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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생공부 1

생에 첫 사기를 당한 날 아빠의 한마디

by 멍냥이

7살 초등학교 1학년 때 있었던 뜻밖의 경험이다.

평소 아버지께서는 어린 나이부터 세상 살아가는 법을 배워야 한다며 돈 계산 하는 방법, 성냥불 켜는 방법, 밥 짓는 방법들을 가르쳐 주고는 하셨다.


그날도 해가 뉘엿뉘엿 넘어가는 오후

가게에서 라면을 사 오라고 돈을 주셨다. 거스름 돈이 있을 정도의 돈이었다.

겁이 많아서 대낮에 골목길도 잘 못 다니던 나였는데,


"우리 딸 벌써 커서 심부름도 할 줄 알고 참 대단해"

하시며 할 수 있다는 강한 믿음을 주는 응원의 말에 자연스레 길을 나섰다.


가게에 도착해서 라면을 사고 거스름돈을 받아 들고

뭔가 대단한 일을 해 낸 것처럼 스스로에게 감탄하며 신이 나서 집으로 돌아오던 길이었다.

그런데 나를 향해 한 남자가 다급히 앞을 막아서며 말을 건넸다.


"꼬마야 내가 지금 급하게 차를 타고 가야 하는데 지갑을 잃어버렸지 뭐야 그래서 그러는데 돈 좀 빌려줄래?"

잠시 고개를 갸웃둥하며 생각을 해보려는데 생각할 틈도 없이 다시 그 남자가 다시 말을 했다.

"내가 7시까지 여기로 와서 돌려줄 테니까 잠시만 빌려 주면 좋겠는데"

난 다시 돌려준다는 말과 만나는 시간을 정확하게 말해준 것에 의심의 여지없이 가진 돈을 모두 그 남자에게 주고 집으로 돌아왔다.


"아빠! 라면 사 왔어요"

"그래 우리 딸 고생했어, 거스름돈은 잘 받아 왔나? 어디 보자"

난 길에서 있었던 일을 말씀드렸다.

아버지는 웃으며 내게 말했다.

"그 사람이 7시에 만나 자고 했다고?"

"네!"

"그래 그럼 7시에 가서 받아 오면 되겠다."

아빠가 그렇게 아무런 일도 아닌 것처럼 말씀하셔서 평화롭게 텔레비전을 보며 놀았다.

그리고 약속 시간이 다가 오자 어린 마음에 늦으면 안 된다는 생각으로 10분이나 먼저 나가서 기다렸다.


그런데 한참이 지나도 그 남자는 오지 않았다. 난 그때 까지도 조금 늦는 것이라고 생각했다.

얼마나 기다렸을까 조금 지쳐갈 때쯤 아빠가 오셨다.

"딸! 그만 기다리고 집에 갈까?"

아버지의 그 한마디에 눈물이 왈칵 쏟아졌다.

난 그제서야 내가 속았다는 것을 알았고 바보 같은 나를 자책하고 속이 상해서 설움을 참을 수가 없었다.

"울지 마, 세상이 그런 거야 우리 딸 오늘 인생공부 했네"

하시며 이게 사기라는 것이라고 정확하게 알려 주셨다.


사기 치는 사람들은 상대방에게 생각할 틈을 안 주고 자신이 누군지 정확하게 말하지 않는다고 했다.

그제서야 내가 그 남자에 대해서 아무것도 몰랐다는 것을 깨달았다.

그리고 시무룩한 나에게 그 일은 아빠와 나만의 비밀로 하자며 머리슬 쓰담쓰담해 주셨다.

지금 생각해 보면 장난기가 차고 넘치는 아버지께서 그 사건을 가족들에게 말해서 재미 삼아 나를 놀릴 수도 있었는데 상처가 될까 봐 걱정이 되었는지 둘만의 비밀로 하셨다.


잊을 수 없는 이날의 사건은 따듯하고 현명하게 감싸주셨던 아버지 덕분에 수치심이나 나의 어리석음을 간직하기보다는 아름다운 추억으로 간직되었다.

어른이 된 지금 생각해 보면 어린 딸이 사기꾼을 기다리는 모습을 지켜보면서 무슨 생각을 하셨을지 궁금하다.

철이 들어 그때의 생각을 묻고 싶을 때 나의 아버지는 세상에 계시지 않았다.


나는 그날 이후 사람을 경계하는 법을 배웠고,

상대가 하는 말을 정확하게 듣고 의문이 생기면 바로 질문해서 미심쩍은 일이 생기지 않도록 하는 버릇을 가지게 되었다.

그리고 엄마가 된 나는 아이들이 실수를 했을 때

지적하고 야단치기보다는 나의 아버지가 그러셨던 것처럼 속상할 아이의 마음을 생각하면서 시간을 주고 지켜보는 것을 실천했다.

그렇게 해서 아이는 위축되기보다는 스스로 생각하고 경험으로 담아 같은 일을 격지 않도록 하는 주의력을 가질 수 있기를 바라는 마음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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