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브런치북 작은 쉼터 07화

작은 쉼터

by 오케야

한밤중, 글의 소재를 찾지 못한 나는 무작정 아파트 뒷길을 걸었다. 브런치 작가로 활동한 지 얼마 되지 않아 본업과 글쓰기 사이에서 균형을 잡는 일이 쉽지 않았다. 머리가 아파 주머니에서 이어폰을 꺼냈다. 이어폰에서 흘러나오는 음악은 나와 세상을 단절시키는 장벽 같았다. 어쩌면 노래만이 들리는 이 시간만큼은 세상과 멀어지고 싶었던 것일지도 모른다.


걷다 보니 버스 정류장의 벤치가 눈에 들어왔다. 사람들에게는 잠시 머물며 쉼을 주는 공간이지만, 막차가 떠난 뒤의 정류장은 버려진 무대처럼 적막했다.

나는 의자에 맺힌 이슬을 옷소매로 닦았다. 맨손으로 한 번 더 닦아낸 뒤 조심스럽게 자리에 앉았다. 차가운 냉기가 의자에서 전해져 옷을 뚫고 허리와 다리를 감쌌다.


벤치에 앉고 정면을 바라보았다. 아파트 창문 몇 곳에 불빛이 흘러나왔다. 시험을 준비하는 수험생, 야근 중인 가족을 기다리는 한 어머니, 혹은 누군가의 늦은 저녁. 수많은 이야기를 담은 불빛이 유리 너머에서 세상과 이어지고 있었다. 하지만 정류장은 텅 비어 있었다. 세상이 분명 존재하는데도, 나 혼자 떠 있는 느낌이었다.


주머니에서 손을 빼서 이어폰을 뽑아냈다. 음악이 멈추자 세상의 소리가 밀려왔다. 발밑에서 바싹 마른 낙엽이 바스락거리는 소리, 멀리서 과속방지턱을 넘는 자동차의 덜컹거림, 정류장 옆 하수구에서 물이 흘러가는 소리가 낯설게 들렸다. 이어폰 없이 듣는 세상은 훨씬 생생했고, 동시에 더 쓸쓸했다.


얼어붙은 공기가 몸을 감싸며 감각을 하나씩 앗아갔다. 머리에서 시작해 팔과 다리로 퍼지는 차가움 속에서, 나는 점점 더 사라지는 기분이 들었다. 나를 이루는 세포 하나하나가 바람에 날리는 먼지처럼 흩어져 세상으로 스며들고 있었다.

그때, 주머니 속에서 진동이 울렸다.


[D-1] 내일은 브런치북 ‘작은 쉼터’ 연재일입니다. 아직 글을 쓰지 않았다면, 독자와의 약속을 지킬 수 있도록 서둘러주세요!


문자 한 줄이 흩어지던 나를 다시 붙잡았다. 감각이 돌아오고 얼굴에 차가움이 다시 스며들었다. 문자를 바라보며 문득 생각했다. 아직은 나를 연결시켜 주는 것이 있구나.


의자에서 천천히 일어섰다. 이어폰은 주머니 속에 그대로 남겨두었다. 차가운 바람이 얼굴을 스쳤지만, 이제는 그 바람의 소리가 낯설지 않았다.


“그래, 아직은 계속 춤춰야지.”


나지막이 중얼거리며 걸음을 옮겼다.


그날 밤, 나는 정류장에서 만난 그 냉기를 기억하며 집으로 돌아왔다.

keyword
이전 06화마리오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