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가고 싶어 한국!!!!!!!!!! 여기 싫어! 벌레도
많고! 덥다구!! 그리고 사람들이 무슨 말을 하는지도
모르겠단 말이야!!”
야무지게 엄마한테 소리 질렀던 기억이 난다.
아주 소심하고 말이 없던 나에게 내면에 있는 깊은 감정들을 토해내게 한 7살의 겨울이 찾아왔다.
한 손엔 초록색 크레파스를 들고 다른 한 손엔 빨간색 크레파스를 쥔 채로 소리를 지르던 그날,
엄마의 표정이 묘하게 흔들리는 것은 무엇 때문이었을까.
엄마의 선택으로 인해 강제적으로 동남아로 이사를 왔던 나는 난생처음 보는 꼬불꼬불하고 동글동글한 언어를 보며 그림 같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신기하게 느껴지던 언어에 그렇지 못한 딱딱한 발음과 억양이 나에게는 무섭게 느껴졌다.
말도 안 되게 어마어마한 양의 비가 한꺼번에 쏟아지는 것도, 화장실에서 가끔씩 바퀴벌레나 도마뱀과 인사를 나눠야 하는 것도 내 심장을 들었다 놨다 했다.
사계절 이라고는 코빼기도 안 보이는 무더운 날씨가 난 너무 견디기 힘들었다.
곳곳에 겨울이라고 꾸며놓은 크리스마스트리와 더운 날씨는 너무나 생뚱맞아서 내 감성을 충분히 채우지 못했다.
한국과 너무 달랐던 환경에 적응하려 엄청난 노력을 해야 했고 그만큼 엄마와 어릴 때부터 많이 싸웠다.
엄마도 참 대단하지. 그렇게 매일 떼를 쓰는데 단 한 번도 내가 가려는 길과 같은 방향을 바라봐 주지 않았다.
그런 나도 참 독하다. (엄마 말로는 내가 아빠를 닮았다고 하는데 내 생각에는 난 엄마를 닮았다.)
매일같이 엄마 앞에서 나뒹굴고 화를 냈고 난 엄마가 원하지 않는 다른 방향으로 견디는 법을 터득하려 최선을 다했다.
어느 날 엄마와 집에서 조금 먼 거리에 있는 시장을 지나다가 아주 마르고 오래된 옷을 입은 아저씨 한 분이 페인트와 물감, 손에는 붓과 다른 한 손엔 팔레트를 들고 사람을 그리시는 걸 봤다.
아저씨가 그린 그림 속 인물은 맑은 두 눈과 긴 머리를 가지고 있었고 살아 움직일 것 만 같은 동작을 하고 있었다. 많은 사람들이 그 아저씨의 그림을 쳐다 보며 지나갔다.
그때 그 아저씨의 그림을 보면서 어떤 마음으로 그리면 저런 그림이 그려지는 것인지 나는 너무 궁금해졌다.
호기심에 엄마를 벗어나 말도 안 통하는 아저씨에게 달려갔다.
옆에서 아저씨의 그림을 뚫어져라 쳐다 보고 있으니 그 아저씨가 내게 어떤 말씀을 하셨고
난 전혀 알아듣지 못했다.
아저씨는 그저 웃으시며 나에게 붓 하나를 주셨다.
그리곤 가져도 된다라는 느낌의 손짓을 하신 후 묵묵히 그 자리에서 다시 그림을 그려 나가셨다.
“바유화 어디 있어?!.”
엄마가 다급하게 날 찾는 소리가 들려왔다. 아저씨에게 감사인사를 나누지 못한 채 난 그 붓을 받으며 다시 엄마에게로 달려갔다.
“엄마, 나 물감 사주면 안 돼?”
그날이 처음으로 엄마에게 크레파스가 아닌 물감을 사달라고 했던 날이다. 엄마는 살짝 꺄웃한 표정을 지으시더니 아무 말 없이 집과 10분 거리에 위치한 문구점에 들러 붓과 물감들을 사주셨다.
가끔씩 그 아저씨를 만난 날이 떠오르는데, 길가에 앉아 귀를 뚫는 오토바이 소리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집중하며 오므린 입으로 진중하게 그림을 그리셨던 표정이 잊혀지지 않는다.
그날 이후로 난 더 이상 그곳에서의 삶을 엄마에게 불평하지 않았다. 오히려 그곳에서만 느낄 수 있는 것이, 거기서만 맡을 수 있는 냄새와 그곳만의 색깔이 있다는 걸 배워나가기 시작했다.
엄마는 수채화를 좋아한다고 하셨다.
아빠는 유화를 좋아한다고 하셨다.
내가 그림을 그린다고 했을 때 처음으로 이들과 같은 방향에 서 있을 수 있겠다는 생각을 했다.
어쩌면 다시 만나 웃을 수 있는 가장 빠른 길이리라..
그렇기에 그 어린 날의 나는, 그리는 것을 멈출 수 없었다.
몇 년 뒤, 엄마를 졸라 다시 찾아갔던 그 시장엔 더 이상 그 아저씨는 계시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