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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재 중 보호자 08화

꽃 봉오리

청하이모

by 솜Som



도윤이가 독립을 한다고 선언했다.

이보다 더 충격적인 일이 일어날 순 없을 거다.

아직 중학생인데 벌써 독립이라는 생각을 하다니...


화재사건 이후, 난 언니 대신 아이들을 키울 수 있는 양육권을 가졌다.

원래 살던 집은 다섯 식구가 살기엔 너무 좁아 난 밤새 일하며 모은 돈으로

더 큰 집으로 이사를 결정했다.


회사와 거리가 더 멀어져도 난 전혀 힘들지 않았다.

그저 이 아이들이 나와 같은 삶을 살지 않기를 바랬던 내 욕심으로 해낸 일들이다.

장녀답게 도윤이는 늘 나에게 남자친구는 없냐 고 묻곤 했다.

남자친구를 만날 여유도 없었고 만나고 싶지도 않았다. 나에게 남자는 별로 쓸모가 없었다.

오빠나 아빠 같은 사람을 다시 만나고 싶지도, 좋은 사람을 만날 거라는 기대도 없었기 때문이었다.

그래서 나는 늘 너희들이 남자친구보다 훨씬 좋다며 좋은 사람이 있으면 소개시켜 달라는 농담을 아이들에게 던지곤 했다.


후회하지 않는다. 이미 이 아이들과 살기로 내 삶을 결정한 순간, 나는 이들에게 내 인생을 기꺼이 내어 주기로 했기 때문이다.

하루하루 성장해 나가는 아이들을 보니 나도 덩달아 기분이 좋았다.




유방암 4기.


예상은 하고 있었고 돌이키기엔 너무 늦었다.

어머니가 암으로 돌아가셨기 때문에 유일하게 암 보험 하나만 가지고 있던 나.

수령인을 도윤이로 지정해 놓았던 지난날의 나를 칭찬한다.

덤덤한 나 자신이 놀랍다.


엄마도, 언니도, 형부도 모두 우릴 두고 먼저 가버렸기에 나는 흰머리 할머니가 될 때까지 살 거라고 다짐했었다. 청바지에 운동화를 신고 캐주얼한 가방을 들고 선글라스를 벗으며 백발의 아름다움을 표현하는 노후를 즐길 거라 생각했었다.

도윤, 도연, 도진, 도하의 자녀들까지 맞이할 상상을 했었는데..



그래.

나에게 여유는 사치다.

나는 이 순간을 있는 그대로 받아 들이기로 했다.

말라가는 나의 몸을 보며 도윤이는 다이어트라도 하냐고 물었다.

처음에는 그렇다며 거짓말을 했다.

곧 도윤이 에게 이야기해야 할 텐데.. 아직 말할 용기가 나지 않는다.

애초에 암 보험 수령자는 도윤이었으니 이제 남은 집 문제만 해결해 주면 난 편안히 갈 수 있을 것 같다.




항암치료는 받지 않기로 했다.


그리고 내 인생을 돌아본다.

내가.. 꽃을 피운 듯 인생이 향기로웠던

적이 있던가?

물론 사랑스러운 조카들이 나에겐 꽃이지만, 이청하라는 사람의 삶 속에서 나는 기쁨에 두 팔을

벌리며 들뜬 적이 있었던가.




아,

내 꽃이 만개하며 향기로울 순간은 죽음 이후에 올 것이었나 보다.



그리 생각하니 어쩐지 죽음이 기다려진다.







아!

무(無) 향의 꽃 봉오리였으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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