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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가 외출했다 1.

아빠와 밀가루

by 멍냥이

토요일 오후 엄마는 이모와 하룻밤을 보내고 오는 짧은 일정으로 외출을 하셨다.

막냇동생의 나이가 4살이었을 무렵이다.

4살짜리 아이를 둔 엄마가 외출하는 것이 쉬운 일이 아니었을 텐데, 4명의 아이를 맡은 아빠에게서 엄마의 외출을 흔쾌히 받아들였던 것으로 기억된다.


우리 남매들은 엄마의 빈자리를 알아채면 어떤 행동을 보일지 불안해하면서 남동생을 주시하고 있었다.

막냇동생이 울기 시작하면 감당할 만한 사람이 우리 중에는 없다고 생각했기 때문이었다.

불안한 우리와는 달리 아빠는 김치부침개를 해줄 테니 기다리라며 주방에서 밀가루를 찾기 시작했다.

엄마의 외출이 싫지 않은 듯 웃음기 가득한 얼굴을 하고 계셨다.


부엌으로 들어간 아버지의 반죽은 뭔가 이상해 보였다.

“엄마는 그렇게 안 했는데?”

"괜찮아 이렇게 해도 돼"

"아니야 엄마는 물을 많이 부어서 했단 말이야"

이런 나의 계속되는 질문에는 아랑곳하지 않고 반죽을 이어가셨다.

그렇게 한잠을 치대며 탄력 만점의 반죽 만들어 내셨다.

한참을 그렇게 반죽을 하시던 아빠는 바로 옆에서 지켜보고 있는 나를 향해

“어이 딸! 이거 받아!”

그렇게 한마디와 함께 반죽을 던지셨다.

화들짝 놀란 나는 어리둥절해서 날아든 밀가루 반죽을 들고 멍하니 아빠를 쳐다보고 있었다.

이 모습을 본 오빠와 동생들은 상기된 얼굴로

“나두, 나두, 나두”

서로 반죽을 달라고 아우성이었다.

나를 뺀 나의 형제들은 본능적으로 놀이의 시작을 알아차린 것이다.

그렇게 우리들의 밀가루 반죽 던지기가 시작되었다.

편을 가른 적도 없는데 자연스럽게 운동신경 무딘 나를 대상으로 하는 1:3의 대결이 되었다.

쉴 틈 없이 얻어맞고 있는 나를 보고 계시던 아빠가 내 앞을 막아서서 다 덤비라며 오빠와 동생들을 향해 반죽을 던지기 시작했다.


해병대 파병군 출신인 아빠는 탄탄한 근육질에 누가 봐도 상남자였다. 그런 아빠의 공격을 어린아이 3명이 막아 내기는 어려운 일이었다.

그런 철의 장벽 같은 아빠의 보호 덕에 나도 놀이를 즐길 수 있었다.

신이 나서 온 집안이 밀가루 반죽으로 엉망이 되어갈 때쯤 막냇동생이 제대로 한방 맞고 울음을 터뜨리고 말았다.

우린 아뿔싸 터질게 터졌구나 하는 생각에 당혹스러웠다. 그런데 생각보다 빠른 수습이 이루어졌다.

아빠가 멋쩍은 웃음을 지으시며 막냇동생을 번쩍 들어 흔들어 달래니 바로 평화가 찾아왔다.

갑작스레 평화가 찾아오면서 놀이가 끝났다는 것을 알았고 그제서야 난리가 난 방안이 눈에 들어왔다.

순간 자연스레 엄마의 화난 얼굴을 떠올랐고 우리 중 누가 먼저 치우자고 말할 것도 없이 청소를 시작했다.

아빠는 남은 반죽으로 수제비를 끓여 주겠다며 제대로 된 음식을 만들기 시작하셨고, 놀이의 여운이 가시지 않았던지 우리들은 사방에 흩어진 반죽들을 모아 반죽놀이를 시작했다.


그날 아빠가 만들어주신 수제비의 맛은 기억이 나지 않는다 아마도 그렇게 맛이 있지는 않았던 것 같다.

아빠의 일탈로 처음 경험해 본 자유분방한 실내 놀이!

우린 그렇게 엄마가 계셨더라면 상상도 할 수 없는 놀이를 즐겼고 놀이의 여운은 아주 오래갔었다.

그 흔적을 없애기 위해서 최선을 다해 구석구석 살펴 가며 청소를 했었다.

어린 나이에 청소가 힘들었던 탓에 느낀 오류겠지만 놀이를 한 시간보다 청소한 시간이 더 길게 느껴졌었다.


엄마가 집을 비우는 것이 싫었던 우리 남매들은 그날 이후 엄마의 외출이 약간의 자유를 즐길 수 있는 기회로 여겨지기 시작했고, 그날은 지금까지도 매우 행복했던 날 중 하루로 남아있다.


이날의 기억으로 엄마가 된 나는 육아를 하면서 아이들에게 규칙이 없는 놀이를 많이 경험하게 했다.

정해지지 않은 그저 상황에 따른 놀이를 즐기게 해 주는 편이었다.


우유를 쏟으면 빨대를 주고 불며 놀게 했고, 국수를 흘리면 흘린 국수로 그림을 그리며 놀게 했다.

이런 나를 이해하는 사람은 없었다. 너무 버릇없이 키우는 거 아니냐는 질문을 받기도 했지만,

나의 두 딸들은 밖에서 남의 식탁을 넘어서는 행위를 하지 않았고, 공공장소에서 때를 쓰거나 소란을 피우는 일 없이 정해진 규칙을 잘 지키며 자라 주었다.


어린 시절 나의 아빠가 선물해 준 그날의 추억 덕분에

나의 두 딸들도 그런 행복한 날을 간직하길 바라는 마음으로,

또, 실수가 꼭 나쁜 일만은 아니라는 긍정적인 생각을 가질 수 있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놀이를 제공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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