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 여섯째 날의 기록(2025.1.18. 토.)
오늘의 일정은 한 개였다, 낮 12시에 ATV 체험. ATV는 전동 사륜 바이크다. 예약할 당시는 밤늦게 다니면 위험할까 봐 낮 시간대로 신청했는데, 어제 생각해 보니 한창 더운 시간일 듯했다. 저녁으로 바꾸려 했지만 업체와 통화가 닿지 않아 그냥 원래대로 진행하였다. 업체 직원이 툭툭이를 타고 픽업 나왔다. 캄보디아에서 구입한 코끼리 반바지를 입은 내 차림을 보더니, 다리가 뜨거울 거라며 긴 바지로 갈아입고 나오라고 했다.
내 담당자는 젊은 캄보디아 청년이었다. 이번 여행은 젊은 청년과의 인연이 많다. 적적한 노처녀의 심정을 하늘이 알아 준건지 칵테일 클래스도 젊은 청년과 함께 하고, 앙코르와트 투어도 젊은 한국 청년과 짝지처럼 다녔다. 캄보디아 청년은 바이크 작동법을 알려 준 뒤, 나보고 시운전을 해보라고 하였다. 내가 앞에 타고 청년이 뒤에 탄 채 짧은 거리를 운전했는데, 내 하는 짓을 보더니만 아무래도 안 되겠다고 자신이 운전할 테니 나는 뒤에 타라고 했다.
청년은 나보고 자신의 허리를 꽉 잡으라고 하였다. 그의 허리를 잡은 채, 바이크는 오프로드를 달리기 시작했다. 울퉁불퉁한 시골길로 커다란 나무 시이와 드넓은 초원 사이와 시골 농가를 지나갔다. 스피드로 인해 바람이 시원해서 덥지는 않았으나, 청바지 밑으로 드러난 발목이 뜨거웠다. 한참 달리다 바이크를 세우더니 잠시 쉬자고 했다.
그는 나보고 몇 살이냐고 물었다. (해외에서는 만 나이이므로) 42세라고 답하자 그는 놀라며 혼자 왔냐고, 가족은 없냐고 했다. 결혼 안 했다고, 한국 사람들은 대부분 결혼을 늦게 한다고 말해 주었다. 한국에서는 보통 몇 살쯤 결혼하는지 궁금해하길래 서른 넘어서한다고 답했다. 그에게 몇 살이냐고 묻자 스물네 살이라고 했다. 당신의 젊음이 부럽다고 말하자, 그는 내가 자신보다 더 젊어 보이고 예쁘다고 말했다. 이 누님 마음 설레게, 그런 말을 하다니! 까만 얼굴에 동그란 눈동자를 가진 청년은 귀엽고 호감 가는 얼굴이었다.
햇살은 화창하고 하늘은 푸르고 소는 풀을 뜯고 개들은 땅에 얼굴을 대고 낮잠을 자는 평화로운 오후였다. 우리를 스쳐가는 바람은 시원했고 우리를 쳐다보는 어린아이들은 손을 흔들어 주었다. 그는 젊고 순했다. 나는 꿈을 꾸듯 비현실적인 감각으로 그의 허리를 붙잡고 그의 뒷모습과 함께 보이는 아름다운 세상을 느끼고 있었다.
그는 사진을 찍어 줄 테니 찍고 싶은 장소 있으면 언제든지 말하라고 했지만 나는 찍지 않겠다고 했다. 사진이 있어야 기억에 남는다고 말하는 그에게, 기억은 마음 속에 남는 거라고 답했다. 그와 드라이브하는 동안 나는 사진을 찍지 않고 그 순간의 풍경과 느낌을 온전히 마음에 담아 두었다. 한없이 아름다운 세상을 펼쳐 보여주는 신에게 감사와 사랑을 보냈다. 나는 그 순간 오롯이 행복했고, 온전히 깨어있었다.
내 손 너머 느껴지는 그의 허리와 말랑한 살집, 너무 꽉 잡기에는 조금 망설여지는 긴장감, 드러난 발목으로 내리쬐는 태양의 뜨거움을 나는 기억한다. 지금 이 순간이 꿈처럼 지나가고 있음에 아쉬웠던 마음도, 이 시간이 영원이었으면 좋겠다는 마음도 기억한다.
시간은 흘러 드라이브는 끝났고, 다시 상점이 즐비한 도로로 들어섰다. 그에게 1달러의 팁을 건넨 후 숙소로 돌아와 먼지투성이가 된 손과 발을 씻어 내었다.
어쩐지 나는, 지금 꿈을 꾸고 있는 것 같다. 영화 <인셉션>처럼, 동전이라도 돌려서 꿈인지 현실인지 확인해 보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