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때는 알지 못했다

by 향글

살다 보면 누구나 곤경에 처하고, 견디기 힘든 고통과 마주하는 순간들을 경험한다. 그런 시간들 속에서 우리는 하나님이든, 부처님이든, 조상님이든, 혹은 자신이 믿는 어떤 초월적 존재에게 간절히 기도했을 것이다. 종교의 유무와 상관없이, 무릎을 꿇고 오열하며 애원했던 그 순간들을 떠올려본다.

간절한 마음으로 기도할 때, 우리는 이 상황을, 이 고통을 벗어나게 해달라고 눈물과 콧물을 흘리며 애원한다. 하지만 신은 우리가 기대했던 드라마틱한 응답을 주지 않는다. 이것이 신을 믿지 않게 되었다는 의미는 아니다. 다만 성경에서 보았던 불타는 떨기나무, 홍해가 갈라지는 그런 기적을 바랐을 뿐이다. 그러나 그토록 바라던 스펙터클한 해프닝은 일어나지 않았다.


인간의 욕망은 참으로 끝이 없다는 것을 나 자신을 통해 깨닫는다. 몇 개월 전만 해도 몸과 마음이 너무 힘들고 아팠고, 그저 건강해지기만을 바랐다. 그런데 조금씩 건강을 회복해 가자 이제는 돈을 원하게 되었다. 마치 물에 빠진 사람을 구해주었더니 보따리를 내놓으라고 하는 격이다.

새벽, 빗물 떨어지는 소리에 잠에서 깨어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전 직장을 때려치운 것이 과연 잘한 일이었을까? 내가 먼저 그만두겠다고 하지 않았다면, 지금도 그냥 어영부영 잘 해내고 있을 텐데. 하지만 곧 당시의 내 모습이 선명하게 떠올리며 후회를 떨쳐냈다. 스트레스와 피로에 찌든 얼굴, 퉁퉁 부은 팔다리, 밤마다 찾아오는 불면, 그리고 이틀에 한 번씩 술잔을 기울이던 나. 그렇게 살다가는 결국 무너질 것이라는 직감이 있었다. 어쩌면 나는 나 자신을 구해낸 것인지도 모른다.


그토록 힘들었던 그때, 신은 구름을 타고 내려와 '일을 그만두고 쉬어라'라고 명령하지 않았다. 출근할 때마다 짜증으로 하루를 시작하는 내 모습이 스스로 너무 보기 싫어서, 결국 그만두겠다고 결심했을 뿐이다. 일을 그만둘 만한 외부적 요인은 전혀 없었다. 모든 것은 내 안에서 시작되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새벽에 잠깐 후회 비슷한 감정이 스쳐간 것은, 아마도 지금의 형편없는 급여 때문일 것이다. 면접을 보러 갔을 때도, 처음 출근했을 때도, 그곳의 업무 분위기와 사람들이 너무 좋아서 참 다행이라고 생각했다. 어쩌면 내가 원하던 바로 그런 일일지도 모른다는 기대에 들떠 있었다. 하지만 첫 급여를 받는 순간, 손바닥 뒤집듯이 생각이 완전히 바뀌었다. 그제야 깨달았다. 안정적인 보수 또한 나에게 정말 중요한 것이구나. 지금까지 나는 정해진 급여를 받고 그만큼 일했으며, 승진하여 보수가 올라가면 더 열심히 일하는 방식으로 살아왔다. 이번처럼 잘 이해되지도 않는 성과급으로 계약을 해본 것은 처음이었다. 급여를 받고 난 후 가장 먼저 든 생각은 '더 이상 일하고 싶지 않다'는 것이었다.


이번 경험을 통해 나는 내가 어떤 사람인지, 그리고 어떤 일을 진정으로 원하는지를 다시 한번 깨닫게 되었다. 동시에 이것 또한 알게 되었다. 상황이 바뀌면 내 마음 역시 흐르는 물처럼 변할 것이라는 사실을.

신의 응답은 어쩌면 그 드라마틱한 기적 속에 있는 것이 아니라, 변화하는 상황 속에서 끊임없이 나 자신을 돌아보고 깨닫게 만드는 이 과정 그 자체에 있는 것은 아닐까 생각한다.


지금 알고 있는 걸 그때도 알았더라면 – 킴벌리 커버거

지금 알고 있는 건 그때는 전혀 알 도리가 없다 – 나


지금 알고 있는 걸 어떻게 그때는 전혀 알 도리가 없다.

그렇고 그런 지루한 시간이 쌓여서 오늘의 내가 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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