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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정한 사과

by 장발그놈

깊은 산속에 작은 마을이 있었다.

그곳에는 누구나 믿고 따르는 고슴도치 어르신이 살고 있었다.

어르신은 늘 지혜로운 말과 따뜻한 마음으로 마을 동물들의 존경을 받았다.


어느 날,

여우가 실수로 토끼의 소중한 당근밭을 망쳐놓았다.

여우는 화가 난 토끼에게,

"내가 고의로 그런 것도 아닌데 뭘 그렇게 예민하게 그래?

미안하다고 했자나!"


라고 대꾸하고 집으로 돌아갔다.

그 일은 곧 마을 동물들 입에 오르내렸다.


며칠 뒤,

고슴도치 어르신이 집 앞을 지나가던 여우를 불러세웠다.

“여우야, 잠깐 들어오렴.”


어르신은 주저하며 들어선 여우에게 찻잔을 내밀며 물었다.

“토끼에게 사과는 했니?”


여우는 고개를 끄덕였다.

“네, 분명히 미안하다고 했어요. 그런데 토끼가 그냥 화를 내더라고요.”


어르신은 차를 한모금 마신 후, 조용히 말했다.

“여우야, 사과란 잘못을 인정하는 말이 전부가 아니란다.

우선 마음이 있고, 그 마음을 달래는 행동이 뒤따라야 한단다.”


여우는 찻잔을 내려놓으며 살짝 눈을 피했다.

“하지만... 저는 고의가 아니었는데요.”


어르신은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저었다.

“아무리 실수였다 하지만, 그 당근들은 토끼가 오랫동안 키워온 소중한 것들이었단다.

네가 ‘그럴 의도가 없었다’는 말을 했다지만, 토끼의 상처를 지울 수는 없지.”


그 순간, 여우의 가슴이 쿵 하고 내려앉았다.

다음날 아침, 여우는 마을 광장에 나가 모든 동물 앞에서 말했다.

"여러분, 제가 잘못했습니다. 당근밭을 망가뜨리고도 토끼에게 사과하지 않았습니다. 정말 미안합니다."


동물들은 여우의 용기 있는 사과에 박수를 보냈다.

"잘못을 인정하는 건 참 어려운 일이야. 여우는 정말 대단하다!"


모두가 자신의 잘못을 인정하는 여우를 칭찬했다.

여우는 가슴 한켠이 뿌듯하게 차오르는 것을 느꼈다.

‘이 정도면 토끼도 내 마음을 알았겠지.’

주변의 따뜻한 시선과 박수 소리가 마치 모든 일이 잘 풀린 듯 여우를 감싸주었다.

하지만 정작 토끼는 그 자리에 없었다.

토끼는 슬픔에 빠져 집 밖으로 나오지 않았다.


그날 밤, 고슴도치 어르신이 여우를 찾아왔다.

"여우야, 오늘 마을 모두가 네 사과를 칭찬했지만, 너는 정말 사과를 한 걸까?"


여우는 의아해하며 말했다.

"제가 모두 앞에서 진심으로 제 잘못을 인정했는데, 그게 사과가 아니면 무엇인가요?"


고슴도치 어르신은 고개를 저으며 말했다.

"다른 이들이야 네 마음을 인정하겠지만, 네게 진정으로 사과받아야 할 토끼에게 그 마음은 닿지않았단다."


여우는 그제야 숨이 막히는 답답함을 느끼게 되었다.

그는 바로 토끼의 집으로 찾아가 문을 두드리며 말했다.

"토끼야, 나와 이야기 좀 할 수 있을까? 제발 부탁이야!"


망설이던 토끼가 문을 열자 여우는 눈물을 글썽이며 말했다.

"내가 당근밭을 망친 것, 정말 미안해. 네가 얼마나 소중하게 키운 건지 생각도 못 했어.

아무리 실수라 하지만, 네 마음을 헤아리지 못한 내가 정말 잘못했어.

네가 나를 용서하지 않는다 할지라도, 네가 다시 웃을 수 있도록 돕고 싶어.

내가 다시 당근밭을 가꿀게. 네 당근이 다시 자라고 웃을 수 있을 때까지."


토끼의 작게 떨리던 손끝이 내려가고, 여우를 바라보며 말했다.

"네가 몹시 미웠지만... 이렇게 진심으로 나에게 와서 사과해줘서, 마음이 조금은 풀렸어.

다시는 이런 일 없게 해줘. 그리고, 이번만은... 용서할게."


잠시 숨을 고른 토끼가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그리고... 그 밭, 너 혼자 고칠 필요 없어. 나도 함께할게.

우리가 같이 하면, 예전보다 더 좋은 밭이 될 거야."


그날 밤,

여우는 토끼와 함께 망가진 밭을 다시 일구기 시작했다.

시간이 걸렸지만, 토끼는 여우의 진심 어린 행동에 마음을 열었고, 둘은 다시 친구가 되었다.


마을 동물들은

진정한 사과는,

말로 시작해 행동으로 완성된다는 것을

여우와 토끼를 통해 알게되었다.

진정한 사과1.jp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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