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을에 빠진 바다
심 포
- 김 중 근
자연(自然)과 더불어 자유롭게 살 수 있다면 얼마나 행복할까?......이즈음 살면서 다들 어렵다 어렵다 말들 하지만 주말마다 지방 도로나 고속 도로가 행락객(行樂客)들로 넘쳐흐른다. 가을이 오면 도심생활(都心生活)을 잠시 잊고 신선한 공기를 느끼고 그동안 시달리고 살면서 어려웠던 점들을 잠시 잊기 위한 도열(堵列)이기도 하다.
김제 만경평야 북단 끝자락의 심포에 자리잡은 포구는 우리 가족이 가끔 즐겨 찾는 관망지(觀望地)이다. 이 작은 포구는 내가 사는 곳에서 40분 정도만 차를 타고 황금 들판 한복판을 가로 질러 달리면 닿을 수 있는 곳이다. 신문이나 방송을 통해 심포항이 이미 널리 알려진 탓인지 휴일의 주차장은 각지에서온 차량들로 넘쳐흘러 차를 주차하기가 힘들 정도다. 망해사(望海寺) 산사(山寺) 줄기에서 흘러나온 전망 좋은 곳에 자리 잡은 덕에, 만경평야 황금 들판 건너 가을 푸른 빛 바다 수평선(水平線) 가로지르는 목선(木船)위에 떨어지는 해넘이는 경이로울 만큼 조용하고 신비하다. 가을 푸른 바다가 노을에 젖은 세상 한 아름 품을 때면 세상의 하늘과 바다 온통 가을 빛에 젖는 모습이 아름다운 곳이다.
그러나 대체로 백합이나 죽합등 패류(貝類)나 생선회를 먹거리 삼아 길을 찾은 행락객(行樂客)이 주로 눈에 띄지만 우리처럼 낙조(落潮)를 즐기기 위해 이 곳을 찾는 이는 그리 많지않다. 그저 죽합이나 백합등 조개가 많이 나오는 곳 정도로 인식되어 낮 시간에 잠깐 먹거리만 즐기고 가는 정도이니 해질녁의 가을 낙조(落潮)를 감상하는 이가 그리 많지 않은 것은 당연하다. 흰 갈매기를 머리 위에 달고 나가는 목선(木船)은 손에 닿을 듯 연홍색 일몰(日沒)을 향해 헤쳐 나간다. 수평선 위 붉은 햇빛으로 젖은 바닷물이 만경 평야 황금 들판에 핀 벼 이삭을 향해 넘실거리는 이 곳을 찾으면서 그 옛날 빛나던 청춘의 그 시절, 그 물 빛처럼 마음 푸르렀던 추억의 가을 바다를 한 번 품어볼 생각이 난다. 가는 길 심포항 못미처에 있는 망해사의 경내에 들어서서 몇 차례 심호흡을 한 뒤 먼저 한 철 묵은 가슴의 염원을 담아 시원한 바닷물에 씻어내고, 다람쥐가 오르내리는 꿈틀꿈틀한 소나무들이 모인 소나무 솔숲 사이로 난 오솔길을 따라 올라가면 군산 장항 일대가 한눈에 들어오는 관망대가 한없는 침묵 속에 서있다. 한참 넋을 잃고 익숙해진 관망대의 조망(眺望)은 세속에 더럽혀진 삶의 상처들을 씻어내고, 몸 안에 가득 찬 세속의 생활을 털어낸다. 소나무 향으로 붉게 적셔진 가을 바다의 청청한 기운으로 대신 채우기 위한 몸부림의 두 팔을 벌려 호흡해본다. 그동안 시달리고 살면서 어려웠던 점들을 잊고 지내던 나 자신을 만나서, 붉은 노을에 젖어 볼 수 있는 적기(適期)의 장소이기도하다. 단단한 땅에 나의 연약한 몸 두 다리로 밟고 서있는 것이 때로 버거워 황혼 빛이 물드는 가을 바다 그 따스한 손길에 상처를 달래본다. 번잡한 도시 생활이 아니더라도 무심코 지나는 일상 생활에서 푸른 바닷빛 고요함과 빨간 노을 빛에 채워진 해를 맑은 물로 끓여진 조개탕과 더불어 그동안 쌓였던 피로를 풀어버릴 수 있는 장소는 그리 많지 않다. 고요함과 평화로움을 찾기 위해 조용한 곳을 찾는 것은 일상 생활에 쉬운 일이 아니다. 그러나 내가 살고 있는 이곳은 푸른 바닷물에 고요함을 경험하는 일은 그리 어려운 일이 아니지만, 마음의 여유를 갖고 살지못한 탓에 그 행복(幸福)함을 잊고 살았던 것이다.
노을 속에 붉게 타는 해는 하늘 속 고요함으로 젖는다. 잠시라도 떨어지지 못해서 빨갛게 젖은 자연에 묻혀 사색(思索)에 젖어 볼 수 있는 마음의 여유를 갖도록한다. 바로 저녁 노을에 빠진 바다에서 느끼는 고요함과 평화스러움은 잃어버린 나의 감성(感性)을 일깨우는 숨소리가 되고, 마침내는 삭막한 일상 생활을 재충전시킨다. 결국은 내일을 힘차게 살게하는 묘약(妙藥)이 된다.
2000년 10월 어느 날 심포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