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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런치북 홀라당 19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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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중근 Dec 08. 2024

심   란 (心  亂)

나쁜 일과 좋은 일

심   란 (心  亂)          

                                            

                                               김 중 근   

       

사방이 적막한 방에 혼자서 앉아서 본 하늘은 버려진 빛을 내리는데, 두.서너 점의 구름이 떠있는 하늘이 푸른 기운에 채워져 새파랗게 질려있다. 온통 여름 소식으로 푸르름을 전하고 있지만, 내 방의 주위는 입하(立夏)의 들녘 뿐이다. 갑자기 바람이 거세게 불어댄다. 마음이 울적해진다. 바람은 초여름이 오는 서녘 바다를 건너서 내변산 언덕에 섧게 피어있는 꽃과 맑은 영혼이 잠자고 있는 “은파호수 공원”을 지나 하늘을 삼킨 금강 위로 불어 하늘 빛 보다 빠른 속도로 질풍노도(疾風怒濤)와 같이 웅포에 있는 내 마음을 밀어낸다.  

   

실내 공간이 유리 창으로 들어온 햇살과 섞여진 적막한 공간에서 문득 밀려오는 허전함.....하얀 빈 벽엔 아득한 곳으로부터 쓸쓸함이 밀려오고, 온통 짙푸른 허전함 스며있다. 달밤에 매화꽃 날리듯 흩날리며 사라졌던 기억들이 깊은 침묵(沈黙)속에서 촛불처럼 일렁인다. 나는 일렁이는 기억들을 꺼내 커피 한 잔에 녹여본다. 바람이 부니 내 마음이 어두운 세상을 향해 간다. 바람은 작은 흔들림도 크게 만들고, 마음의 화근(禍根)에 뿌리를 심는다. 길가의 이름 없는 풀들과 작은 벌레들까지 예사롭지 않았던 시간들, 새하얗던 백설이 검게 바래던 회한(悔恨), 유채꽃같이 노오란 회상(回想), 짙푸른 녹음같이 파아란 진실(眞實), 산빛 단풍같이 빠알간 후회(後悔)들이 순간, 공간의 커피 내음 속에 배어난다. 외로움의 빛이 어쩌다 내 공간을 비집고 들어와서, 천 길 낭떠러지로 지독한 고독(孤獨)이 툭툭 떨어진다. 누군가 그립고 애틋할수록 더 외로지고 더 쓸쓸해진다. 텅빈 방 열린 창에 불어오는 노을에 적셔진 바람을 만나서야 문득  그것을 알게된다. “스물 세 해 동안 나를 키운 건 8할이 바람이다”라고 실토했던 서정주님의 독백을 상기(想起)하면서, 어느새 푸른 빛이 발갛게 달아올라 붉게 채색된 노을 끝에 바람이 분다. 내 마음은 노을에 담긴 바람을 나도 모르게 서성이며 허공으로 부터 맞는다. 바람은 나에게 오던 바람도 아닌데 그렇게 쓸쓸함을 실고왔고, 오페라 색 빨간 석양은 나를 찾아온 노을도 아닌데 무엇인지 모를 그리움을 띄우고, 한참을 더 머뭇거리다 어둠에 밀려 떨어진다. 내 눈 앞에 펼쳐진 침묵(沈黙)의 공간은 쓸쓸함을 타고 연기(煙氣)처럼 피어오른다. 바람이 가득하게 서성이며 서있던 방안 적막(寂寞)이 더 큰 외로움을 불러낸다. 내 몸속에서 그 누군가 불어대는 애잔한 테너 섹스폰 소리에, 나는 또 노을진 바람 처럼 외로움에 빠진다. 잔잔한 감흥이 결국 와인을 불러낸다. 하얀 구름, 화사한 햇빛, 이름모를 들꽃, 투명한 이슬 비와의 인연 속에서 맺어진 고독(孤獨)한 허공으로 부터 문득 찾아온 노을에 적셔진 바람이다. 양철 지붕 골을 타고 흘러내리는 가랑잎 하나가 종이 비행기 처럼 사뿐히 나른다. 이른 시간 부터 시간(時間)을 비집고 땅거미 내리는 시간 까지 나를 흔들어 대더니 슬픔을 앞세우고 멀어진다. 바람이 잠시 멈추었는지... 이젠 창밖이 조용하다. 


노을로 채색된 바람을 누가 만들었는지... 숨어있던 외로움을 이토록 지독한 고독(孤獨)으로 몰아부친다. 흑색(黑色) 허전함을 이 잿빛 공간에 누가 청천벽력(靑天霹靂)같이 뿌려대는지 모른다. 그렇지만, 얼핏 나 혼자인듯 쓸쓸해 보이지만, 결코 그렇지 않은 초여름 바람이 방안에 가득한 적막(寂寞)을 밀어낼 것이다. 이젠 가는 길을 가로 막고 있는 잡목 사이에 가득했던 뿌연 바람과 적막을 걷어내자! 내일은 연녹새 숲에서 한 낮 햇살이 가득한 상큼한 바람이 내 마음에 가득하길 바랄 뿐이다.   

  

바람은 나쁜 일과 좋은 일들을 마음대로 만들어내듯이 나도 오늘과 내일을 청명한 바람같이 내 의지(意志)대로 살겠다.          


                                              2023년 5월 8일 웅포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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