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람이 찬 날...
겨울은 오는데...
- 김 중 근
겨울의 길목에서 가을을 보내기 싫다. 강풍이 분다. 창문이 덜컹거린다. 문풍지를 울어대는 소리가 피댓줄 돌아가는 소리같이 광풍(狂風)이다. 아침, 저녁으로 제법 얼굴에 와닿는 쌀쌀함이 본격적인 겨울을 알린다. 첫이슬이 맺힌다는 백로(白露)가 지난지 한 달 이상 지났으니 겨울은 앞으로 더욱 깊어가겠지...잔뜩 구름이 낀 하늘에서 당장이라도 뭔가 내릴 것 같이, 눈은 마음 뿐이다. 함박 눈이라도 내려서 주위의 모든 것을 하얗게 만들면 오염되었던 마음이 한결 백설(白雪)같이 깨끗해질 것 같다.
2층 발코니 어느 구석에서 애간장(㿄肝腸)을 녹여놓던 귀뚜라미 소리가 엊그제 같은데, 마음은 찬 바람만 가득하다. 그것이 꼭 내 귓속에 들어앉아 울어대는 것처럼 가까이 들렸던 시간들이다. 꼭 무엇인가를 슬퍼하고 애처롭게 들렸던 시간들이 귀뚜라미로 부터 시작되어 결국 강풍(强風)으로 이어졌다. 찬 바람이 우리 마음을 스산케한다. 그동안 생각하기조차 싫었던 파란만장(波瀾萬丈)함을 가랑잎 떨쳐버리듯 강풍에 털어 버리고, 오는 길 따라 마음을 새롭게 해본다.
그동안 나와 직접 관계되지 않은 일은 모른척하며 살았다. 내 어려움도 감당하지 못하는데 하물며 남의 어려움 까지 챙기며 돌보는 것은 마음의 사치라고 생각했다. 낙엽은 지고 이파리는 바람 부는 대로 이리저리 굴러다니는 것처럼, 이 시간 거리에서 빈곤과 추위에 맞서 이리저리 헤메는 사람들을 보게 된다. 앞으로 연말 연시와 X-MAS 등으로 자선 냄비가 거리마다 넘쳐날 것이다. 그렇지만 사상유례없는 빈민자(貧民者)들의 슬픔들이 낙엽처럼 날릴 때 얼마나 그들의 아픔을 헤아렸는지 뒤돌아봐야만 한다. 그들의 이웃인 우리가 생각지 않는다면 어느 누구도 생각하지 않기 때문이다. 거리의 노숙자, 어느 날 갑자기 찾아온 파산 선고로 찾아온 불행(不幸)들, 따스한 사랑이 무엇인지 모른채 거리를 헤메고 다니는 청소년들, 부모로 부터 버려진 고아(孤兒), 무연고, 무의탁 노인들 이밖에 헤아릴 수 없는 슬픔이 우리 주변에 가득하기 때문이다.
이즈음 모든 것이 혼란스럽다. 이 겨울이 시작되면서 생각할 수 있는 시간을 차분히 가져보자! 자신을 돌아볼 수 있는 것도 삶을 윤택하게 하지않을까 싶다. 후안무치(厚顔無恥)한 졸부(猝富)들은 주위의 어려움들과는 아랑곳하지 않고 흥청망청 해외여행 등으로 썩은 낙엽처럼 사는 자(者)들도 많다. 우리 주위를 둘러보지 않고 거짓과 위선(僞善)으로 가장된 내가 많다. 그러나 진실된 나의 참 모습을 외면하며 살 수는 없다. 그동안 폭염에 시달렸던 날엔 아무 생각을 할 수 없었지만, 오늘 같이 머리 속을 꼭꼭 파고들어 몸을 가누기 힘들 정도로 바람이 찬 날, 담장 밑 추위에 떨고있는 사람들의 모습을 보니, 내 편안함이 한편의 다른 모습으로 부끄럽게 느껴진다. 내가 남을 생각하는 것이 아니고 그동안 반성하기 부끄러워 미루어 놓았던 나 자신을 돌아보게 된다. 한 철 통열하게 오열(悟悅)하며 눈물을 흘려야했던 베짱이나 귀뚜라미처럼 나를 반성해본다. 홀로된 이 시간 내가 진심으로 참회하고 통곡하면서, 내 모습은 초라해진다. 나의 거짓과 허물이 발견되어서 이해 당사자께 딱히 해야 할 이야기도 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오늘 나는 조용한 선술집 포장 마차에서 참회할 시간을 가지려한다. 환호 속에 갈채를 받지 못하지만 홀로 있는 조용한 이 시간이 좋다. 내가 선택하고 서있는 이곳이 옳고 바른 곳인지? ....설령 휘어 돌아갈지언정 내가 선택한 길이 목적지 까지 바르게 갈 수 있는 길인지?...도 생각해야 할 시간이기 때문이다. 반드시 하지않으면 안될 일을 무시하고 살지는 않았는지?....이젠 그것을 다시 한번 곰곰히 생각해 보자!. 내가 이렇게 평안히 살고 있슴에 감사를 하고 지금은 어려운 사람들에게 무엇인가 도움을 줄 수 있는 일들을 생각해보자. 또한 바람 속에서 안간힘을 다해 버티고 있는 나를 지탱해줄 수 있는 견고한 믿음도 흔들리지않도록 다시 한번 생각한다. 유일하게 믿음을 가질 수 있는 단 한 사람에게도 실망을 주지 않을 일이 무엇일까? 를 곰곰이 생각해본다. 내가 힘들면 모든 걸 바쳐 용기(勇氣)와 격려를 주는 사람들도 생각한다,
매서운 바람 소리와 함께 우린 하루를 분주히 살면서 오늘 하루를 어떻게 보내고 지났을까...또한 지금 어떻게 우리는 이 불면의 밤을 맞고 보내면서 무엇을 생각하며 이 초겨울 밤을 편안하게 쉬려는 것일까......이렇게 문풍지 앵앵대는 날 마음을 비우고 내면의 울림을 들어보자! 갑진년(甲辰年) 이 해도 몇 일 남지 않았다. 행여 마음까지 얼어붙지 않길 바란다.
-2024년 11월 26일
세찬 바람 부는 날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