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잿빛천사 - END

by 장발그놈

잿빛천사와 이해의 악마가 세상을 떠돈 지 오래였다.

그들이 머문 자리마다 인간은 조금씩 변했고, 천사와 악마의 질서는 서서히 균열을 일으켰다.


천상에서는 잿빛 옷의 천사를 '감정에 물든 타락자'라 불렀고, 그 균열은 신앙과 질서의 중심을 뒤흔드는 분열로 변했다. 하늘의 천사들은 더 이상 신의 뜻만으로 세상을 설명할 수 없다고 말했다.

“질서는 지켜져야만하고 감정은 억눌러야만 한다.”


지옥에서는 이해의 악마를 '욕망을 저버린 배신자'라 불렀고, 악마들은 그들의 본성에 따라 분노했다.

“욕망이 약해지면 우리의 존재는 멈춘다. 사유와 이성적인 판단은 우리의 불꽃을 약하게 만드는 독일 뿐이다.”


천사와 악마들 모두 미숙하고 미천한 인간들이 중심이 되어서는 안된다고 판단했다.

결국 하늘과 지옥 모두 혼란스러운 서로의 분열을 서로에게 돌렸다.


하늘의 천사들은 말했다.

“잿빛천사 또한 욕망가득한 악마들의 감정 때문에 변한것이다. 악마들의 유혹에 천사의 이성을 더럽혀졌다. 그 유혹의 불을 꺼야 질서가 돌아온다.”


지옥의 악마들은 응수했다.

“항상 천사들의 훼방에 욕망을 펼칠 수 없었다. 그래서 우리중 일부의 욕망이 변질된것이다! 그들의 빛을 부숴야 진정한 자유가 돌아온다.”


하늘은 ‘정화(淨化)’의 이름으로 전쟁을 선포했고, 지옥은 ‘해방(解放)’의 이름으로 반격을 선언했다.

천상의 군세가 내려왔고, 지옥의 군단이 솟구쳤다.

하늘의 칼날은 법전의 문장을 새기며 떨어졌고, 지옥의 불길은 이름 없는 욕망의 함성으로 번져 올랐다.


인간들의 세상은 순식간에 빛과 불로 나뉘었다.

질서의 군은 “이것이 정의다”라 외쳤고,

욕망의 군은 “이것이 자유다”라 외쳤다.


인간들은 그 사이에서 고통 받을 뿐이었다.

기도하던 자들은 두려움에 눈을 감았고, 아이들은 하늘과 땅의 불빛이 서로를 찢는 광경을 바라볼 뿐이었다.

하늘의 창끝과 지옥의 불길이 서로 맞닿는 그 순간,

잿빛천사와 이해의 악마가 그 둘을 가르며 걸어 나왔다.


그들의 뒤를 따라 한 무리의 존재들이 따라나왔다.

잿빛천사와 이해의 악마를 따르던 자들...

신의 목소리나 왕의 명령보다 인간의 숨소리를 더 가까이 들으려 노력했던 자들...

천상의 흰빛도 아니고, 지하의 불도 아닌 잿빛으로 이해와 공감을 가지려 한 자들...


잿빛천사가 그들 앞에 섰다.

“멈춰라. 싸움이 우리의 존재 이유를 사그러지게 만들고 있다.”


그의 목소리가 울릴 때, 하늘의 전사들이 잠시 멈췄다.

그들은 보았다.

인간들이 무너진 건물이 아닌 서로의 어깨를 받쳐 일어서는 장면을.

자신 대신 타인의 손을 잡는 광경을.

서로를 지키고 자신을 지키기 위한 이성적인 모습을.


이해의 악마가 지하의 군세에게 말했다.

“욕망은 파괴를 위해 있는 게 아니다. 여러 욕망을 인정하지 않으면 우리 또한 없다.”


그들은 보았다.

인간들이 무너진 건물이 아닌 서로의 어깨를 받쳐 일어서는 장면을.

자신 대신 타인의 손을 잡는 광경을.

자신만큼 다른 이들을 위하는 욕망을.

.

.

.

모두 자신의 모습을 초라하게 생각할 수 밖에 없는 바로 그 모습을...


천사들의 군세는 날개를 거두었고, 악마들의 불꽃은 잦아들었다.



인간 세계는 자신들이 믿어온 천사와 악마의 이미지가 뒤섞이고 있기에 혼란했다.

그러나 시간이 지날수록 사람들은 선과 악이 고정된 본질이 아니라, 상황에 따라 달라질 수 있는 태도임을 이해하기 시작했다.


'이성과 감정의 조화를 실천하는 방법'에 대해 토론하기 시작했고, '용서와 분노 중, 무엇을 택할지 스스로 결정하는 법'이 생겨났다. 국가 간 갈등이 줄어들진 않았지만, 지도자들 사이에서도 ‘무조건적인 힘의 행사’보다 ‘이성과 감정을 고려한 협상’이 가치로서 등장하기 시작했다.


잿빛 날개의 천사는 인간의 조화가 뿌리내리는 모습을 바라보며, 작은 미소를 지었다. 그는 더 이상 직접적으로 개입하지 않았다. 인간들이 자신의 길을 찾아가는 과정을 지켜보는 것으로도 충분했기 때문이다.


그날 밤, 오랜만에 그의 곁에 익숙한 기운이 다가왔다.

이해의 악마였다. 그의 날개는 여전히 어둠의 윤곽을 가졌지만, 그 속엔 더 이상 거친 불꽃과 어둠이 아니었다. 회색빛의 안개처럼 부드럽고 유연한 에너지가 피어올랐다.

“천사도, 악마도, 인간도... 전부 변했군.”


악마는 작게 웃으며 말했다.

“하지만 넌 여전히 언덕 위에 혼자 앉아 있군. 너로 인해 시작된 변화인데, 왜 중심에 서지 않는 거지?”


잿빛 날개의 천사는 조용히 고개를 저었다.

“이건 나의 길이 아니라, 그들의 길이기 때문이다. 지금 생각해 보면 나는 그저, 그들이 선택할 수 있는 길을 하나 더 만든 것뿐이다.”


악마는 천천히 앉으며 중얼거렸다.

“이 시대를 뭐라고 부르면 좋을까...?”


천사는 밤하늘을 바라보며 미소지으며 대답했다.


“조화의 시대.”






그들의 이야기는 이렇게 끝났습니다.

지옥의 군주와 신의 갈등,

천사와 악마들의 처절한 전쟁과 인간들의 고통,

잿빛천사의 살인과이해의 악마가 행한 구원,

이 모든 이야기가 사라진건 아쉽지만...

이렇게라도 마무리할 수 있어서 다행이라 생각합니다.


부족한 저의 실력에 고생한 '잿빛천사'에게 미안할 뿐입니다.

그들의 여정을 함께 바라봐 주신 여러분께 큰 감사의 인사를 드립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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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 금 연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