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윤
7살.
어렸을 적 세명의 동생들과 함께 집 앞 근처
놀이터에서 놀고 있었을 때였다.
펑.
갑작스러운 거대한 폭발음이 이명과 함께 들려왔고, 깜짝 놀란 막내가 그네를 타다 넘어졌다.
잔뜩 겁에 질려 울음을 터뜨리는 동생들을 감싸고. 미끄럼틀 안쪽에 위치한 작은 공간에 동생들을 대피시켰다.
7살에 내가 할 수 있는 최선의 방법이었다.
그리고 난.
무슨 생각으로 그 폭발이 일어난 장소로 홀로 뛰어갔던 걸까.
뜨거운 공기가 날 맞이한 곳은 굉장히 익숙하지만 전혀 다른 향기가 났다. 주변 사람들이 수군거리는 소리가 이명이 사라짐과 동시에 크게 들려오기 시작했다.
불이다. 눈이 따가워 눈물이 났다.
한 아주머니가 날 발견했을 때 허겁지겁 뛰어오며 말씀하셨다.
“얘, 얼른 여기서 나가자, 여긴 너무 위험해!”
날 데려가려고 하는 아주머니의 손을 뿌리치려 애쓰며 나는 작은 소리로 말했다.
“엄마.. 아빠.?”
말리는 아주머니의 품을 벗어나 나는 불이 난 곳으로 뛰어 들어가려 했지만 어디선가 나타난 소방관 아저씨가 날 들쳐업고 소리쳤다.
“안돼!”
당시 난 7살.
나는 아무런 힘이 없었다.
연기가 따가워서 흘린 눈물인지 받아들일 수 없는 광경에 괴로워서 흘린 눈물인지
사실 아직까지 잘 모르겠다.
처참하게 타오르는 우리 집에서 부모님의 비명소리가 시커멓게 들려오는것 같았다.
모든 것이 두렵고 후회가 되었다.
부모님에게 가까이 갈 수조차 없이 어렸던 것, 부모님에게 놀이터에 같이 가자고 한번 더 조르지 않았던 것, 그리고 우리는 앞으로 어떻게 되는것일까 를 어린 7살의 나이에 고민을 해야했다.
그리고 이 사실을 알게 되면 동생들은 뭐라고 할까? 머릿속이 지끈거리며 눈물만 나왔다.
화제가 진압된 후 나와 동생들은 근처 경찰서로 이동했고 그곳에서 엄마의 동생인 청하 이모를 만났다.
청하 이모는 늘 밝은 사람이었다. 하지만 그날만큼은 아니었다.
그날은 우리가 처음으로 청하 이모의 서글픈 얼굴을 본 날이다.
그 후의 일은 잘 기억이 나질 않는다. 어렸던 우리에겐 너무나 크고 버거웠던 걸까. 다행히 동생들은 커가면서 그 일들을 점점 잊어가는 듯 했다. 하지만 난 여전히 불이 무섭다. 그리고 그걸 제일 잘 아는 청하 이모는 우리를 키워 주시면서 단 한 번도 가스레인지를 사용한 적이 없다.
한동안 난 그 사건이 꿈이길 바라며 잠들었던 날들이 많았다. 하지만 그런일은 일어나지 않았다.
나에게는 지울 수 없는 하나의 흉터,
약을 발라도 사라지지 않는 그런 나쁜 흉터가 생겼다.
부모님이 돌아가시고 5년 후, 청하 이모가 내 12살 생일을 맞아 처음으로 소설책을 선물해 주셨다.
마틸다라는 제목의 소설책이었다. 초등학교에서 적응을 잘 못해 친구도 없고 외로워하던 나에게 책들과 친구가 되어보라고 하시면서 건네주셨다.
처음엔 아무런 생각 없이 읽었다. 그냥 동화책과 다를 게 없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책을 읽지 않던 나에게 글밥이 많아진 첫 소설은 달랐다. 더 할 나위 없이 멋지게 표현되어 있는 글들, 그만큼 더욱 자세하게 쓰인 것들은 나에게 엄청난 에너지를 줬다.
난 그 후로 소설을 매우 좋아하게 되었고 수 많은 소설책들을 읽어 나가기 시작했다.
소설을 읽을 때 책들 속 주인공의 감정과 그 모든 장면들의 분위기까지 상상되는 것이 너무 좋았다.
괴로운 생각이 들 때, 도피할 수 있는 가장 조용하고 안전한 수단이 되어주었다.
그렇게 나는 나의 과거의 트라우마들을 조금씩 정리할 수 있게 되었다.
난 책들을 접하기에 매우 좋은 환경에 있었다.
청하 이모는 대기업 출판사 ”N.V”(NoVel)에서 근무하는 중이었다. 집과 학교의 딱 중간의 위치한 곳이었다. 그곳은 유명한 작가란 작가들의 책들이 처음 출판되기 시작하는 곳이자 베스트셀러가 가장 많이 모이는 곳이다. 덕분에 난 책들과 훨씬 가깝게 지낼 수 있었고 하교시간에는 동생들과 함께 출판사 안에 있는 N.V 서점에 들러서 이모의 이름으로 책들을 빌려 읽었다.
그런 일상을 반복하길 2년 후 즈음에
청하 이모가 승진을 하게 되어 다섯명이 살기 더 좋고 넓은 집으로 이사를 갈 수 있다는 말씀을 하셨다.
난 N.V 출판사와 멀어지는 게 싫었다. 그 곳의 서점도 이젠 안녕이구나.
하지만 투정부릴 순 없었다.
청하 이모는 미혼인 상태에 오랜 시간 혼자 좁은 집에서 조카들을 키우며 살고 계셨으니.. 우리에게 싫은 소리 한번 하신 적 없이 이 공간에서 살아낸 것 자체가 오히려 기적이었다.
친 자식도 아닌, 그것도 네 명의 조카를 혼자 키우랴 일하랴 정말 정신없이 살아온 대단한 분이다.
아직 젊은 이모가 우리 때문에 연애도 못하고..난 늘 그런 이모에게 너무 미안했다.
너무 고마운 사람, 내가 사랑하는 우리 이모. 내가 꼭 효도할거다.
난 18살이 될 때 독립을 하기로 결심했다.
4년 남았다. 아르바이트를 해서 이모에게 적게나마 보탬이 되어주고 싶다.
“이제 우리 도윤이도 14살이니 우리가 이사 가는 집에 방 하나를 너에게 줄게, 도윤이도 개인공간이 필요할 나이니까.”
날 이렇게 까지 생각해주는 이모의 사랑을 가슴속에 안고 그렇게 우린 다른 곳으로 이사를 갔다.
그 후로 3년. 동생들은 벌써 중학생이 되었다.
동생들 입학식에 가서 사진도 잔뜩 찍었고 오랜만에 다 같이 외식도 했다.
청하 이모의 표정도 언제 그랬냐는 듯 전보다 훨씬 밝아지셨다. 출판사에서 한동안 이모를 무지하게 잡아놓고 일을 시키는 탓에 늘 늦게 집으로 귀가하시는 게 일상이 되었는데 오랜만에 청하 이모의 웃는 얼굴을 보니 기분이 좋았다.
시간이 지나니 과거 일들이 점점 멀어져 간다는 걸 느꼈다.
솔직히 이젠 딱히 과거에 머물러 있지도 않다. 아무런 감정도 없다.
이따금씩 생각이 나면 소설을 읽으며 그 생각들이 잠잠해지게 만들 뿐이다.
아마 조금, 덤덤해진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