톨스토이의 단편소설 “사람은 무엇으로 사는가”에는 하나님의 노여움을 사서 인간 세상으로 내려보내
진 천사, 미하일이 나온다. 미하일은 세 가지 질문에 대한 답을 찾아야만 다시 하늘나라로 갈 수 있었다.
그 세 가지 질문은,
사람 안에 있는 것은 무엇인가?
사람에게 주어지지 않은 것은 무엇인가?
사람은 무엇으로 사는가?
미하일은 추운 겨울, 옷도 입지 못 한채 인간 세상으로 내 쫓겨 가난한 구두 수선공 세몬에게 발견된다. 추운 겨울날 실오라기 하나 걸치지 않고 길에서 떨고 있는 청년을 못 본채 할 수 없었던 세몬은 그 청년을 구해서 집으로 데리고 간다. 그 청년의 정체가 신의 천사 인 줄도 모르고…
미하일은 세몬의 구둣방에서 기술을 익혀 아주 성실하게 일을 했다. 그리고 세 가지 질문에 대한 답도 얻어갔다. 미하일은 처음 인간 세상에 왔을 때 추위와 배고픔에 떨고 있었는데, 세몬 부부가 그를 조건 없이 돌보는 모습을 보고 “사람 안에 있는 것은 사랑”임을 깨닫는다. 그것이 첫 번째 질문에 대한 답이었다. 두 번째 질문인 “사람에게 주어지지 않은 것은 무엇인가?”에 대한 답은 한 부자가 값비싼 가죽으로 오래 쓸 수 있는 튼튼한 장화를 주문했건만 그 남자는 그날 저녁 갑자기 죽음을 맞이한다. 이 것을 보고 미하일은 사람에게 주어지지 않는 것은 미래의 운명을 알 수 없다는 것을 깨닫는다. 미래에 어떻게 될지 모르기 때문에 자신에게 필요한 것을 모른다. 마지막으로 “사람은 무엇으로 사는가?”에 대한 답은 가난한 여인이 남편을 잃고 고난 속에서도 애틋하게 쌍둥이 딸을 키우는 것을 보며 “사람은 사랑으로 산다”라는 깨달음을 얻는다.
책 제목부터 너무 읽고 싶은 “사람은 무엇으로 사는가?”를 읽고 나서 생각에 잠겼다. 깊은 철학이 있을 것 같은 제목이지만 내용은 동화에 가까운 재미있는 우화처럼 전개된다. 책을 읽고 나면 “그래~ 사람은 사랑으로 사는 거지” 하며 고개를 끄덕이지만 이 상황이 실제로 일어난다면 당신은 어떻게 할 것 인가?
우선 추운 겨울 눈밭에서 추위와 배고픔에 떨고 있는 청년을 본다면, 나는 선뜻 구조의 손길을 내밀 수 있을까? 내가 직접 도와주진 못 하더라도 경찰서에 전화를 할 수는 있겠다. 이게 현실적으로 더 맞겠다.
2년 정도 되었을까? 나는 추위에 떨고 있는 천사를 만나지는 않았지만 아주 기억에 오래 남는 사람을 만난 적이 있었다.
원어민 강사 한 명이 갑자기 그만두게 되어 정말 힘들게 여기저기 수소문한 끝에 새로운 강사를 채용했다. 미국인 여자 강사였는데 첫인상을 잊을 수가 없다. 온라인으로 면접을 보았는데 실제로 만났을 때는 같은 사람인가 내 눈을 의심할 정도였다. 온라인 화면으로는 이동 중인 차 안 이었는지 화면이 어두웠다. 얼굴은 자세히 볼 수 없었지만 목소리에서 선생님의 아우라가 느껴졌다. 바로 포지션 제안을 했고 선생님은 제안을 받아드려 일주일 뒤 한국에 도착했다.
그렇게 눈에 띄는 외모를 가진 선생님은 처음이었다. 너무 가늘고 왜소했으며 턱이 긴 얼굴은 살이 없어서 더 길어 보였다. 어두운 피부톤이라 하더라도 얼굴이 푸석하고 혈색이 없었다. 살이 없는 얼굴에 크고 또렷한 눈코입이 부각되었고 두 눈은 반쯤 감겨 있어 피곤한 기색이 역력했다. 체구가 작은 것이 문제가 아니라 너무 야위어서 전체적으로 나약해 보였다. 부러질 듯 가느다란 팔다리는 마치 며칠 동안 제대로 된 식사를 하지 못 한 피난민처럼 위태롭게 흔들렸다. 긴소매와 긴 바지를 레이어로 입고 있는데도 가냘픈 팔다리에서 시선을 뗄 수가 없었다. 비행기 여행이 힘들었는지 눈 주위가 움푹하고 대충 하나로 묶은 머리도 여기저기 삐져나와 볼품이 없었다. 초면에 몹시도 실례가 되는 말이지만 어디 아픈 곳이 있는지 묻지 않을 수 없었다. 그녀는 그저 비행기 여행으로 피곤하다고 했다.
어차피 채용 신체검사를 해야 비자를 받을 수 있으므로 병원에서 검사를 받았다. 검사 결과는 놀랍게도 모두 정상. 하지만 40대 여성의 체중이 초등학교 3~4학년 정도의 체중 밖에 되지 않았다. 나는 결례를 무릎 쓰고 신체검사를 담당했던 간호사에게 물어보았다.
“이분 건강하신 거 맞죠?”
그러자 간호사님도
“네… 저희도 참 희한하다 했어요” 하며 작은 목소리로 말했다.
병원에서 괜찮다고 하니 더 이상 고민 하지 않고 채용하기로 했다.
몇 주 동안 같이 일하면서 지켜보니 그녀는 잘 먹지 않았다. 주로 커피나 밀크티를 마시는데 그것도 다 못 먹고 항상 남겼다. 혹시 돈이 없어서인가? 아니면 해 먹기 귀챦아서 인가? 신체적으로 소화가 안 되는 걸까? 등 나 혼자 오지랖을 부리며 상상의 나래를 펼쳤다. 그런 생각을 하면서 나라는 사람은 지성인인척 하면서 참으로 속이 좁다고 생각했었다.
너무 뚱뚱해도 흠이 되고 말라도 흠이 되는 세상.
그리고 흠잡히지 않기 위해서 열심히 외모를 가꾸는 사람들.
톨스토이의 사람은 무엇으로 사는가? 이야기가 생각났다. 만약에 신의 천사가 저 강사의 모습을 하고 왔다면? 내가 얼마나 모순적이고 편협한 생각을 가지고 있는지 테스트를 하고 있는 것이라면?
이렇게 생각하니 그 강사에 대한 쓸데없는 궁금증과 오해가 사라졌다. 솔직히 말해서 아주 조금 사라졌을 뿐이다. 그 강사를 보면서 내내 “도대체 무슨 사연일까…?”를 생각 안 할 수 없었으니까.
편견 없이 세상을 바라보기란 말처럼 쉬운 게 아니었다.
그녀의 외모가 조금 남다르다는 이유로 나는 그녀와 친해지지 못했다.
그리고 다른 선생님들도 그녀와 친해지지 못했다. 하루가 멀다 하고 그녀에 대한 불평불만이 접수되었다. 매일 지각하고 오후가 되면 거의 방전되어 앉아 있는 모습, 회의시간에는 꾸벅꾸벅 조는 모습들이 포착되었다. 그녀는 3개월을 일하고 다른 곳으로 떠났다.
다른 곳에 이력서를 넣었는지 레퍼런스를 체크하는 전화가 나에게 걸려왔고 그 뒤로 6개월인가 후에는 태국의 국제학교에서 레퍼런스를 묻는 연락이 또 왔었다. 나는 성심성의껏 대답해 주었고 우리 원에서 문제가 있었던 것도 솔직하게 이야기해 주었다. 안타깝게도 몇 개월마다 이동을 하는 것 같았는데 그런 그녀의 생활은 이력서에도 고스란히 나타났었다. 우리 원에 오기 전에도 중국, 베트남, 태국, 미국, 사우디아라비아, 쿠웨이트 등 동분서주하며 직장을 옮겨 다녔었다.
모두 일 년 이상 머무른 곳이 없었다.
그래도 그녀가 나에게 알려 준 게 있다면 신의 천사가 나를 시험하기 위해 예기치 못 한 볼품없는 모습으로 찾아왔을 수도 있다는 사실이었다. 그 뒤로 너무 이해가 안 되는 상황이나 이상한 사람을 만나면 ‘나의 인간성을 확인하기 위한 신의 시험’이라는 생각을 하곤 한다. 그러면 조금은 감정 통제가 된다.
톨스토이의 아름다운 이야기처럼 추위에 떨던 청년이 눈부시게 하얀 모습으로 천사가 되어 하늘나라로 돌아갔다는 결말은 현실에는 없었다. 그녀는 내가 도와야 할 사람이 아니었을까? 하는 생각이 들면서 누굴 돕는다는 것은 상당한 용기가 필요하다는 것을 깨닫는다.
Pixabay로부터 입수된 Karina Cubillo님의 이미지 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