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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런치북 홀라당 25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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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중근 Dec 08. 2024

큰 비 내린후 가을 단상

큰 비 내린후 가을 단상    

      

- 김 중 근   

       

가을을 막아서던 잿빛 구름이 바람을 불러오더니 이틀여 비를 뿌렸다이 비가 가을의 미를 더욱 극대화시킬 믿음을 줄까?... 지리멸렬했던 폭염을 몰아내고 나뭇잎을 비 속에서 춤추며 고요한 가을 정취에 물들어가게 하겠지만... 가을 비는 때론 격렬하게 때론 천천히 내리는 소리로 마음을 불안하게 때론 부드럽게 감싸 안아주었다자연 스스로가 가을의 슬픔과 아름다움을 함께 나눈 듯 했.     


창문을 울어댄 많은 비가 흙 먼지로 가득한 검은 골방의 창틀과 그 창틈 새로 수북히 쌓인 먼지도 씻어냈다한 여름 내내 골방 속의 쾌쾌한 곰팡이 냄새가 솔솔 풍겨 나오던 곳이다미명(微明)이 오면 제일먼저 작은 창틈 사이로 비집고 아침 햇살이 떨어지는 그 곳이기도 하다매일 아침마다 고운 빛깔로 마알갛게 번지는 동녘 햇살이 다가오는 곳이다그 아름다움을 누구엔가 전해주고 싶은 설레임이 창에 고이지 않는 날이 없었지만기다림마저 씻어냈다언제나 깨끗한 햇살이 내려서 맑은 빛을 내리길 바라지만 빛이 다가와 앉을 그 창 언저리는 정작 흙 먼지만 무성하기만 했었다지금 큰 비가 내린 그 자리는 침묵만 가득하다.     


폭염은 산길과 오솔길로 오던 가을의 계절도 가로 막은채 짙은색 아스팔트 길가에 들어누워 땡강을 부렸다그 심술은 온 국민을 한여름 동안 지독히 괴롭혔다폭우는 용광로에서 펄펄 끓어오르던 수증기처럼 하늘에 올라 비를 뿌렸다인간이 지은 죄를 심판 하듯이 비를 뿌려대니 이 곳 저 곳에서 물 난리다또한 꾀죄죄하게 피어있던 들꽃은 청초(淸楚)한 신데렐라같이 단아하게 씻어 내고 아름다운 자태를 들어냈다검은 먼지로 잔득 뒤집어쓴 풀잎들은 한섶한섶 싱그러운 빛을 내고 한층 짙푸른 색을 낸다언제나 깨끗한 이슬이 내려서 고은 빛을 내길 바랐지만 언젠가 햇살이 다가와 앉을 그 오솔길과 그 길가에는 흙 먼지와 정작 쇠파리만 난무(亂舞)했다     


눈을 돌려보니한 송이 작은 꽃 봉오리가 쉽게 집중(集中)된 시선(視線)을 만든다한 여름 내내 패잔병같이 늘 잎이 폭염에 시달려 축 쳐져 늘어져 있거나 꼬리한 냄새가 솔솔 풍겨나오던 곳이다.  구멍이 뻥뻥뚫린 이파리 사이로분주히 날라 다니는 쇠파리가 있는 그 곳이다렇지만 눈빛만 보아도 그 마음을 알아차릴 투명한 빛깔로 이슬이 내려오는 곳이기도 하다아침마다 송알송알 이슬 맺힌 들꽃이 그 영롱함을 햇살에게 아침마다 전해준 곳이다들꽃은 누구엔가 전해주고 싶은 설레임 배어 나오지 않는 날이 없었지만그 갸날픈 기다림은 늘 이슬로 맺혀 햇살에 사라지곤했다이번엔 큰 비로 흔적이 없다그러나 언제나지금 큰 비가 꽉 차 있는 그 길가에는 꿈과 희망의 자리다큰비가 쓸고 지난 그 자리는 다시 이슬같이 투명한 순수함이 이파리 마다 맺힐 수 있음을 깨닫게 된다.     


우리는 보이는 한편 넘어 다른 저편이 있음을 보지 못한다침묵 속에서 보이는 것 만 눈으로 보지않고 마음으로 보고때로 멀리 떨어져서 뜨거운 마음으로 느낄 때가 있다흙 먼지와 쇠파리만 난무(亂舞)했던 오솔길과 그 길가에 햇살이 다가온 것 같이 아름다움과 추함이 멀리 따로 떨어져 있슴이 아닌 것을 볼 수 있듯이 말이다우리는 마음을 텅텅 비워야 차곡차곡 채울 수 있음을 종종 깨닫지 못한다마음을 텅 비워야 그 안에서 울리는 진동(振動)을 참으로 느낄 수 있기 때문이다.     


한 번쯤 가을비 내리면 창가에 앉아마음의 눈에 작은 빗방울이 하나 둘 흩어지면서 생기는 감성을 생기있는 리듬으로 만들어 보자우리의 삶이 가끔은 예상치 못한 슬픔과 그리움에 젖어 창문에 빗방울로 흘러내릴 수 도 있기 때문이다그렇지만 그 비 속에는 새로운 희망과 성숙의 자리가 될 수 도 있다.     


큰 비가 내린 자리에 자연은 그윽한 안도감으로 오색 찬연한 가을의 향연(饗宴)을 준비한다가을의 아름다움을 한층 더 꾸며주는 화장사처럼세상을 청동색 금빛으로 물들이는 중이다창밖으로 흐르는 가을은 아름다움을 도처마다 선사 할 것이다빛 줄기가 하늘에서 반짝이며 춤추고이파리는 맑은 산소에 촉촉하게 젖는다이 순간모두가 공유하는 자연과의 소통에 참여하며 한 철 묵었던 마음이 한결 가벼워진다.     

 

일상에서 느끼지 못하는 감정들이 피어오른다우리는 작은 행복을 발견한다가을 비는 을의 색감을 더욱 돋보이게 만든다이파리는 색다른 빛깔로 변신을 시도하는 중이다숲의 나무들은 맑고 투명한 빛에 싸여 아름다움을 품고그 모습은 마치 보이는 자체가 유명 화가의 작품이 된다강렬한 황금 빛이 거리를 비추어내며 앞으로 단풍은 희망의 속삭임처럼 사람과 만날 것이다그 순간우리가 사는 세상이 고요하게 잠들고 마음은 신비한 여행에 떠나있을 듯 하다. 비 소리가 창밖으로 스며나와 마음 속에는 평온한 울림이 번지고세상은 잠시 동안 멈춘다우리의 찰나가 흐른다.     


오늘은 큰비가 쓸고 지난 내 마음 한자락 끝에 텅텅 비워야할 마음을 비우고.... 

과연 오늘 밤에는 진동을 느낄 수 있을지?......      


    

 - 2024년 9월 26일 오후

   가을이 오는 길목 웅포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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