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제소바 + 팥빙수 - 맛 칼럼(11)
금요일 아침 교양수업을 듣고 동기 4명과 라멘집에 가서 마제소바를 먹었다.
몇 달만에 먹으니 정말 맛있었다. 문어 고명이 올라간 것도 마음에 들었다. 배부르게 먹고 기숙사에 돌아와 폰을 봤다. 5일 사귄 남친에게서 인스타 디엠으로 이별통보가 와 있었다. 바쁜 와중에 연애를 하는 게 안 맞는 것 같다, 넌 좋은 사람이고 부족한 나를 좋아해줘서 고마웠다는 장문의 디엠. 읽자마자 전화를 걸고 전화해달라는 문자를 남겼지만 그 분은 잠수를 타고 이틀째 나의 연락은 답하지 않고 있으시다.
1살 연상이고 대학 선배로 만나 잘 챙겨주고 다가오고 고백까지 했는데 본인 힘에 부친다는 이유로 무책임하고 배려없이 일방적으로 연애를 끝냈다. 내가 알던 사람이 맞나, 하는 생각에 감정적으로 종일 힘들었다. 내가 미성숙한 사람을 믿고 마음을 줬구나 생각하며 화도 났다.
친구들 몇 명에게 연애를 시작했다고 신나서 이야기 했는데 며칠 안되서 헤어진 사정을 설명하니 다들 어이 없다는 반응으로 위로해줬다. 내 연락을 읽지도 않으시는 그 분을 내버려 두고 같은 과 동기s와 팥빙수를 먹으러 가서 달콤함으로 아픔을 씻었다.
정말 맛있는 팥과 적당히 달콤한 우유 빙수, 고명으로 올라간 떡까지. 빙수 맛집을 발견해서 행복했다. 내 전화를 받고 달려온 s는 내가 하소연하는 동안 본인이 다 슬프다며 울었다. 힘들 때 같이 울어주고 토닥토닥해주는 고마운 친구가 있는 것도 고맙고 행복했다.
저녁에는 또 다른 친구 j와 고깃집에 갔다. 걔가 고기를 구워주고 소주를 벌컥벌컥 마시는 나를 말리며 슬쩍 소주병을 자기 쪽으로 가져갔다. 완전히 잊을 순 없겠지만 너 혼자 계속 감정 소모하지 말라고 조언해줬다. 밤에는 다른 과 동기 언니y랑 지하철을 타고 교보문고에 갔다. 서점 마감 1분 전에 허겁지겁 뛰어 도착해서 사고 싶던 소설을 샀다. 지하철을 타고 수다를 떨다가 내릴 역을 놓치고 종착역까지 갔다. 다시 반대방향 지하철을 타고 무사히 기숙사에 도착. 언니는 그 사람을 괜히 사귀었다는 나에게 그 사람도 멋있는 부분이 있고 너가 그걸 본 거겠지, 라고 이야기했다. 맞는 말이다. 끝에 와서 상처 줬지만 분명 배울 점도 있고 멋있는 사람이어서 내가 좋아하게 됐던 거다.
과거는 내 안에 차곡차곡 쌓이고 나를 성장시켜줄 것이다. 고마운 사람들과의 추억으로 이별 통보 받은 날을 기억할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