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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 웅덩이

잠시 머물다 사라지는 세상

by 오케야 Jan 17. 2025

눈이 녹은 후, 나는 보도블록 위에 생긴 작은 물 웅덩이를 발견했다. 발길이 멈춘 이유는 단순했다. 웅덩이에 비친 하늘이 눈길을 끌었기 때문이다. 푸른빛을 내고 있는 하늘과 흩어진 구름, 나뭇가지들이 물 위에서 일렁이고 있었다.


브런치 글 이미지 1

웅덩이 속 세상은 현실과 비슷하면서도 달랐다. 나뭇가지는 물결 속에서 찌그러졌고, 구름은 작은 바람에도 조각이 났다. 웅덩이는 현실의 투영이지만 손에 닿을 수 없는, 불안정하고 덧없는 세계였다. 나는 웅덩이 앞에 서서 그 안에 담긴 풍경을 한참 들여다보았다.


웅덩이는 쉬지 않고 변했다. 내 숨결에 흔들리기도 했고, 멀리서 자동차가 내는 진동에도 잔물결을 그렸다. 그 작은 흔들림 하나에도 세상은 사라졌다가 다시 나타났다. 물에 손끝을 살짝 담갔다. 내 손가락이 물속에서 흐릿하게 비쳤고, 웅덩이는 또다시 흔들렸다. 이 작은 공간 안에서도 나의 행동이 영향을 주었다.


그때 바람을 타고 낙엽 한 장이 물 위에 떨어졌다. 낙엽은 잠깐 균형을 이루더니 곧 한쪽으로 기울며 가라앉았다. 그것이 남긴 파장은 금세 물결로 퍼져 나갔다. 웅덩이 속 하늘은 그 흔들림 속에서 조각났다. 내가 보고 있던 풍경도 함께 조각났다. 물 위로 퍼진 풍경은 시간의 자취가 남은 것 같았다.


나는 가끔, 내 마음이 이 웅덩이와 닮았다고 느낀다. 작은 말 한마디에 쉽게 흔들리고, 누구의 행동 하나에 금세 달라지는 모습. 그 변화가 잠깐인 것을 알면서도, 마음속에는 그 흔적이 오래도록 남는다. 사람들과의 관계, 내가 살아가는 순간들 역시 이 웅덩이의 세계처럼 덧없이 흔들리다 사라지는 것이 아닐까.


해가 떠오르면 웅덩이의 세계는 말라버릴 것이다. 그러나 비록 그것이 짧은 순간일지라도, 분명히 의미가 있었다. 잠깐 머물다 사라지는 세상. 그 속에 나를 비추고 나를 돌아보는 시간. 그것이 웅덩이가 내게 남긴 작은 흔적이었다.

금요일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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