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고
초고는 작가의 생각과 감정이 가장 솔직하게 드러나는 순간이다. 퇴고를 거치지 않은, 어쩌면 서툴고 거칠지만, 그래서 더욱 진솔한 원석. 원석은 여러 번 다듬는 과정을 거쳐 보석이 되었을 때, 그 가치가 올라간다. 아름다운 보석처럼 초고도 수십, 수백 번의 퇴고를 거쳐야 빛을 발한다고 믿는다. 그러나 나는 초고 자체에도 아름다움과 의미가 있다고 생각한다.
초고는 작가 그 자체다. 작가의 생각이 어떤 필터도 거치지 않고, 날것 그대로 표현된 상태다. 잘 다듬어진 문장은 독자의 마음을 매끄럽게 스친다. 하지만 초고는 다르다. 초고는 날것의 힘으로 독자의 마음을 파고든다. 필터 없이 드러난 작가의 진짜 모습이기 때문이다.
나는 초고의 힘을 믿는다. 초고는 내가 처음으로 글을 통해 나를 드러내는 순간이다. 그렇기에 초고는 미숙할 수밖에 없다. 오타가 있을 수도, 문맥이 어색할 수도 있다. 하지만 그 속에는 나 자신이 담겨 있다. 진짜 내 모습, 숨기지 않은 생각들이 녹아 있다. 그리고 나는 그런 초고의 가치를 독자들에게도 전하고 싶다.
글에는 힘이 있다. 잘 다듬어진 글은 사람들에게 울림을 주고, 용기를 건넨다. 하지만 진짜 힘은 글에 담긴 진솔함에서 나온다고 생각한다. 그것이 완벽하게 세공되지 않은 초고라 하더라도 말이다. 초고는 우리 모두에게 존재한다. 우리가 머릿속으로 처음 품었던 생각들, 어설프고 투박하지만 진심이 담긴 모습들. 그것은 결코 사소하지 않다.
가끔은 삶도 초고와 같다. 어설프고, 부족하고, 수많은 실수를 품고 있지만, 그것도 우리 자신이다. 중요한 것은 그 초고를 다듬어가는 과정이다. 나는 내 글이 누군가의 마음에 닿아, 그들이 자신의 초고를 발견하고 소중히 여길 수 있기를 바란다.
결국, 초고는 나 자신을 마주하는 첫걸음이다. 그것은 부족하기에 더 아름답고, 솔직하기에 더 강렬하다. 그리고 무엇보다, 초고는 시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