는 건 곧 여유롭게 살아간다는 걸 내포하는구나 싶었다.
식사를 마치고 밖을 나오니 밤바다가 내 시선을 사로잡았다. 이왕 여기까지 왔고, 이토록 한적한데 결코 지나칠 수 없었다. 마침 식당 앞에 가까이 펼쳐져 있으니, 곧장 움직였다. 원 없이 모래를 밟으며 쭉 돌아다녔는데, 밑창이 더러워지겠다는 생각은 전혀 안 들었다. 오히려 밟을 때마다 촉촉하게 남겨졌다가 물결에 사라지는 발자국들을 보며 흡족해하는 모습만이 드러났다. 심지어 한 가족 식구 말고 바닷가에 아무도 없었으니 마치 이 넓은 바다를 통째로 대관한 것 같아 더욱 행복했다. 그렇게 자국 남기기를 반복하다가 발 앞에 가지런히 자리 잡고 있는 현무암들이 보여, 아까 노을을 바라볼 때처럼 터를 잡고 잠시 사색의 시간을 가져 보았다.
내 시야의 절반 이상을 차지하는 밤하늘을 지긋이 바라봤다. 처음에는 밝은 곳에 눈이 익숙해서 그런지 온통 검은 어둠으로 뒤덮여있었고, 보이는 게 없으니 마냥 거대해 보였다. 그러나 시간이 지나면서 점점 하늘은 남색으로 비치기 시작했다. 더불어 멀리 감치 해안 경계선들도 뚜렷이 보이게 됐다. 놀라울 정도로 환경에 잘 적응하는 내 눈이 신기할 따름이었다. 그러다 보니 내 귀에 들려오는 파도소리도 훨씬 잘 들리기 시작했다. 그렇게 난 밤바다에서 어둠의 또 다른 면모인 '선명함'이 무엇인지 몸소 경험했고, 그 안에 사색은 더욱 풍부해지게 되었다.
"그동안 어둠에 대해 그저 보이지 않는 두려움으로 간주했던 순간이 훨씬 많았구나. 그 안에 스스로를 작게만 여겼던 나에게 이곳 밤바다는 묵묵히 자리를 지켜주길 권하는 듯해. 그래왔던 모습이 당연하나 그 순간 너머엔 비로소 선명히 느끼고 바라볼 수 있는 '실재'가 있다고, 그 실재는 분명 여정에 힘을 더해줄 거라고 또 말하는 것 같아. 생각해 보니 사색은 일정이 꽉 찬 낮보다 일과를 마친 밤에 잘됐네. 어쩌면 어둠은 내게 그 과정을 충분히 누리도록 여지를 마련해 주는 걸까."
물론 그 이상의 선명한 실재와 그 안에 담긴 영감은 무엇인지 당장은 모른다. 아마 앞으로의 여정 속에서 찾아내지 않을까 하는 기대를 가질 뿐이다. 그럼에도 확실한 건 매일 밤은 내게 찾아오며, 이를 찾아낼 기회는 생각보다 많다는 것이다. 그러니 내게 필요한 '묵묵함'을 붙들고 부지런히 여정을 이어가기로 했다. 그리고 마저 파도소리를 충분히 들은 후, 숙소로 가 평안한 잠자리에 들었다.
" 아무도 들리지 않는 것 같은 깊은 바닷속에도 수많은 소리들이 존재하듯이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 어둠 속이지만 우리가 생각하는 모든 것들이 존재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