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닐썰매
초등학교 시절 오빠와 나는 두 살 차이로 같은 학교에 다녔다.
겨울방학 직전이었다.
겨울이면 더욱 이불속에서 나오기 싫고 사람은 왜 겨울잠을 자지 않는 것인지 불만이 가득한 나였다.
그날도 이불속에서 버틸 수 있을 때까지 버티다 어쩔 수 없이 일어나 학교 갈 준비를 시작했다.
창밖으로 눈이 부시도록 새하얀 빛이 들어와서 보니 온 세상을 흰 눈이 뒤덮고 있었다.
눈이 얼마나 많이 왔던지 찻길에도 차들을 구경할 수 없었고, 여기저기 미끄러지는 사람들 속출하고 있었다.
활동량도 많고 늘 장난꾸러기였던 오빠는 절대로 평범한 길로 학교에 가는 일이 없었다.
멀쩡한 길을 두고 꼭 철길로 다니는가 하면, 곧은길을 쭉 걸어가면 금방 도착할 등굣길도 골목골목을 돌아서 가며 온 동네를 다 들려 다니는 편이었다.
겁쟁이였던 나의 저학년 시절 등굣길은 그런 오빠의 뒤를 졸졸 따라 같이 가야 하는 것이 유일한 방법이었다.
눈이 많이 온 그날도 오빠와 학교에 가기 위해 길을 나섰는데 어찌나 미끄럽고 발이 푹푹 빠지는지 무서워서 오빠 손을 꼭 잡고 종종걸음으로 따라 걸었다.
큰길 쪽으로 나갔을 때 자동차가 다니지 않는 것을 보고 찻길로 걸어가는 것이 좋겠다고 판단한 오빠는 찻길로 나를 잡아당겼다. 하지만 찻길에서도 쉽게 발을 떼지 못하는 나를 보며
"멀랭이 이리 와 앉자 봐. 오빠가 학교까지 데려다줄게"
하며 바닥에 커다란 비닐포대를 깔아 주었다
어린 마음에 동생이 안쓰러웠던 걸까?
"여기 앉으라고?'
"걱정 마 오빠가 재밌게 해 줄게"
그렇게 난 오빠가 깔아준 비닐포대에 덥석 앉아 가방을 움켜쥐었다.
"이제 간다~!"
출발을 알리는 소리와 함께 오빠는 달리기 시작했다.
출발과 동시에 겁먹었던 기억은 사라지고 크리스마스 캐럴까지 불러가며 신이 났다.
이런 나를 부러운 눈으로 바라보는 아이들도 있었고, 박수를 쳐주는 아이들도 있었다.
나는 오빠가 너무 자랑스러웠다.
오빠는 그렇게 교문 앞까지 비닐썰매로 나를 안전하게 도착시켰다.
여기부터는 네가 걸어서 가야 한다며 일으켜 세우고 교실까지 같이 가주었다.
이날의 오빠는 세상에서 제일 멋진 오빠였다.
난 그날의 오빠를 기억하며 동생에게는 이렇게 해줘야 한다는 생각으로 두 살 아래인 여동생이 같은 학교에 입학했을 때 오빠가 그랬듯이 동생이 학교 가는 것을 도왔고 학교생활 중에서 필요한 것들을 엄마 대신 해주기도 했다.
4남매 중 3남매가 같은 학교에 다닌 시기가 있었고 그때의 우리는 세상 무서울 것 없이 든든했다.
나는 형제가 많은 것이 너무 좋았다.
모두가 한편인 그런 사이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