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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결고리

도윤

by 솜Som Dec 11. 2024


난 내 옛날 중학교와 그리 멀지 않은 곳에 위치한 고등학교에 진학을 했다.

어째서인지 내가 아는 친구들은 하나도 없었고 전부 새로운 얼굴들로 가득했다.

사실 난 사람들의 얼굴을 잘 기억하진 않는다. 친화력이 별로 없는 탓에 초등학교 때나 중학교 때도 친구가 하나도 없었다. 사람들을 사귀는 게 귀찮기도 했고 딱히 다가가지도 않았다.


배정된 반에 들어가 창문과 가까운 구석진 뒷자리에 앉아 이모가 새로 선물해 준 소설을 읽고 있었다.  

내용을 읽어 보니 꽤 오래된 이야기 같았다.

북적한 교실에서 들리는 다시 만나 반가워하는 여자애들 목소리가 들렸다. 첫날이지만 친화력이 좋은 남자애들은 점심시간이 끝나자마자 축구를 하며 땀냄새를 풍겼다.


그중, 유일하게 눈에 띄는 남자애가 있었는데, 조용하면서도 개그 감각도 있었고 키도 크고 좀 생겨서 그런지 첫날부터 여자들이 그 애 주변으로 스멀스멀 몰려서 눈을 흘기며 맴돌고 있었다.

나는 딱히 신경 쓰지 않고 다시 책을 읽었다.

이어폰을 귀에 꽂으려는 순간이었다. 갑자기 옆에서 속삭이듯 여자애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안녕, 이름이 뭐야?”


그 여자애는 초롱초롱한 눈빛으로 내 이름을 물어봤다. 난 당황했지만 차분하게 이름을 알려줬다.


“안도윤이야..”


살면서 그렇게 내 이름을 정확하게 말한 적이 없었던 것 같다.


“도윤이구나, 난 바유화라고 해.”


‘바’라는 성씨가 흔하지 않아 어색했지만 일단 친구 하나 만든 기분이라 괜찮았다. 유화는 내가 읽고 있는 책을 보더니 흥미롭다는 듯한 표정을 지으며 나에게 물었다.


“너 소설 좋아하는구나?”


웃으며 묻는 유화의 말에 난 뭐라 대답할지 곰곰이 생각하다 입을 열었다.


“응.”


이게 대답이었다. ‘응’ 말고는 생각이 안 났다. 민망함에 책으로 얼굴을 가렸다.


때마침 선생님이 들어오셨다. 학생들은 모두 자리에 앉았다.

조금은 연세가 있어 보이는 남자 선생님이었다. 왁스를 잔뜩 발라 고정시킨 머리와 깔끔한 옷차림이 오늘 첫날이라고 신경 좀 쓰신 것 같았다. 셔츠 카라쯤 에 걸쳐놓은 안경을 쓰시더니 말씀하셨다.


“학생 여러분들 모두 환영합니다. 첫날인데… 음… “


선생님께서 잠시 고민하시더니 말을 이어 갔다.


“그럼 오늘은 우리 학교에 있는 동아리 부 활동부터 천천히 정하는 시간을 갖겠습니다.”


곧이어 선생님은 앞 줄부터 동아리 전단지를 나눠 주셨다. 입학하자마자 무슨 동아리냐 라는 생각에 피곤해지려는 찰나, 유화가 나에게 말을 걸었다.


“너 소설 좋아하면 소설 동아리에 들어올래?”


소설 동아리 라니 그런 동아리는 처음 듣는다.

그건 그렇고, 전단지를 아직 받지도 않았는데 소설 동아리가 있다는 건 어떻게 알았을까?

무슨 꿍꿍이가 있는 것 같았지만 유화의 끈질긴 설득(으로 포장된 집착)으로 인해 귀찮음이 한껏 올라왔던 나는 의지와 상관없이 전단지에 적혀가는  내이름을 막지 않기로 했다.


사실 워낙에 소설을 좋아해서 그냥 책만 읽다 나오겠지 뭐…라는 생각을 하며 내심 그냥 내버려 둔 것 같기도 했다. 그렇게 나와 정 반대의 성향을 가진 유화와 어려웠지만 조금씩 친해지기 시작했다.


입학식 한 달 뒤, 우리는 동아리활동을 시작했다.     

나와 유화는 각자 좋아하는 소설책을 손에 쥐고 계단을 내려가 학교 지하층에 있는 ‘소설 동아리부’라고 적혀있는 교실 안으로 조심스럽게 문을 열며 들어갔다.

지하실이라 제법 추웠지만 교실 안만큼은 따뜻했다. 문을 열자 도서관이라 해도 믿을 정도로 큰 규모의 공간과 각 선반에는 소설들이 엄청나게 쌓여 있었으며, 앉아서 쉴 수 있는 공간과 안쪽에는 또 다른 방 하나가 있었다. 마치 어렸을 때 느꼈던

N.V 서점의 냄새가 나는 것도 같았다.


‘어쩌면 조금 괜찮을지도…’


내가 과거의 향기를 느끼는 동안 유화는 매우 익숙하게 교실 안을 돌아다녔다.


“너 여기 원래부터 알고 있었어?”


자연스레 책 목록을 컴퓨터로 확인하는 유화의 모습에 의아했다.


“그게… 내가 여기 있는 동아리 사람들이랑 중학교 때부터 아는 사이야, 헤헤”


어쩐지. 동아리 지원서를 아직 받지도 않았는데 나에게 바로 밀어붙이던 유화의 얼굴이 생각났다. 유화는 미안하다는 듯 웃음을 짓고는 방문 앞에서 누군가를 불렀다.


 “진이 오빠! 나 왔어! 내 친구랑. 나와봐!”


유화가 ‘진’이라는 이름을 부르자 한 남학생이 문을 열고 나왔다.

진은 큰 키에 가느다란 팔과 다리, 빼빼 마른 몸을 가지고 있었고, 어깨까지 닿는 긴 머리에 한 손엔 책을 들고 있었다.


“친구?”


유화가 대답했다.


“ 응, 같은 반 친군데 입학 첫날에 소설을 읽고 있더라고, 좋아하는 소설 내용이 오빠가 읽는 것들이랑 비슷한 것 같아."  


내가 입학식 때 들고 온 책은 ‘루카스와 꽃’이라는 과거 10년 전에 베스트 샐러였던 책이다. 정확하게 말하자면 소설이라 하기엔 시집에 가깝다.

루카스라는 젊은 청년이 어느 날 불치병에 걸려 병실에서 자기가 제일 아끼던 꽃을 바라보다가 생을 마감하는 이야기를 시로 집필한 내용인데 소설을 굳이 좋아하지 않은 사람들에겐 딱히 재미있는 내용은 아니다.


"책 많이 읽어?" 진이 물었다.


“저희 이모가 때마다 소설책들을 선물해 주셔서요.."


"와 좋겠다... 그런데 존댓말은.. 흐흐"


"아.. 응"


나는 진이 약간 또라이 성향이 있다고 생각했다.

그래도 이 오빠랑은 친해지기까지 오래 걸리진 않을 것 같았다.


“여기는 말 그대로 소설에 관심이 있는 사람들의 모임인데. 일주일 동안 읽은 책을 같이 공유하고, 해석해 보고 또 같이 소설을 쓰는 작업도 해. 그래서 재미없다고 아무도 지원을 안 하더라.. 망하기 직전인데.. 다행히 너희가 들어와서 1년은 더 버틸 수 있을 것 같아.”


진이 만족스러운 표정으로 말을 끝마쳤을 때, 방 안에서 다른 남학생이 하품을 하며 나왔다.


“에휴, 이게 뭐가 재밌다고 쯧쯧..”


한숨을 쉬며 나오는 남자애는 큰 키를 가진, 여학생들이 두리번거리게 만드는 어디서 자주 본 나의 대각선 뒷자리에 있던 애와 상당히 닮아있었다. 옆에 서있는 진 보다 훨씬 건강해 보였지만 눈 밑에 다크서클이 가득했다. 얘는 말하는 걸 보니 소설을 좋아하는 것 같지 않은 것 같다.


“우혁아 뭐 하고 있었어?”


아. 우리 반에 있는 나의 대각선 뒷자리의 연우혁이 었다.


 “어... 집필 끝내고 컴퓨터로 작업해야 돼.”


우혁이는 취미로 어린이 동화 작가로 활동한다고 했다. 의외다.

우리끼리만 알고 있는 비밀이라며 말하지 말라는 제스처를 취했다. 난 말할 생각이 없다.

그다지 유명한 작가는 아니었지만, 그래도 그렇게 해서 스스로의 미래를 위해 많진 않아도 자금을 조금씩 모아두는 중 이라며 또 자기는 수학을 너무 좋아해서 나중에 커서 경제 공부를 더 깊게 할 거라는데, 난 우혁이의 말에 관심이 없다. 얘도 또라이인가.


소설 동아리부는 시간이 지날수록 정상적인 인간이 하나도 없다는 걸 알게 했다. 그래도 이들은 공통점이 있었는데, 자기가 좋아하는 건 누가 말릴 수 없을 정도로 미친 듯이 끝을 보는 성격이 있다는 것이었다 난 그렇게 동아리활동을 이어갔다.


조금은 정신없는 하루를 보내고 학교가 끝난 후,

중학생 동생들을 평소처럼 걸어서 데리러 갔다.

역시 쌍둥이 남매가 학교 정문에서 먼저 기다리고 있었다.


 “도연아, 도진아!”


이름을 부르며 뛰어가서 늘 그랬듯 함께 하교를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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