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기심이 판치는 세상
인 심(仁 心)
- 김 중 근
우리가 사는 이 시대는 과연 행복 할까? 우문(愚問)일지는 몰라도 이 질문에 대체적으로 부정적인 견해(見解)가 많은 것이 오늘날의 현실이다. 남보다 내가 우선한다. 코로나를 겪으면서 기아 속에 굶주림이 빈번함 중에도 내 가족, 내 신변의 안위만 챙기려한다. 이웃에 대한 무관심이 도처(到處)에 팽배해 있다. 진정한 마음을 열기엔 사람과 사람 사이의 벽이 철근 콘크리트 벽보다 두꺼워서 그 장벽을 좀처럼 헐어내기 어렵다. 질식사(窒息死)할 것 같다.
감언이설(甘言利說)과 교언영색(巧言令色)은 처음 마음을 혼돈스럽게 하지만 결국 마음을 울리게 함으로써 전세 사기, 주식 투기 등으로 피해자는 길 거리에 내몰리는 현실이다. 진실을 주기엔 마음을 어지럽게 한다. 거짓이 마음을 아프게하고 믿음을 다치게 한다. 무정신(無正信)의 혀놀림은 진정한 관계를 만들 수 없다. 늑대의 마음이 고통을 잉태하며, 여우의 마음이 침묵을 만들 듯이, 우리는 이 시대를 고독하고 외롭게 살고 있다. 간절히 서로 아끼는 이야기를 듣고 나눌 사람으로서 왜! 우리는 진실한 이야기를 나눌 사람이 주위에 없는가?
우리 사회는 가끔 지하철이나 시내 버스를 타보면 2.30대 젊은이가 허리를 꼬부리고 제 몸마저 지탱하기 힘에 겨운 노인을 앞에 세워 놓고도 눈을 돌려 외면하는 광경(光景)을 쉽게 볼 수 있다. 심지어 경노석과 임산부석(姙産婦席)에 태연히 앉아 가는 젊은 이도 종종 목격된다. 얼음같이 차가운 가슴들이다. 마치 도덕(道德)의 문맹사회(文盲社會)에 살고 있는 듯 하다. 어른이 없는 사회가 되어 버린 것이다. 아이들과 젊은 이들이 잘못하고 행패를 부려도 선 듯 어느 어른이 나서지 못하는 시대이다. 봉변이 두렵기도 하겠지만 주위 사람들의 무관심이 조장된 그런 사회적 분위기가 어른을 없게 한 것이다. 내일이 아니므로 서뿔리 나서서 야단치거나 제제하다 혹 망신이나 봉변당하지 않을까?.. 하는 두려움이 주 원인이겠지만 무엇보다 무관심과 내 일이 아닌 남의 일로만 여기는 개인주의적(個人主義的)인 의식 성향(性向) 때문이다. 엄히 야단치고 타이름에도 내 일과 관계되어 연루되었을 때는 얼굴을 붉히며 욱박지른다. 그렇지않을 때는 외면하는 일이 많다.
이제는 준엄히 야단칠 어른이 가정에도, 온 마을에도, 온 나라에도 없다. 서로가 서로를 인정하려들지 않고 어른을 어른으로서 대우하지 않는 그런 서글픔으로 동방예의지국(東方禮義之國)의 이미지는 사전에서나 볼 수 있는 아득한 옛말이다. 정치권에선 편 가르기가 일상이다. 국개의원 녀석들은 몇 몇을 빼고 하나같이 정상적인 인간이 없다. 입에서 나오는 말과 행동은 늘 다르다. 아이들이 보고 행(行)하는 일들이 기성 세대를 빰치니 가르치는 선생은 있지만 선비와 스승은 없다. 배우는 학생은 있지만 올바른 제자가 없다. 황폐한 교육과 사회 현실에서 어른을 기대하고 선생님을 기대하는 것이 어쩌면 우리의 씁쓸한 허상이다. 우리나라의 교육 제도 전반을 들여다볼 때이다. 입시 교육에 매몰된 한국의 교육을 전인 교육과 인성 교육 중심의 틀로 바꿔야 나라가 제대로 서고 올바른 사회로 나갈 것으로 본다.
그러기에 우리는 해 뜨는 아침의 맑은 햇살처럼 맑은 말을 사용하는 사람이 절대 필요하다. 비 바람에도 꺼지지 않을 불꽃같은 정열의 이야기를 나눌 사람....진정한 마음을 줄 그런 사람이다. 밝게 옳고 바른 말을, 아름다운 심성(心性)의 향기를, 올바른 정견(正見)을 보고, 듣고, 느끼며 이야기 할 수 있는 사람 말이다. 진정한 마음과 마음을 나눌 수 있는 그런 사람이다. 이젠 서로의 문을 헐어야 되겠다. 마음과 마음을 열어서 반목과 멸시와 시기로 부터 화해와 존경과 사랑으로 채워야 할 때이다. 철벽같은 대문과 현관 문을 열어서 인심(仁心)이 웃음으로 피어난 꽃을 주위에 심어야 할 시기이다.
잊혀졌던 시절이 그립다. 마을에서 혼례가 치뤄지면 온 마을 사람들이 대청 마루며 소슬 대문 앞 마당까지 방안 가득 잔칫상을 같이 받아서 호탕하게 웃음을 나누고 축복을 나누던 시절이 엊그제였다. 잔치 떡을 빚고 쑥개 떡이라도 빚을라치면 이웃 사람 모두 불러 텁텁한 인심을 싸리나무 울타리 사이로 건내주던 따스한 정이 있었다. 낯선 떠돌이 행상이 밥상 앞에 기웃거리면 자기들 끼리 먹기 미안해서 반가이 불러세우곤 했다. 마치 멀리 떨어져 있다 만나는 가족처럼 융숭한 대접을 하였던 풋풋한 인심이 바로 어제 같다. 코 찔찔이 개똥이, 까까머리 쇠똥이 모두 고추잠자리 잡는다고 천방지축 쏘다니다 허기지면 삼순이 집에 들어가 열무 김치에 찬 밥을 물에 말아 고추장 듬뿍 찍어서 단 몇 분만에 먹어치웠던 애틋한 시절이 분명히 우리에겐 있었다. 그런 어제 같은 시절이 그립다. 아마 지금 같으면 무단 침입죄와 절도죄로 감옥에 갈 일 들이다. 이 모두가 우리 한국적 인심이요 이웃의 정을 확인할 수 있는 고유의 정서였다.
이젠 너나 할 것 없이 옛날같이 나 부터 마음의 빗장을 풀자! 화사한 봄빛처럼 끈끈한 정을 나눔으로써 서로를 소중히 여기며 살자. 봄이 오면 빙토의 땅에 푸르름을 내림같이 잊혀졌던 계절이 다시오듯, 이젠 슬픔을 가볍게 떨치고 기쁨의 노래를 하자! 기쁨의 노래는 서로를 위해 정답고 진실한 말만을 나누며 사랑을 주기 때문이다. 사회 각계각층(各界各層)의 지도자들과 주위 여러분들 그리고 모두 우리를 위해 정답게 말을 주고 받자. 사심(邪心)없는 사랑을 주고 기쁜 마음으로 이웃을 대하자. 비가 온후 맨 처음 열리는 하늘에 금방 헹구어낸 햇살처럼 정을 나누며 살자! 그러면 정말로 잎이 돋고 꽃이 피는 봄이 삶에 새 희망과 생명을 주듯이, 그래도 이 세상은 살만한 가치가 있다는 희망이 우리에게 다가오지않을까...그러다보면 무관심(無關心)과 냉소주의(冷笑主義)와 이기심이 판치는 세상은 저 멀리 달아나겠지...
오늘은 슬픔이 쌓이는 이 시간을 위해 거친 비바람 아랑곳하지 않고 전화 한마디에 달려 나올 수 있는 이웃 사람들을 불러서 소주라도 한 잔 해야겠다... 뱃살이 보이는 투명한 유리 용기에 수년간 정성스럽게 밀봉해 두었던 담금주를 모두 꺼내 초여름 빛 안주 삼아 이들과 함께 밤새 취해봐야지...
이기심이 판치는 세상을 위하여 인심(仁心)에, 정(情)에 취해보겠다....
- 2023년 6월 12일 웅포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