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0살인데 신입입니다

by 향글

나는 요즘 출판영상디자인 과정을 듣고 있다.

어느 홈페이지에서 '국가지원 프로그램'이라며 광고하는 것을 본 적이 있었는데 우연히 남편이 인스타그램에서 보고 다시 알려줘서 진지하게 생각해 보게 되었다.

앞이 안 보이도록 눈이 펑펑 오는 날 눈길을 헤치고 상담을 받으러 갔다. 디자인 경험이 없는 사람들도 수업을 들을 수 있고 국가지원 프로그램이라 내일 배움 카드로 수업을 들을 수 있으며 (수업료 무료) 훈련장학금까지 받을 수 있다고 한다. 그리고 취업까지 연결해 준다고 하니 이 사기에 가까운 too good to be true 인 이야기를 듣고서도 ‘정말 좋은데 조금 더 생각해 볼게요’ 하고 집에 돌아왔다.


우선 매일 9시 30분부터 6시까지 full time으로 진행되는 교육과정이 부담스러웠고 교육을 받는다고 디자인 업계에 경험이 전무한 나에게 취업의 기회가 올 수 있을까?라는 두려움이 앞섰다. 또한 과정을 잘 마치더라도 '누가 50살 신입을 뽑아 줄까?' 하며 움츠려 들기만 했다.


그러다가 매일 집에 있는 시간이 무료해지고 무언가 할 일이 필요하다고 생각되었을 때 결정하게 되었다.

‘그래, 돈 드는 것 아닌데 일단 해보자’

지금이 아니면 다시 해 볼 마음이나 기회가 생길 것 같지 않았다.

처음 상담 하고 난 뒤로 두 달을 고민하다가 내린 결정이었다.


일러스트, 포토샵, 인디자인, 프리미어와 애프터이펙트까지 순차적으로 5개월에 걸쳐 배우는 대장정이다. 학원에서 하는 강좌 중에는 일러스트만, 또는 영상 편집만 따로 하는 강좌도 있었지만 욕심 많은 나는 모든 걸 다 배우는 과정을 택했다. 수업을 시작했을 때 적절히 아는 것도 있고 새로 배우는 것도 있고 재미있었다. 무엇보다 강사나 수업의 내용 꽤 알찼다.

8시간 가까이 되는 수업 시간을 강의와 실습이 꽉 채우고 있고 중간중간 평가도 있기 때문에 긴장하면서 들어야 한다. 솔직히 수업 환경은 그리 쾌적하지는 않지만 30 명이 한 곳에서 컴퓨터 수업을 듣는데 그 열기와 답답함은 어쩔 수 없이 감당해야 할 것 같았다.


중간에 50분 정도 점심시간이 주어진다. 근처 식당에서 며칠을 사 먹다가 어느 날 보니 많은 수강생들이 도시락을 싸와서 휴게실이며 복도 벤치에 앉아 도시락을 먹고 있는 것을 보게 되었다. 그 뒤로는 도시락을 싸가지고 다니는데 매일 뭐 먹을지 고민할 필요도 없고 번거롭게 왔다 갔다 하는 시간을 줄일 수 있어서 아주 좋았다. 내가 먹는 도시락을 싸는 것이니 크게 신경 쓸 것도 없다. 냉동실에 있는 닭가슴 살이나 부엌 팬트리에 있는 컵밥이나 구운란, 사과 등 아무거나 눈에 띄는 데로 락앤락 통에 넣어 가지고 온다.

점심시간이 되면 교실 밖 복도의 벤치에 벽을 보고 앉아서 집에서 대충 싸 온 맛없는 도시락을, 그것도 체할 세라 꼭꼭 씹어먹으면 현타가 오곤 한다.

‘내가 지금 이 나이에 20,30대와 경쟁하며 이 먼지 많은 곳에서 하찮은 점심을 먹으며 교육을 받아야 하나’ 하는 생각이 들 때가 있다.

그러면 나는 곧바로 ‘그럼 너는 어디에서 어떤 대우를 받아야 하니’라는 질문을 하곤 한다.


이런 점심시간도 이내 곧 적응이 되었다. 나는 원래 혼자 밥 먹는 게 그리 힘들지 않다.

많은 수의 교육생들도 점심을 싸와서 핸드폰을 보며 각자 점심을 먹고 있기 때문에 혼자 밥 먹는 것이 그리 어색한 환경도 아니다. 나의 경우, 하루 종일 컴퓨터 모니터를 보는데 점심시간까지 핸드폰을 보고 싶지 않아서 그냥 벽을 보고 점심을 먹는다. 특별한 문양도 없는 지루한 회색 실크벽지가 도배된 벽을 보면서 점심을 꼭꼭 씹어 먹으면서 ‘아, 밖이 훤히 내다 보이는 창이라도 있으면 좋으련만' 하고 아쉬워할 뿐이다.


혼자 대충 점심을 때우는 것이 마음에 쓰였는지, 우리 남편은 가끔 김밥 도시락을 싸준다. 특별한 내용물이 들어간 것이 아닌, 매운 어묵이나 불고기등 냉장고 반찬을 털어서 만드는 아주 간단한 김밥이다. 나는 그 김밥 도시락을, 남편의 응원과 사랑을 함께 받으며 맛있게 먹는다. 내가 교육을 받기 시작 한 이후로 우리는 조금 더 자주 김밥을 먹게 되었다.


아주 가끔 ‘내가 괜히 엉뚱한 곳에 시간 낭비를 하고 있는 것이 아닌가’라는 불안함이 불쑥 고개를 내밀 때가 있다. 그럴 때 나에게 용기를 주는 글을 만났다.


“할 것인가, 말 것인가? 시도해야 하는 가, 포기해야 하는가? 용감하든 그렇지 않든, 우리는 대부분 ‘하지 않는’ 쪽을 선택한다. 고민하는 내내 ‘불확실하다’와 ‘실패할 것이다’라는 문장이 머릿속에서 무서운 경고처럼 떠다니기 때문이다. 그래서 우리는 아무것도 하지 않는 ‘불행’을 선택한다.” (타이탄의 도구들 중에서)


최소한 아무것도 하지 않는 불행한 상황은 피한 것 같다.

'50살이 되어 다시 신입직원이 된다면, 혹시 그것이 좋은 성공 사례가 될 수 있다면 그것 만으로 의미 있는 일 아닐까?'

항상 그렇듯이 무엇을 새롭게 시작하기 전에는 나의 선택이 다가올 미래에 어떤 성공을 가져다줄까 하는 기대만 한다. 그렇기에 '불확실하다'라는 고민과 '실패할 것이다'라는 두려움을 가지고 많은 시간을 보내게 된다. 그 고민과 두려움을 벗어던지고 꼭 잘 되어야 한다는 욕심을 조금 내려놓으면 오늘의 나는 충분히 행복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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