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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런치북 홀라당 22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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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중근 Dec 08. 2024

이어도와 무지개

저 편 넘어...

이어도와 무지개  

        

- 김 중 근  

   

무거운 아침, 동녁 하늘에 황금빛 대신 잔득 칙칙한 구름 아래로 잔잔한 비가 내린다. 눈을 뜨면 맑은 이슬에 영롱하고 눈을 감으면 파아란 바람에 실려왔던 하얀 구름이었다. 맑고 깨끗한 바람처럼 밀려왔던 구름이 어디에서 와서 어디로 가는지 모른다. 한 곳에 웅크리며 잠자고 있다가 오늘은 물 먹은 먹장 구름이 온 하늘을 덮어 눈물을 흘리더니 어느새 밖이 환하다.비가 오나 해가 나거나 우리에게 희망은 늘 마음속 한 구퉁이를 차지하고 산다. 함께 기뻐 뛰고, 함께 눈물을 흘리고, 함께 괴로워 슬픔에 젖기도 한다. 


습관처럼 아침은 반수면 상태로 진 종일을 보내는 날이 많다. 아내와 어머니는 행여 내 수면에 방해가 될까 싶어 조용한 목소리로 두런두런 거린다. 불면에 시달리는 나에 대한 극진한 배려이다. 반 나절 만큼 쓸 무지개를 비 갠 하늘에서 볼 수 있길.... 기대하며 괭이 세수를 가까스로 한다. 부슬부슬 내린 비다. 채 현관 문 조차 열어보지 못할 정도로 만사가 귀찮다. 물 한잔에 두어 수푼 꿀을 타서 입에 벌컥벌컥 털어 마시니 전 날의 숙취가 씻겨 내려간다, 시간이 얼마나 지났을까 밖이 환해지더니 비 갠 하늘에서 무지개가 둥근 아치를 그려댄다. 무지개를 잡으려 달려가 뜀박질하던 어렸을적 난.....무지개의 허구(虛構)를 몰랐다. 작고 맑은 샘물이 내 몸안에서 가득해서 그 때는 인생의 무상(無想)함이 무엇인지도 몰랐다. 잡을 만하면 곧 사라지고 마는게 무지개임에도 불구하고 손으로 잡을 수 있다고 생각했다. 달려도 달려도 무지개를 잡을 수 없다는 사실을 몰랐던 것이다. 허상을 믿고 잡기는 커녕 내가 경험한 세월(歲月)의 뒤안길에서 가장 거칠고 고통스러웠던 순간이었다. 해가 동녘에 떠서 만들어낸 서쪽의 무지개....금강 쪽을 바라보면 그 보다 더한 아름다움이 없다. 산을 움직일 만한 믿음을 가지고 내가 마음 속에서 키운 대로 생긴 무지개의 신비로움을 보며, 앞마당 개울가의 어렸을 때 무지개를 떠올린다. 무지개를 잡아야겠다는 욕심에 손 사래를 치고 잡으려 했지만 달리고 달려도 손에 잡히지않는다. 빨주노초파남보 7색 무지개....지금은 물리적으로 광학적인 분석이 앞서서 신비로움이 깨졌지만 어릴 땐 하늘에서 선녀님이 무지개를 타고 땅으로 내려온다고 믿었으니 굉장하기만 했다.....곱고 이쁜 무지개 넘어에는....무엇이 있을까?..... 무엇이 살까?.....


이즈음 온 세상은 울분과 적개심(敵愾心)으로 철철 넘쳐난다. 대한민국은 내 편과 네 편으로 두동강이 났다. 두 간격 사이에서 정말 나쁜 사람들과의 간격은 극에 달아있는 것 같다. 나쁜 넘들에게서는 오물이 썩고 썩어서 악취(惡臭)가 사방팔방(四方八方)에 진동한다. 구더기와 파리떼만 불러들이는 데도 눈 하나 꿈쩍함없이 거짓말과 선동질을 일삼는다. 가짜가 진짜를 능멸하는 세상이니 온갖 세상은 국개 의원들의 돈 봉투 의혹 사건, 코인 사건, 대장동 비리 사건, 백현동 비리 사건, 대북 송금 사건 등 부패(腐敗)와 구취(口臭)가 난무하다. 메스컴에선 좌파 우파로 나뉘어진 패널의 진영 논리로 국민은 피로감이 높다. 상대편이 아무리 잘 하고 옳더라도 내편이 아니면 무조건 나쁘다. 집단 지성(知性)의 작동(作動)이 마비된 사회다. 시정잡배(市井雜輩)의 욕설(辱說)과 편 가르기가 난무하는 세상으로 변질됐다. 아울러 인천 미추홀구의 전세 사기 사건으로 세입자 4명이 극단적인 선택을 했다. 정치하는 X넘들은 소란피우기 일수이고 현란하게 그들의 마음에 상처를 낸다. 돌부리에 채여 넘어진 분들에게 도량과 아량으로 보듬어줘야 하는데 현실은 냉혹하다. 그들은 증오심과 적개심만 가득해서 비인간적인 세상을 향하여 도와달라고 소리 높여 외치고 있다. 피의자는 도망가고 서로 등을 대고 도저히 가까워질 수 없는 마음과 마음 사이에 콘크리트 벽보다 더 두껍고 높은 장벽을 쌓고 있다. 대화가 수월하지 않다. 반목(反目)하는 간격(間隔)에서 증오가 싹트고 미움만이 가득하다.     


환자가 병석에 누어 있을때면 손을 내밀어 일으켜줘야하듯이 언제나 적개심(敵愾心)과 증오심(憎惡心)이 배어있는 사회에 아량(雅量)을 베풀 수는 없는가? 불신과 씁쓰름한 냉소(冷笑)를 가진 악연(惡緣)들을 끊고 늘 언제나 함께 마음을 나눌 수 있는 얼굴로 마주 할 순 없는가?  반목(反目)하여 등을 돌리기 보다 포용할 순 없는가? 비수(秘邃)와 같은 칼날을 마음에 품고 살기보다 햇빛 찬란한 사랑을 가슴에 담을 순 없는가? 성난 파도와 태풍처럼 거칠게 살아온 것들을 막아버리고 미풍처럼 싱그러운 바람과 함께 평화롭게 살 순 없는가? 당장 빵을 살 수 없는 사람들에게 돈 벼락을 내려 줄 순 없는가? 내가 꿈꾸어왔던 지상 낙원과 무릉도원(武陵桃源)은 존재하는 것일까?.....내가 진실로 다가가 구원을 받을 수 있는 유토피아는 있는 것일까?..이 모두 우리 마음 속에 “이어도” 하나 쯤은 있어서 희망을 품게 한다.      


이어도는 보이기도 하고 없어지기도 하는 암초이다. 지금은 제주도 서귀포시 마라도로 부터 남서쪽으로 149km 떨어진 지점에 있는 수중 암초로. 2003년 6월에 이어도 종합 해양 과학 기지가 설치되었다. ‘파랑도’라고도 했지만 이어도는 어부들의 마음 속에 꿈과 같은 섬이었다. 바닷가 사람들은 생업으로 거친 바다를 무대로 산다. 이어도는 그들의 삶의 전선에서 바닷가 사람들의 내세적(來世的) 염원을 심어주는 강렬한 소원(訴願)이 된다. 전설의 섬 이어도는 아무도 본 사람이 없지만 무지개가 늘 그곳에 있으리라 믿었던 섬이었다. 피안(彼岸)의 무지개인 이어도는 바닷가 사람들에겐 마음 속 고향이었다.     


모진 폭풍과 풍랑을 만나 고기잡이 나갔다 돌아오지 않는 어부, 부모자식(父母子息)과 형제들은 그 낙원(樂園)에 이르러 안식(安息)하기를 소망했다, 구원을 받고자했던 그들에게 이어도는 영원한 그들의 믿음이요 무릉도원(武陵桃源)이었다. 오지않을 아버지, 남편, 형제들을 목놓아 기다리는 바닷가 사람들은 무사안녕(無事安寧)만을 기원한다. 삶이 고통스럽고 험난할수록 피안(彼岸)을 생각한다. 사람이 천사의 말을 하더라도 사랑과 믿음이 없으면 시끄럽게 울리는 징과 요란한 꽹과리에 불과하다. 진실과 믿음이 없으면, 잡을 수 없는 무지개와 닿을 수 없는 섬이라는 사실을 알게된다. 전설의 허구를 알기 시작하면서, 사람들은 자신들의 몸을 의탁할 수 있었던 이어도가 무지개처럼 아름답게 피었다 허망하게 사라진다는 것을 알게된다. 그들 삶의 의지가 한 풀 꺽인다. 사람들은 이어도의 아름다운 능력과 모든 신비로움을 꿈꾸지만, 산을 움직일만한 신념을 가지고 있더라도 믿음이 없으면 그 이어도의 무지개는 허망하게 사라질 운명이라는 것외에 아무 것도 아님을 깨닫게 된다. 우리의 욕망은 바로 비가 온 후에 일순간 반짝했던 이슬 방울에 불과하다는 사실이다. 가식과 거짓은 진실함이 오면 사라지듯 무지개 걷힌 후 사람들은 저 편 넘어 우리들의 이어도를 찾게된다.     


난, 지금 황혼이 되어서 소시적(小時的) 생각을 했던 시절로 되돌아가고 싶다. 내가 꿈꾸고 이룩하려했던 모든 것을 어린 시절로 돌려놓고 마음 대로 뛰고 춤 추고 싶다. 이어도가 내 마음 속에 자리해서 아름다운 무지개를 잡고 싶다. 미풍에 순풍하는 돛단 배 같이 잔잔한 파도 내게 밀려와 외롭던 날의 갑갑한 몸을 밀어주길 바란다. 난 내 인생, 내 가족들의 생활을 고통에서 기쁨으로 한 달음에 역전시켜 보고자 하는 피안(彼岸)적 소원(訴願)을 등에 달고 이어도의 무지개로 이 시간 달려간다.      


오늘 잔잔한 비온 후 내일 쯤 이어도에 쌍무지개를 기대해본다.     

     

2023년 5월 28일

웅포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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