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랑을 좋아하던 내 똥강아지
나는 방망이를 번쩍 들어 올리다가 방금 전까지 만지작거리던 꼬마기차를 보았어요.
꼬마기차의 까만 눈이 반짝거리며 나에게 말을 하는 것 같아요.
“우리 조금만 더 기다려봐요!”
솔직히 고백하자면, 내가 망설이는 게 꼬마기차의 애절한 눈빛 때문만이 아니에요.
어제 내 친구가 아이스크림을 세 개째 먹기 시작했을 때도 그랬고, 저번에 백화점에서 노란 원피스를 붙잡고 난데없이 떼를 쓰던 날도 그랬어요. 사실 난 내 친구를 정말 사랑하니까요.
나의 방은 정말 근사해요.
바위처럼 생겼지만 속에 커다란 구멍이 뚫려 있고 안쪽 표면에는 자줏빛 영롱한 보석들이 빽빽하게 박혀 있어요. 내방은 바로 자수정 바위 속이거든요. 방안에 누워 천장을 올려다보면 밤하늘의 별들 대신 자수정이 쏟아질 듯 반짝거려요. 바닥에서부터 천정까지 둥글게 올라간, 온통 신비한 자수정의 보랏빛으로 가득 찬 방 안에 앉아서 내 친구에게 줄 선물을 만들고 있노라면 내가 도깨비라는 사실이 정말 감사해요. 사실 원래 내 임무는 즐거운 일을 만드는 것이거든요. 물론 꼬마기차와 같은 선물도 만들고요. 머리에 뿔을 달고 험상궂게 방망이를 들고 나타나는 일은 절대로 내가 원하는 일이 아니에요. 그 모습을 하고 거울에 비친 내 모습을 보면 나도 깜짝깜짝 놀라죠.
<선물의 상자>는 내가 가장 아끼고 좋아하는 물건이에요. 아까도 말했지만 난 예쁘고 착한 내 친구 생각을 하면서 선물을 만드는 것을 가장 좋아해요. 정성껏 만든 선물들을 모아두는 곳이지요. 그 옆에 나란히 <방망이상자>가 있어요. 맞았어요. 바로 도깨비방망이를 넣어두는 곳이지요. 친구를 혼내줘야 할 때 열어야만 하는 상자입니다. 그 속엔 무시무시한 것들로 가득해요. 뿔이 하나 혹은 세 개씩이나 달려있는 가면에서부터 제 스스로 번쩍번쩍 뛰어다니는 불꽃까지 내가 마음만 먹으면 더 으스스한 것도 골라낼 수 있는 상자입니다.
두 개의 상자가 올려져 있는 테이블 뒤쪽에는 크고 아름다운 청동거울이 걸려 있어요. 거울은 내가 바라보는 위치에 따라 오묘하게 다른 색으로 보인답니다. 하지만 그 거울의 진짜 비밀은 다른 곳에 있어요. 바로 거울 속에서 살고 있는 한 그루 나무입니다. 나무는 내 방 어디에도 없어요. 오직 거울 속에서만 볼 수 있답니다. 굵은 두 개의 가지에 각각 파란색과 분홍색의 나뭇잎이 매달려 있는 살아있는 나무입니다. 나무가 때때로 흔들리기도 하고 아마도 확실하진 않지만 그럴 때면 새로운 나뭇잎이 하나씩 돋아나곤 하는 것 같으니 살아있는 나무가 틀림없지요. 그 나무에 대해서는 나도 잘 몰라요. 절대로 내가 닿을 수 없는 곳에 있다는 것과 또 내 친구가 좋아하는 색깔이 파란색이라는 것 밖에 말이에요.
“첨벙첨벙”
내 친구가 커다란 장독 뚜껑 속에서 놀고 있는 물고기들을 잡으려고 휘저을 때마다 거실 바닥은 온통 물바다가 되고 옷은 물에 흠뻑 젖어버렸어요. 어머니께서 물고기 몇 마리를 얻어 오시던 날, 가볍고 멋없는 플라스틱 수족관 대신 베란다에서 놀고 있던 큰 장독 뚜껑을 생각해 내신 건 정말 행운이었어요.
장독 뚜껑 속에 자잘한 모래를 씻어 넣고 며칠 동안 받아 두었던 물을 부은 후 물고기들을 쏟아놓으니 물고기들이 원래 자기 집이었던 양, 신이 나서 꼬리지느러미를 더 힘차게 흔들며 놀았어요.
하지만, 신기해하면서 주위를 맴돌던 내 친구가 오늘은 갑자기 무슨 생각이 났을까요? 갑자기 물고기를 잡겠다고 애를 씁니다. 한 번씩 팔을 팔꿈치까지 풍덩 집어넣고 나면 말갛게 투명하던 물은 모래와 더불어 가라앉았던 먼지와 찌꺼기들 때문에 안개처럼 흐려집니다. 물고기는 어느 구석에 숨었는지 점점 더 보이지도 않고요. 사실 갑자기 물고기를 잡아보고 싶은 건 그리 혼날 일도 아니에요. 하고 싶다거나 혹은 하기 싫다거나 하는 마음을 미리부터 잡아둘 수는 없으니까요. 또 물에서 놀고 있는 물고기를 잡는 일이 쉬운 게 아니니 물도 쏟고 옷도 젖겠죠.
어머니께서 화가 나신 건 그것 때문이 아니랍니다. 이미 흐려진 물 때문에 보이지 않는 물고기를 어머니인들 어떻게 하시겠어요? 울고 떼를 쓴다고 해결될 문제는 아니니까요. 어머니는 모래와 먼지가 고요히 가라앉을 때까지 기다릴 수밖에 없다는 걸 친구가 알기를 바라시는 거죠. 맑고 고요한 물속에서 자유로이 놀고 있는 물고기를 다시 빨리 보고 싶다면, 이제 그저 흙탕물이 가라앉기를 조용히 기다려 주는 것이 가장 빠른 방법이라는 것을요.
그래서 어머니께서는 오늘도 어쩔 수 없이 나를 찾기 시작하신 거죠. 아마 내 친구도 이쯤에서 내가 등장하리란 걸 이미 짐작했을 거예요. 하지만, 내가 온갖 무서운 치장을 하고 나타나기 직전에, 꼬마기차의 까만 눈을 들여다보면서 잠시 망설이고 있는 동안에, 친구의 울음소리도 어머니의 혼내는 소리도 사그라들고 있군요!
나의 바람이 이루어진 건가요? 아님, 꼬마기차의 예쁜 마음을 친구가 눈치챈 걸까요?
어머니의 말씀처럼 시간이 흘러 모래가 가라앉으니 안개처럼 뿌옇던 물이 어느새 다시 맑아지고 있었던 겁니다. 그 속에서 물고기들이 언제 그랬냐는 듯, 기분 좋게 수영을 하고 있군요.
물고기를 다시 찾은 내 친구의 숨소리도 쌔근쌔근 사랑스러워졌습니다.
방망이를 <방망이 상자>에 넣고 뚜껑을 닫고 있는데, 거울 속 나무가 살랑살랑 흔들리더니 작은 불꽃처럼 일렁이는 잎새 하나 새로 돋아 나옵니다.
내 친구가 좋아하는 바로 그 파란색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