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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스로 만드는 번아웃의 세계

가짜노동  |  데니스 뇌르마르크 & 아네르스 포그 옌센(이수영 옮김)

by 이달밤 Apr 03. 20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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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눈에 확 띄는 붉은 표지, 초점을 잃은 맹한 표정의 신사, '노동의 신성함'이라는 전통적인 가치에 도전하는듯한 도발적인 제목에 이끌려 집어든 데니스 뇌르마르크 & 아네르스 포그 옌센의 <가짜 노동>


    이 책의 저자들인 데니스와 아네르스는 서로 정반대의 정치적 스탠스를 취하고 있으면서도 중간 지점에서 타협하지 않고 각자의 '상식과 건전한 판단력'에 의지해 이 문제에 접근했다고 설명한다. 이들이 처음 만났을 때의 토론 주제는 고소득 노동자들이 오히려 시간이 남아돈다는, 이른바 '텅 빈 노동(Empty Labor)'에 관한 것이었다. 요약하자면 현대의 직장인들이 굳이 안 해도 그만인, 무의미한 노동으로 그들의 근로시간을 채우고 있다는 것이다. 이들은 취재에 앞서 '빈둥거리기', '시간 늘리기', '일 늘리기', '일 꾸며내기'로 대표되는 텅 빈 노동의 개념에 '그럼에도 불구하고 급여를 받는 일', '그럼에도 불구하고 조직에서 요구하는 일' 등 구조적인 요소들을 더해 비로소 가짜 노동(Pseudo-work)이라는 용어를 정의해 냈다. 그리고 공공 부문과 민간 부문 어디든 가짜 노동의 실태를 고발할 취재원들을 찾아다니며 그 실체를 밝혀낸다. 



    우리는 오래 일한다. 그러나 사실은 할 일이 그렇게 많지 않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지쳐 있다. 누군가는 이 현상을 보고 "네가 뭘 했다고 힘들어?"라고 비난할지도 모른다. 하지만 알 만한 사람들은 다 알 것이다. 의미 없는 일을 하면서 오래 앉아 있는 것이 얼마나 힘든 일인지, 그 순간 자신이 얼마나 무가치하고 쓸모없게 느껴지는지. 더욱 심각한 문제는 이러한 일들을 우리가 하고 싶어서 하는 게 아니라 급여를 받으면서 하고, 지시를 받으면서 하며, 조직이 요구해서 한다는 것이다.



    근로시간이 길고 일 많이 하기로 소문난 우리에는 적용되지 않는 이야기인가? 아니, 오히려 우리는 덴마크의 직장인들보다 더 긴 시간 동안 더 많은 '가짜 노동'에 시달리고 있는 것일지도 모른다. 그렇다면 가짜 노동이 어떤 배경에서 등장한 것이고, 어떤 문제를 일으키는지, 우리는 이 문제를 어떻게 풀어나가야 할지 들여다보자.






라이트, 케인스, 러셀의 미래상

왜 현대 인류의 노동시간은 줄어들지 않았는가?


    산업혁명으로 시작된 근대의 기술 진보가 거의 완성 단계에 접어들면서 현대 사회로 접어들 준비가 한창이었던, 지금으로부터 100년 전. 각 분야의 석학들은 인류가 고된 노동에서 벗어나 여가와 여유가 넘쳐흐르는 삶을 살게 될 것이라고 낙관했다. 


    건축의 거장이었던 프랭크 로이드 라이트(Frank Lloyd Wright, 1867-1959)는 '브로드에이커 시티(Broadacre City)'라는 도시 계획안을 통해 '미래의 노동자들은 오전 10시에 도시로 몰려왔다가 오후 4시가 되면 쫙 빠져나갈 것이며, 일주일에 사흘만 그렇게 일하고 나머지 4일은 '브로드에이커 시티'에서 정원을 돌보며 삶을 즐기고 자연과 교감'이라고 예측했다. 경제학의 거장 존 메이너드 케인스(John Maynard Keynes, 1883-1946)는 1930년에 출간한 <손주들을 위한 경제학적 예측(Economic Possibilities for our Grandchildren)>이라는 짧은 글을 통해 '100년 후에는 경제적 문제가 상당 부분 해결되어 주 15시간 노동으로도 충분하게 될 것'이라고 예측했다. 그런가 하면 철학의 거장인 버트런드 러셀(Bertrand Russel, 1872-1970)노동 가능한 인구의 절반이 전쟁터에 끌려나간 와중에도 인류가 이루어낸 획기적인 생산력 향상주목하며, 절반이 다시 일터로 돌아오는 평화의 시대에는 기존 대비 절반의 노동시간으로도 같은 번영을 누릴 수 있으리라 믿었다. 미래 인류의 노동시간 단축은 어느 몽상가들의 대책 없는 낙관론이 아니었던 셈이다. 당대의 내로라하는 석학들입을 모아 그렇게 예측했으니 말이다.


    라이트, 케인스, 러셀이 살아 돌아와 우리에게 몇 시간이나 일을 하는지 물어본다면 우리는 어떻게 대답해야 할까? 왜 아직도 그렇게나 많은 시간을 일하는지 물어본다면 어떻게 대답해야 할까?

프랭크 로이드 라이트의 '브로드에이커 시티'. 집집마다 큰 정원과 텃밭이 딸려 있는 풍경을 볼 수 있다.프랭크 로이드 라이트의 '브로드에이커 시티'. 집집마다 큰 정원과 텃밭이 딸려 있는 풍경을 볼 수 있다.






가짜 노동이 지배하게 된 세상

서로를 믿지 못한 대가, 가짜 노동이라는 형벌 


   라이트, 케인스, 러셀의 예측은 절반만 맞았다. 한동안은 근로시간이 줄어드는 듯하다가 어느 순간부터 그 감소세가 완만해지는가 하면, 어떤 나라에서는 근로시간이 다시 늘어나기도 했다. 농업혁명이 시작된 이후로부터 인류의 노동시간은 계속해서 증가하다가 산업혁명 직후 정점에 달했다. 산업혁명 시대의 고된 노동의 대가로 인류는 비약적인 문명의 진보를 이루어냈다. 그러나, 과잉 노동에 따른 문명의 진보는 노동의 신성함을 예찬하는 일종의 ‘신화’를 탄생시켰다. 일 안 하는 귀족들이 지배하던 사회는 일하는 자본가가 지배하는 사회로 전환되었다. 



    저자는 '누군가 더 효율적으로 시간을 절약하는 방법을 알아낼 때마다 누군가는 그 시간을 사용할 새로운 방식을 알아내곤 했다'라며, 이른바 '가짜 노동'하는 지식 노동자의 등장을 설명한다. 획기적인 기술 발전으로 제조업 노동자의 수요가 줄어든 대신 그들을 관리할 관리직의 수요가 늘어난 것. 공구를 들고 손에 흙먼지 묻혀가며 일했던 노동자들은 펜을 들어 책상 앞에 앉았다. 노동 시장에서는 더 똑똑한 관리직을 뽑기 위해 더 높은 학위를 요구했고, 넘쳐나는 지식 노동자들을 수용하기 위해 더욱 다양하고 세분화된 일자리들이 고안되었다. 한편, 그들이 공장에서 일하던 시절의 '아침 일찍 출근해 저녁 늦게 퇴근하는' 근무 시스템과 동선, 움직임, 작업 범위마저 계량화했던 관리 방법론도 지식 노동자들의 사무실로 옮겨갔다. 이렇듯 지식 노동자들은 긴 근무 시간에 비해 너무나도 세분화되고 자잘한 업무들을 처리해야 했다. 말하자면, 지식 노동자들의 남아도는 시간을 어떻게든 채워 넣기 위해 지금까지 수많은 가짜노동이 양산되어 왔다는 것이다. 부하 직원이 한가하다는 것은 부하직원뿐만 아니라 상사에게도 불명예스러운 일이었다. 그렇게 관리직의 노동 현장에서 한가하다는 말은 금기시되어 왔기 때문에 어떻게든 일을 만들어냈고, 그 일을 하는데 필요한 조직을 만들어내기에 이른다.



    시간이 흘러 민간 기업에서는 자신들이 항상 효율적이고 합리적이며 성과 지향적이어야 한다는 믿음이 자리 잡았고, 공공부문 또한 이러한 믿음 아래 민간 기업의 시스템을 벤치마킹했다. 그리고 과시하기 좋아하는 몇몇 기업가들은 이것을 '비전'이니 '혁신'이니 하는 말들로 치장했다. 이 시스템은 지식 노동자들을 어디에도 없는, 완벽하게 성실하고 능률적인 직원이 되길 요구하면서도 각종 비능률적인 도구와 평가지표들을 만들어냈다. 그리고 그들 조직이 중요하고 쓸모 있는 존재라는 것을 과시하기 위한 온갖 과시성 프로젝트를 요구하며 본질적인 노동마저 방해하는 '가짜 노동'의 세계가 펼쳐진다. 



    인간은 기본적으로 게으르고 탐욕스러우며 비능률적이라는, 인간 불신에 기반한 단순하고 극단적인 분석이 만들어낸 오늘날의 사무실은 이러한 것들로 채워져 있다. "핵심 성과 지표, 성과급 계약, 목표, 이정표, 끝나지 않는 보고서와 수많은 숫자로 가득한 칸들, 목표에 도달하지 못한 사람에게는 회초리를, 고개 숙이고 아무것도 묻지 않는 사람에게는 당근을 주는 시스템들 (314p)." 본론의 마지막 장에서 저자가 묘사한 '가짜 노동이 우리의 삶을 지배하게 된 오늘날의 모습'은 왠지 씁쓸하고 처절한 느낌마저 들게 했다.

    아무도 감히 타인을 믿을 수 없었기에 그들이 창조한 무의미한 가짜 노동이 이제 우리 목까지 차올랐다는 걸 우리는 깨달았다. 인류가 양심, 자존심, 직업의식, 뭔가 좋은 일을 하려는 욕망을 따를지도 모른다는 생각, 의미 있는 활동이 중요하다는 생각은 순진한 것으로 간주되었다. … 서로에 대한 불신에는 대가가 따른다. 가짜 노동의 쳇바퀴에서 무한한 시간을 보내는 형벌 말이다. (314-315p)


브런치 글 이미지 2


 

  





여러분은 생각보다 더 자유롭게 행동해도 된다

가짜 노동에 저항하기



    저자는 가짜 노동의 등장 배경부터 종류, 가짜 노동이 가져다주는 병폐뿐만 아니라 가짜 노동에 저항하는 방법 또한 제시하고 있다. 이 책이 그저 푸념에 그치지 않고, 다각적이고 실천적인 해결책을 제시한 점이 제법 흥미로웠다. 그중에서도 가장 인상 깊었던 해결책들을 몇 가지 소개하고자 한다.


첫째, 할 일이 없으면 일찍 퇴근해라. 저자는 프랑스의 실존주의 철학자 사르트르의 말을 빌려 '모든 선택은 윤리적'이라고 말한다. 우리가 어떤 행동을 하기로 선택하든 타인에게 본보기가 된다는 의미에서이다. 할 일이 없을 때 일찍 퇴근하기를 선택함으로써 우리 자신을 가짜 노동으로부터 해방시킬 뿐만 아니라, 다른 사람들에게도 다른 길이 있음을 보여줄 수 있다는 것이다.


다음으로, 집에 갈 수 없거나, 혹은 집에 가기 싫다면 가짜 노동으로 시간을 허비할 것이 아니라 자기 계발을 해라. 그러나 저자는 기본적으로 넘쳐나는 고등 교육이 오히려 가짜 노동을 양산해내고 있다고 주장하는 바, 자격증이나 학위를 위한 '공부'를 권장하지는 않는다. 대신, 교양을 쌓을 수 있는 활동들(예컨대 장편 소설 완독하기, 클래식 음악 처음부터 끝까지 듣기, 합창단이나 밴드 활동 등)을 통해 더 인간다워지자고 권한다.


마지막으로, 일이 끝나고 집에 가면 '세상과 유기적으로 상호작용할 수 있는' 일들을 해라. 사랑하는 사람을 돌보고, 자발적인 일을 하고, 호기심과 욕망에서 나오는 일들을 하자는 것이다. 이것이야말로 '가짜 노동이 세상을 장악하기 이전에 했던 일들'이며, 진정으로 의미 있는 일이 될 수 있다.  



    이러다 직장에서 쫓겨나면 무엇으로 먹고살라는 거야?라는 궁금증은 뒤이어 보편적 기본소득 논의로 이어진다. 저자는 '의식주의 안정'이라는 상투적인 논의에서 벗어나 '고용의 안정' 측면에서 보편적 기본소득의 효용을 조명한다. 오히려 단기 고용의 위험 부담이 줄어들면서 고용, 해고, 이직이 자유로워지는, 이른바 '노동의 유연성'이 확보된다는 것. 임시 프로젝트를 위해 한시적으로 고용한 노동자들을 억지로 오래 붙잡아 둘 필요가 없어지므로 가짜 노동의 양산을 방지할 수도 있다. 기본 소득 이야기를 꺼낼 때면 항상 제기되는 전형적인 반대는 '그렇게 아무렇게나 돈을 퍼 주면 누가 일을 하겠는가?'라는 것인데, 가만히 있는  한가한 시간이 두려워 이런저런 일들을 만들어 낸 인류가 그리 쉽게 게을러질까?라는 생각이 문득 뇌리를 스쳤다.







    가짜 노동이 인류를 장악한 이래로 인간의 라이프스타일을 바꿀 결정적이고 획기적인 발명은 눈에 띄게 줄었다. 우리 할아버지는 증조할아버지의 시대와는 다른 삶을 살았고, 아버지도 할아버지의 시대와 다른 삶을 살았다. 그러나 우리가 사는 시대는 아버지가 살던 시대와 비교했을 때 크게 달라지지 않았다. 단순한 예시로, 아버지 세대가 자동차를 타고 다녔듯 우리도 자동차를 타고 다닌다. 이미 이전 세대에 등장한 것을 조금 더 개선한 정도의 발명만이 등장할 뿐이다. 인류 문명의 진보는 확실히 이전보다 정체되었다. 이는 우리가 먼 옛날 농부 조상들보다도 문화나 여가에 힘쓸 시간이 없어진 탓이다. 일하는 시간을 줄이고 많은 여가시간을 갖자는 이야기는 개개인의 힐링이나 위로를 넘어, 문명의 진보와 인류의 번영에 관한 이야기인 것이다. 



    데니스 뇌르마르크와 아네르스 포그 옌센의 <가짜 노동>은 일의 의미를 잃어버린 오늘날의 직장인들에게 큰 울림을 줄만한 책이다. 책을 펴기 시작한 순간부터 궁금했던, 진정으로 의미 있는 일이란 무엇일까?라는 질문에 대한 답도 마침내 찾을 수 있었다. 저자는 "자발적인 일, 호기심과 욕망에서 나오는 일, 세상과 유기적으로 상호작용하는 일"이 진정으로 의미있는 일이라고 말한다. 조금 과장을 보태자면, 이 책은 나의 생각과 행동을 움직인 책이기도 하다. 내가 책을 읽고 글을 써보자 다짐한 계기 또한 세상과 유기적으로 상호작용하기 위해서였으니 말이다. 우리는 모두 성과나 숫자 너머에 있는, 일의 의미 가치를 추구하는 존재들이라는 것을 명심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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