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잡곡밥 오므라이스

마음을 쓸어주는 음식

by 녕인

마음에 바람이 새는 듯한 기분이 들 때가 있다.


행복하게 웃고 있는 사람들 사이를 혼자 걸을 때,

자주 가던 단골 카페가 문을 닫았을 때,

별 볼일 없는 하루가 지나가고 허전함이 찾아올 때,

따뜻한 번화가를 벗어나 차가운 골목길에 들어섰을 때.


그럴 때마다 나는 종종 보이지도, 만져지지도 않는 마음속이 너무나 시려서 어깨를 둥그렇게 웅크리고 걷곤 했다.


마음이 시리면 무언가 따뜻한 것으로 뱃속을 채워 넣고 싶어지는 걸까? 나는 늘 입맛이 없는 사람이었지만 이럴 때마다 무언가 다정하고 포근한 음식으로 마음속 멍자국을 덮고 싶어지곤 했다.


마치 잡곡밥 오므라이스처럼.

어머니는 늘 흰쌀밥이 아닌, 잡곡밥으로 오므라이스를 지어주고는 하셨다. 아주 어릴 적, 내가 아주 키가 작아서 어머니의 어깨가 잘 보이지도 않았을 적부터 그랬다. 그래서 내게 오므라이스란, 샛노란 계란지단 아래 옹기종기 잡곡이 모여있는 것을 의미했다.


씹을수록 고소한 보리, 새까매서 늘 유심히 보게 되는 흑미, 쫀득쫀득 재미난 병아리콩까지.


계란 지단을 스윽 슥 잘라내어 울퉁불퉁한 잡곡밥과 함께 꿀떡 넘기면, 텅 빈 뱃속이 어느새 아른아른 차오르고는 했다.


어린 시절 늘 먹던 잡곡밥 오므라이스 덕분이었을까. 나는 편식하는 반찬 하나 없이 초등학교에 들어가게 되었으며, 때때로 친구들 사이에서 ‘콩 대신 먹어주는 아이’가 되어주기도 했다.

어머니께서는 잡곡밥 오므라이스를 꽤 자주 해주시는 편이었다. 엘리베이터가 없어 계단을 몇 층 오르내려야 하는 집에 살 적에는, 아예 집밖으로까지 맛있는 계란 지단 부치는 냄새가 풍겨져 나오기까지 했다.


어머니는 내가 ‘또 잡곡밥 오므라이스냐’며 툴툴거릴때마다 머리를 쓰다듬어주시며 말씀하셨다.

“이 오므라이스를 보렴. 잡곡밥으로 지었으니 든든할 테고, 계란지단으로 위를 덮었으니 단백질도 보충되고, 케첩으로 예쁘게 그림도 그릴 수 있으니 보기에도 좋지 않니?“


그 말을 듣고 다시 오므라이스를 내려다보면, 정말이지 그렇게 반짝반짝 예쁘고 완벽해 보일 수가 없었다.

성인이 되고, 독립을 하게 되자 잡곡밥 오므라이스처럼 손이 많이 가는 음식은 자연스레 내 곁에서 멀어지게 되었다. 퇴근하고 텅 빈 집에 돌아오면 도무지 요리를 해 먹을 자신이 없어, 간단한 라면을 끓여 먹거나 가끔 파스타를 삶는 나날이 이어졌다.


주말에만 만나는 애인과는 왠지 모르게 매번 특별하고 기름진 음식을 먹어야 할 것 같은 기분이 들었기 때문에, 역시 잡곡밥 오므라이스를 만들어 먹는 일은 내게 없었다.

잡곡밥 오므라이스는 내게 그런 음식이었다.

자꾸만 미루는 할머니 안부전화 같은 음식.

마트에서 못 본 척 지나치는 야채코너 같은 음식.

연락처에서 이제는 누르지 못하는 오랜 친구의 번호 같은 음식.


그래서 그럴까, 멀어지고 희미해져서일까.

마음에 바람이 새어들 때마다 나는 어머니의 따뜻한 잡곡밥 오므라이스가 떠오르곤 했다.


누구나 그런 음식이 있지 않을까.

입에 한 숟갈 떠 넣기만 했는데도 눈물이 날 만큼 위로가 되는 음식이. 나에게 그것은 잡곡밥 오므라이스여서, 숟가락으로 접시를 슥슥 긁다 보면 어느새 내 마음속 찌꺼기들도 함께 툭툭 떨어져 나갔고, 깨끗이 비워진 접시를 보다보면 어느새 아팠던 마음도 따뜻한 노란색 지단으로 포옥 덮였다.


어떤 음식은 목구멍을 스쳐 위장으로 내려가는 도중, 마음을 한번 쓸어주는 게 틀림없다. 그렇지 않고서야 많고 많은 음식 중 하필 잡곡밥 오므라이스를 먹을 때만 이렇게 눈물이 나지는 않을 테니까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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