난 버려졌을 까?
어린아이가 누군가에게 버려졌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한다는 것은 참으로 슬픈 일이 아닐 수 없다. 하지만 의외로 어른들의 단순한 행동으로 아이들은 그런 생각을 할 수 있다는 것을 경험한 일이 있었다.
내가 5살이 되던 늦은 가을,
시골의 제법 번화한 곳 큰 집에서 여유롭게 살던 우리 가족은 아버지의 사소한 시비에서 비롯된 사건으로 살던 집과 모든 재산을 포기하고 삶의 터전을 옮겨야만 했었다.
그 사건 이후 도시에서 살기 시작하면서 경제적로 무척이나 어려운 생활 하고 있었다. 그때의 아버지는 다시 이전의 상태로 회복시키기 위해 몇 년 동안 새로운 사업에 도전하고 계셨다.
7살 겨울
추위를 버티기 위해서 어머니와 오빠가 땔감으로 사용할 폐목재를 구하기 위해서 근처에 있는 목재 공장을 가게 되었다. 그 목재공장은 가까운 곳에는 바다가 있어서 추위가 다른 곳과는 비교도 안될 정도로 매서운 곳이었다.
그날 어떤 이유였는지 정확히 기억기 나지 않지만 나도 함께 땔감을 구하는데 따라가게 되었다.
난 그저 엄마와 함께하는 외출이 행복했다.
어머니께서는 한참을 걷다가 꼭 잡고 가던 나의 손을 놓으며 말씀하셨다.
"오빠랑 저 쪽에서 나무 구해 올 테니까 여기서 꼼짝 말고 있어야 해, 알았지?"
난 따라가고 싶었지만 엄마의 말을 잘 들어야 한다는 생각에 "네! "하고 대답했다.
나의 대답과 함께 오빠와 어머니께서는 점점 멀어졌고 난 그곳에 서서 멀어져 가는 두 사람의 뒷모습을 그저 바라보고 있었다.
얼마나 그렇게 기다렸을까
발이 얼어붙는 것 같았고 몸에 부딪히는 바람은 표현할 수 없이 매서웠다. 아무리 기다려도 오지 않는 두 사람이 멀어졌던 곳만 바라보며 몸을 웅크리고 있었다.
한참을 그렇게 기다리고 있을 때 갑자기 슬플 생각이 엄습했다.
"엄마가 날 여기 버린 걸까?"
공포와 슬픔이 엄습해 오면서 이젠 더 이상 추위는 문제가 아니었다.
집을 찾아갈 수 있을까,
집을 찾아가면 엄마가 나를 받아 줄까?
등등의 오만가지 생각을 하며 금방이라도 터져 버릴 것만 같은 울음을 참았다.
기다려 보자 엄마가 맘이 변해서 다시 오실지도 몰라
난 눈물을 참아 가면서 기다림을 이어 나갔다.
해가 넘어가고 어둠이 올 때쯤 저 먼 곳에서 두 사람의 모습이 보였다.
나무를 한가득 담은 자루를 들고 오빠와 어머니께서 씩씩하게 걸어오고 계셨다.
난 그때서야 내가 버려지지 않았구나 하는 생각을 가질 수 있었다.
나의 이런 무서운 시간들을 알리가 없었던 오빠는
"우리 멀랭이 안 울고 잘 기다렸네!" 하며 장난을 쳤다.
집에 돌아오는 동안 엄마의 손을 잡고 싶었지만 엄마의 손은 이미 무거운 짐에 빼앗겨 잡을 수가 없었다.
그날 난 처음으로 엄마가 없으면 어떻게 하지? 하는 생각에 한 번씩 마음을 조이는 현상이 일어났다.
학교가 끝나고 집에 돌아왔을 때 엄마가 없으면 특히 그런 생각을 많이 하곤 했다.
지금 생각해 보면 어른들은 상상조차도 할 수 없는 일이었다.
어린 날의 나를 이해할 수 있는 어른이 얼마나 있을까?
이런 기억을 가지고 있는 나 조차도 나의 큰딸에게 잠시 엄마의 부재를 경험하게 한 일이 있었다.
내가 죽도록 지워버리고 싶은 순간이기도 했다.
내가 집에 갈 수 없는 상황이어서 아이가 도착할 시간에 맞춰서 친정엄마를 가시게 했지만 그 시간 안에 도착하지 못했던 것이다.
큰 딸이 초등학교 1학년 때였다. 가슴 시린 추억을 경험했던 내 나이와 비슷한 시기였다.
큰딸은 그날 대성통곡을 하며 울고 있었고 그 울음소리는 집 밖을 뚫고 찻길까지 들렸었다고 한다.
얼마나 기다렸냐고 했더니 30분 정도였다고 한다. 아이 입장에서 보면 충분히 기다리다 지쳐서 울음이 터졌을만한 시간이었다.
난 지금도 그날의 일을 너무나 미안하게 생각하고 있다. 다행히 성인이 된 지금의 큰딸은 그날의 일을 기억하지 못한다고 한다.
감사하게도 나와는 달리 가슴에 사무치도록 오래 남진 않았나 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