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
"루푸스라고.. 희귀병입니다. 남성보다는
여성 환자의 비중이 훨씬 높습니다.. 저도 남성 환자분은 오랜만이네요."
루푸스.
너무나 생소하고 어색하게 만났던 그 이름은
시간이 흐름에 따라 집착스럽고 익숙하게 내 몸에 스며들었다.
얼굴에 붉은 반점이 꼭 봄날에 흩날리는 꽃잎 처럼 번졌다.
나비가 얼굴에 내려앉는다.
뜻대로 움직이지 못하는 손가락의 뒤를 잇는 통증과
끝없이 느껴지는 몸의 열감이 여느 날과 같이 나를 찾아온다.
귀엽게 불리는 이름과 반대로 강렬했던 그것은
병원을 나의 두 번째 거처로 만들기로 했나 보다.
늘어나는 약의 개수만큼 내 위장이 뒤틀리는 횟수도 늘어났다.
매일 아침 눈을 떴다. 그와 동시에 두려웠다.
갑자기 오는 통증은
뼈를 향해 칼을 꽂았다.
얼음이 뼛속을 데웠다.
루푸스와 함께 살아간다는 건,
고통을 견디는 법을 배우는 게 아니라
그 고통 속에서도 살아가는 '방식'을 만들어 가는 일이라는 걸 조금씩 알아가게 된다.
어느 날은 병뚜껑 하나조차 열 수 없는 무기력함에 스스로가 너무 초라하게 느껴졌고,
또 어느 날은 가방을 메는 일조차
누군가의 도움이 필요하다는 사실이 서글프게 느껴졌다.
하지만 수 없이 무너지는 많은 날 중의 하루는
내가 ‘이겨내고 있다’는 고문 같은 희망을 던져 놓기도 했다.
나는 평균적인 루푸스 환자들의 상태중 심각한 경우에 해당했다.
때문에 학교에 다니는 것도 힘들 때가 많아 홈스쿨을 선택해야 했고 친구도 없었다.
혼자 많은 시간을 보내야 했다.
다행히 커가면서 책을 읽는 것과 글을 쓰는 것들에 흥미를 가지게 되었고 시간이 지날수록
그것들은 나에게 삶의 가치를 느끼게 해주는 원동력이 되었다.
나 같은 사람도 삶을 살아갈 수 있다고 말해주는 것 같았다.
아버지의 출판사 N.V 가 유명해지기 시작했다.
때문에 부모님은 바빠서 사업을 챙기셔야 했고 나는 혼자 있어야 하는 시간이 많았지만
내 글을 읽어 주고 나의 미성숙한 의견에 기꺼이 반응해 주는 '러니' 이모가 있어서 섭섭하지 않았다.
내가 어릴 적 한국에 왔을 때부터 '러니' 이모는 정성을 다해 나를 지켜주셨다.
참고로 '러니‘ 는 달리다 Run 의 귀엽게 변형된 애칭이다.
이모의 실제 이름은 '최희령'인데 내가 워낙에 발음을 하지 못했기도 하고,
실제로 우리 집에 오신 지 얼마 안 되었을 때, 고열에 시달리던 나를 망설임 없이 들쳐업고 병원까지 30분을 달려가셔서 응급처지를 한 일이 있었다.
알고 보니 젊은 날, 마라톤을 좋아하셔서 풀 코스를 스무 번이나 완주하신 경력이 있으셨던 분이었다.
그래서인지 체력적으로, 정서적으로도 인내심이 상당하셨다.
남들보다 더 길었던 나의 미운 나이를 단 한순간도 불편함으로 돌려주지 않으셨으니까.
그 이후로 나는 희령 이모를 '러니' 이모라고 부르기 시작했다.
그리고 그날 이후로 나는, 이 병이 낫는 다면 끊임없이 달리는 게 어떤 기분인지 느껴보고 싶다는 생각을 한다.
러니 이모는 나에게 한국에 관한 많은 이야기를 해주셨다.
한국어가 조금 서툴었던 나를 위해 동화책부터 신문까지 다양하게 자주 읽어주셨다.
내가 좋아하는 책은 여러 번 반복해서 읽어 주시기도 했는데, 지금 생각해 보면 지겨우셨나 보다.
엄마에게 출판사에서 나오는 새로운 책들이 있는지 자주 물어보셨던 기억이 난다.
엄마가 새 책을 가져오실 때면 활짝 웃는 이모의 표정을 잊을 수가 없다.
여튼 그 덕에 나는 어릴 때부터 책이랑 가깝게 지낼 수 있었고,
글 쓰는 재주가 있다는 걸 알게 된 이후에는 집안에 새로운 공기가 흐른다는 걸 느꼈다.
이모가 나와 가장 많은 시간을 보내긴 했지만 부모님이 나에게 관심이 없으신 건 아니었다.
오늘 하루는 뭘 했는지. 약은 잘 먹었는지. 잠은 잘 잤는지.
바쁘신 와중에 엄마는 특히 나에게 관심을 더 기울였다.
사춘기 시절에는 엄마의 관심이 집착으로 느껴져 많은 갈등을 겪기도 했지만
전쟁도 피해 간다는 중2의 시절이 지날 무렵,
나는 적당히 사회화되고 적당히 타협해 나갔다.
가정의 사회화가 늦은 나이에 마무리될 쯤,
나는 친구라는 새로운 장르에 도전하게 되었다.
내 삶이 남들처럼 적당한 온도로 유지될 수도 있다는 생각이 스치는 찰나
착각이라 정의하며 고개를 좌우로 젓는다.
묘한 감정이 일렁거려 두려움을 밀어내듯
창문을 열었다.
그날.
시원섭섭한 바람이 불었던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