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례하게도 우리가 되는
낯선 천장이었다.
눈을 뜨자마자 든 생각.
잠에서 막 깨어난 이 순간이 낯선 걸까,
아니면 내가 달라진 걸까.
“드디어 눈 떴네요.”
선월의 목소리가 머리맡에서 흘렀다.
하온은 잠시 멍하니 천장을 올려다보다가,
결국 이불속으로 몸을 파묻었다.
“이봐요! 도망치지 않겠다면서!”
“5분만... 아니, 10분만요.”
포근한 이불에 눈을 감으려던 순간,
등에 따끔한 기운이 스쳤다.
반사적으로 이불을 걷어찼다.
“악!”
“놀래라, 왜 소리를 지르죠?”
“갑자기 튀어나오니까 그렇죠!”
하온은 이불을 움켜쥔 채 한숨을 내쉬었다.
그리고 마치 다짐이라도 하듯,
정성스럽게 이불을 정리하기 시작했다.
“오늘 뭔가 다르네요, 하온?”
“무슨 말씀이에요. 전 늘 똑같은데.”
선월은 만족스러운 듯 미소를 지었다.
“그래서, 어디 가려는 거죠?”
“갑자기 침대가 따가워져서... 좀 뛰어야겠어요.”
“뛴다고요?”
“우리 뛰었던 그 공원 있잖아요.
왠지 다시 가서 뛰고 싶어 졌어요.”
“건강한 육체에 건강한 정신이 깃든다!”
“그런 거창한 이유는 아니에요.
그냥... 그때 흘린 땀이 참 상쾌했거든요.
다시 한번 느껴보고 싶어서요.”
선월은 가볍게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다녀와요.”
“네? 같이 안 가요?”
“당신이 뛸 땐, 제 자리가 없잖아요.”
“말을 왜 그렇게 어렵게 하세요.”
하온은 운동화를 신으며 되물었다.
“정말 안 갈 거예요?”
선월은 잠시 시선을 맞추더니 조용히 말했다.
“생각보다, 우리는 오래 알고 지낸 사이라는 거... 느껴지지 않나요?”
뜻밖의 말에 하온은 멈칫했다.
“어... 그런가요...?”
선월은 가볍게 웃으며 말을 이었다.
“이해시키는 것보다, 용서받는 게 편할 때가 있죠.
그러니 뛰고 와요.
그때와 같지만, 그때와는 다르게.”
---
하온은 고개를 갸웃하며 문을 나섰다.
문이 닫히는 순간, 머릿속이 고요해졌다.
그런데 그 고요는 어딘가 낯설고 불편했다.
심장이 괜히 서두르듯 쿵쾅거렸다.
‘뭐지? 이 불안감은...’
걸음을 옮겨도, 그 고요는 따라붙었다.
정리되지 않은 불안이 발걸음을 재촉했다.
마치 뒤에서 누군가 지켜보는 것 같은,
혹은 중요한 무언가를 두고 온 듯한 허전함.
발걸음은 점점 빨라졌다.
그리고 정신을 차렸을 땐,
눈앞에 공원이 펼쳐져 있었다.
하온은 잠시 숨을 고르더니,
스스로에게 중얼거렸다.
“갑자기 뛰고 싶단 생각이 왜 든 건진 모르겠지만...
한 번 해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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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이 지면을 딛는 순간,
주변 풍경이 서서히 물들기 시작했다.
하지만 하온은 그 변화를 눈치채지 못한 채,
숨을 거칠게 몰아쉬었다.
발을 뗀 지 1분도 안 됐는데,
벌써 가슴이 터질 듯 뛰었다.
‘왜 하는 거야?’
‘왜 뛰는 거야?’
‘이걸 왜 하고 있는 거야...’
머릿속에서 의문이 연이어 울렸다.
하온은 고개를 거칠게 저으며
무거운 다리를 지면에 내리꽂았다.
그때였다.
옆에서 발소리가 맞춰졌다.
“발바닥 중앙을 써봐요.”
“네...?”
하온은 깜짝 놀라 옆을 돌아봤다.
심장이 덜컥 내려앉았다.
그건 선월이 아니었다.
“뭐야, 귀신이라도 본 것처럼 놀라면 상처받아요.”
그는 호탕하게 웃으며 발걸음을 맞췄다.
“그렇게 뛰면 다쳐요.
발바닥 중앙 착지, 그렇게요.”
하온은 당황했지만,
일단 그의 말대로 해봤다.
조금만 의식했을 뿐인데,
발소리가 확연히 달라졌다.
"좋아요. 소리가 다르죠?
소리가 크면 그 충격이 전부 무릎으로 가는 거예요.”
“아...”
“고개도 정면! 시선 고정!”
하온은 그대로 따라 했다.
“좋습니다. 이제 하늘을 보는 느낌으로 고개를 살짝 들어요.”
그 순간, 오늘 처음 보는 하늘이 눈에 들어왔다.
해가 뜨기 전의 하늘은
이토록 깊고 낯선 색이었구나.
“좋아요! 상체가 바르게 섰네요. 이야, 말하면 척척이예요.”
하온은 숨을 몰아쉬며 중얼거렸다.
“헉... 헉...”
하온의 세상에 타인이 들어온 건 선월뿐이었는데,
이 낯선 상황은 도무지 이해되지 않았다.
그런데도 땀은 상쾌했고,
기분은 묘하게 좋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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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흡도 잡아보죠! 자, 따라 해 봐요. 흐읍~ 후하~”
“흐읍—컥!”
하온은 갑작스레 사레가 들려 고개를 숙였다.
거칠게 기침을 쏟아내는 그의 뒤통수에,
낯선 목소리가 파고들었다.
"괜찮아요. 당황하지 말고, 호흡만 잡으면 돼요.
호흡만 맞추면 이제 두려울 게 없어요.”
하온은 헐떡이며 눈을 들었다.
“저한테 맞는... 호흡법이요?”
“그럼요! 달리기가 참 신기한 게,
자세도, 속도도, 다 다르죠.
그래도 결국은 같은 목적지를 향하는 운동이에요.”
그는 하온의 호흡이 고르기를 기다리며 말을 이었다.
“타인과 비교하지 않고 자기 속도를 찾아가는 운동.
정답은 없지만, 정답에 가까워지는 길이랄까.”
하온은 천천히 숨을 고르더니,
다시 발을 내디뎠다.
“템포! 어렵다면 두 번에 나눠서. 흡-흡, 하-하!”
“흡... 흡...! 하, 하…”
그 순간, 하온의 세계가 색을 찾아갔다.
“이상하네. 금방 따라 하는 걸 보면 경험자 같은데,
처음엔 왜 그렇게 엉성하게 뛰었어요?”
하온은 말문이 막혀 머뭇거렸다.
“어...”
그는 웃으며 화제를 바꿨다.
“아, 너무 갑작스러웠죠. 자기소개부터 해야겠네요.
제 이름은 현. 외자예요.
이 시간에 늘 뛰는데, 오늘은 먼저 온 손님이 있어서
괜히 반가운 마음에 좀 무례했네요. 사과할게요.”
현은 호탕하게 웃으며 보폭을 맞췄다.
“제... 헉... 이름은... 헉... 하온...입니다.”
“억지로 말하지 말고, 일단 이번 바퀴만 마저 돌아요. 우리.”
현과의 만남은 무례하게 시작됐지만, 그 순간 이미 우리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