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저녁으로 세수하는 찬물이 춥게 느껴진다면 가을이 온 것이다.
하늘이 끝없이 파랗고 차가운 공기사이로 내리쬐는 따뜻한 햇살의 대조는 이 시기만 맛볼 수 있는 것이다.
내가 가장 좋아하는 계절 가을이 무르익어 가고 있다.
회사 다닐 때, ‘회사를 그만두게 되면 난 가을에 그만둘 거야’라고 이야기한 것이 생각이 났다.
그만큼 난 가을을 좋아했고 가을 날씨와 가을 풍경을 사랑했다.
점심 먹으러 나왔다가 싸늘해진 공기 사이로 붉고 노란 단풍이 우거진 가로수 길을 걷노라면 절대로 다시 희뿌연 형광등 불빛 아래로 들어가고 싶지 않았다.
노랗고 붉은 색감은 눈으로 보기에도 즐겁다.
싸늘한 날씨가 옷깃을 여미게 되는 계절, 그리고 다가오는 크리스마스에 대한 기대로 마음만이 푸근해지는 그런 가을을 난 사랑 한다.
기억에 오래 남았던 영국 여행도 가을에 다녀왔다.
영국을 갈 때도 이렇게 예쁜 한국의 가을을 잠시 뒤로하고 우울하기로 유명한 영국날씨를 향해서 가는 것이 조금 꺼려지기도 했다.
우중충한 영국 날씨를 잊게 할 정도로 호흡이 잘 맞았던 여행 메이트 덕분에 다행히도 여행하는 내내 행복했다. 전 직장에서 같이 일하던 동생이 영국에서 유학 중이었고 또 다른 직장 동생이 함께 여행길에 올랐다.
2주 동안 런던과 바스를 여행했는데 머무는 동안 거의 매일 부슬부슬 비가 왔다.
비가 많이 올 때는 옷을 다 적실 정도로 왔는데 나중에는 꼬박꼬박 챙겨 쓰던 우산도 내팽개쳐 버렸다.
자세히 보면 관광객들만 우산을 쓰고 다닐 정도로 영국사람들은 우산을 잘 안 쓰고 다녔다.
날씨에 상관없이 내가 좋아하는 가을에 하는 여행은 그 자체로
그리고 좋아하는 사람들과의 동행 그 자체로 충분히 행복했다.
비가 짧게 짧게 오다 그치고 나면 습하고 서늘한 그 날씨마저 좋았다.
특히 바스의 어느 성당 앞에서 기타 연주하던 청년,
그 아름다운 소리에 매료되어 가던 길을 멈추고 그 카페에 자리 잡았다.
기타 연주 덕분인지 카페는 많은 사람들로 북적였다
밖에 자리를 잡고 앉아서 기타 연주를 들으며 얼마나 시간이 흘렀는지 모르겠다.
지금이 몇 시인지, 우리가 얼마나 그 자리에 앉아 있었는지, 이 자리에서 일어나면 뭘 해야 하는지는 중요하지 않았다. 그냥 그 자리에 시간이 멈춰버린 듯했다.
희한하게도 바스에 있는 3일 동안은 비가 오지 않아 모처럼 보송보송하게 여행을 즐길 수 있었다.
항상 내가 무엇을 하고 무엇을 생산했는지 평가받는 이 사회에서 아무것도 하지 않고 노천카페에서 기타 연주를 들었던 그 시간이 최근 들어 내가 살았던 순간이라고 말하고 싶다.
많이 걸어서 지친 우리들은 잠시 수다를 멈추고 커피를 마시며 그냥 시간을 보냈다.
지금 나는 살아 있는데 나를 살아있다고 느끼게 하는 것이 무엇인지...
평상시 나는 모든 행동에 목적을 가지고 의미를 찾는데 급급했고 뭐든 생산해내려고 했으며 그러지 않으면 계획을 세웠다.
내가 가장 좋아하는 가을이 너무 익어버려 먹지 못하게 되기 전에 얼른 즐기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