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장] 교사가 되고 싶어!
어릴 때 만난 한 어른이 저에게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어떤 직업을 가지겠다는 것은 꿈이 아니야. 꿈은 어떤 사람이 되고 싶은지 생각하는 거야.”
그땐 그 말을 이해할 수 없었습니다. 보통 ‘너의 꿈이 뭐니?’라고 물으면 많은 아이들이 ‘선생님이 되고 싶어요.’와 같이 대답하곤 합니다. 저도 그랬습니다. 그런데 ‘어떤 직업을 갖고 싶어요.’가 아니라, ‘어떤 사람이 되고 싶어요.’라고 꿈을 꿔야 한다는 겁니다.
저는 선생님을 꿈꿨습니다. 중학생 때부터 대학생 때까지 그 꿈을 이루기 위해 많은 노력을 하고 달려왔습니다. 그리고 드디어 24살에 꿈을 이루게 되었죠.
2009년 3월, 저는 바다가 보이는 작은 학교에 신규 발령을 받았습니다. 교사가 되어서 학급을 처음으로 맡게 되었죠. 이 순간을 위해 10년을 준비했습니다. 마음속에 열정을 가득 품은 채 교실에 첫발을 내디뎠습니다.
“여러분, 반갑습니다. 난 여러분과 한 해 동안 함께할 담임 선생님이에요. 그럼 출석을 불러볼까요?”
1번 강○○, 2번 김○○, … 7번 박○○, 박○○?
아무리 불러도 박○○는 없었습니다. 그때, 아이들이 꺄르르 웃음을 터뜨리며 뒤쪽을 가리켰습니다. 돌아보니 교실 뒤편의 사물함 하나가 들썩들썩거렸습니다. 사물함으로 다가가 문을 벌컥 열자, 삐쩍 마른 새까만 아이가 튀어나와 배꼽을 부여잡고 웃었습니다. 대학교에서 배운 적도 없고, 상상해본 적도 없는 저의 첫 교직 생활은 그렇게 시작되었습니다.
그 해는 정말 다사다난했습니다. 2층 교실 창문에서 한 아이가 줄넘기를 창밖으로 내리자, 1층에 있던 다른 아이가 그 줄을 타고 올라오려다 다칠 뻔한 적도 있었습니다. 도자기 체험장에서는 반 아이들끼리 치고받으며 싸우다 둘 다 코피가 터지기도 했죠. 주말엔 부둣가에 떠 있던 부표 위에서 놀다가 동생이 바다에 빠져 직접 구해줬다는 한 학생의 이야기에 놀란 적도 있었습니다. 하루가 멀다 하고 사고를 치는 학생들을 수습하는 것만으로도 벅찼습니다.
아이들에게 저는 그저 만만한 초짜 선생님이었을 뿐이었습니다. 아이들을 물리력으로 제압하고 싶지 않았지만, 한 달 만에 사랑의 매를 들고 말았습니다. 그 시절에는 체벌이 허용되었습니다. 체벌 도구의 길이, 횟수 등의 제한은 있었지만 여튼 가능했죠. 사랑으로 대하고 싶었지만, 아이들을 더 효과적으로 지도할 방법을 찾을 수 없었기에 체벌이라는 선택을 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하지만 체벌이 잦아질수록 마음이 무거워졌습니다.
하루는 교무실에서 운동회에 관한 회의를 하다가 수업 종이 울린 한참 뒤에야 교실로 향할 수 있었습니다. 왜 수업 시간인데도 교실로 갈 수 없었을까요? 그 시절 관리자 분들은 수업보다 업무를 더 중요하게 여기셨던 것 같습니다.
2층이던 교실로 급히 올라가던 저는 계단 중간에 한참이나 서있었습니다. 위층에서는 왁자지껄 부서지고 던져지고 부딪히는 우리 반 아이들의 소리가 들려왔지만, 올라갈 수가 없었습니다. 안 봐도 비디오였습니다. 수업 종이 울렸지만 선생님이 없으니 아이들은 고삐 풀린 망아지처럼 그 에너지를 가만히 두지 못했겠죠. 교실에 들어가는 것이 두려웠습니다. ‘지금 무슨 시간이야! 수업 종이 쳤으면 선생님이 없어도 자리에 앉아 있어야지! 교실에서 왜 뛰어다녀!’ 지금 올라가면 또 아이들을 향해 비수를 날리듯 소리를 지르고 혼내야 할 겁니다. 그러고 싶지 않았습니다.
그날 이후 교사로서의 길에 대해 깊은 고민이 시작되었습니다. 이 길이 과연 나에게 맞는지, 내가 아이들에게 좋은 영향을 줄 수 있는 사람인지 확신이 서지 않았습니다. 괜히 주변 사람들에게 걱정을 끼치는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에 하소연하는 것도 쉽지 않았습니다.
“넌 어때? 할 만해?”
“하, 우리 반 애들 때문에 죽겠다.”
“왜? 무슨 일 있어?”
“아니, 아무리 지도해도 애들이 우유를 남기잖아. 안 먹을거면 집에 가져가라고 해도 꼭 2~3개는 교실에 뒹굴고 있다니까.”
“어? 우유 때문에 힘들다는 거야? 나는…, 아니다.”
도시의 큰 학교로 발령받은 친구는 우유 때문에 힘들다고 하였습니다. 또 다른 친구는 교사연구실의 수업 자료(CD, 교재 등) 정리 업무를 맡았는데 해도 티가 안나서 고민이라고 하였습니다. 저는 그 친구들의 고민이 그저 부럽기만 했습니다.
여름 방학이 시작되었고, 2주 간의 방학 캠프가 이어졌습니다. 차가 없었기에 학교 인근 자취방에서 무더운 여름을 보냈습니다. 할 일도 없고 의욕도 없이 무기력한 시간을 좁은 방 안에서 보냈습니다. 지금 돌이켜보면, 그때 저는 무력감과 우울 속에 빠져 있었던 것 같습니다.
방학 캠프가 끝나고 대학 때부터 참여하던 동아리의 모임을 갔습니다. 친구들과 선배들에게 신규 교사로서 힘들었던 일들을 털어놓았습니다. 그들은 제 이야기를 진심으로 들어주고 걱정해주었습니다. 저는 가족과 친구, 선배들의 위로 덕분에 마음을 추스릴 수 있었습니다.
정신을 차리고 왜 저의 마음이 힘들었을지 곰곰이 생각해보았습니다. 아마 저는 교사가 되겠다는 꿈을 이루고 나서 공허함을 느꼈던 것 같습니다. 저에게는 앞으로 달려갈 힘이 생길 수 있는 꿈이 필요했습니다. 그래서 마침내 새로운 꿈을 정했습니다.
“누군가의 나침반이 될 수 있도록 깊은 발자취를 남기는 멋진 어른이 되자.”
어릴 때 들었던 말이 떠오릅니다. ‘어떤 직업을 가지겠다고 꿈꾸지 말고, 어떤 사람이 되고 싶은지 꿈꿔라.’ 그 말이 그제서야 마음에 와닿았습니다. 직업은 꿈을 이루기 위한 하나의 수단일 뿐인데, 저는 그동안 그 수단만 좇고 있었던 거죠. 교사라는 길을 통해 진정으로 내가 되고 싶은 사람의 모습을 정하고 나니, 다시 마음속에 열정이 피어올랐습니다.
지금도 저는 그 꿈을 품고, 매일 조금씩 더 나은 어른이 되기 위해 노력하고 있습니다. 이 글이 저와 비슷한 고민을 하는 선생님들께 작은 위안이 되길 바랍니다. 저의 발자취가 누군가에게 작은 등불이 될 수 있다면 더할 나위 없이 기쁠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