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편, 행복한 죽음

by 박철
수의(壽衣)에는 주머니가 없죠.

죽을 때 가지고 갈 수 있는 게 없기 때문이죠.

아무리 돈이 많고 금고에 금덩어리가 가득하고 장롱에 명품 백이 가득해도 단 한 개도 가져갈 수 없죠.


하지만,


죽을 때 가져갈 수 있는 것이 하나 있어요.
“추억”

지난 삶에서 아름다웠고 행복했던 추억은 온전히 가져갈 수 있고 남겨진 사람들에게 조차 나누어 줄 수 있는 선물 같은 것이죠.


내가 남겨놓은 재산은 결국 누군가 다 가져다 쓰고, 내가 쌓았던 명성과 권력이 아무리 많았어도 아무도 알아주지 않아요.

하지만 추억은 시간이 오래 흐른 뒤에도 누군가 기억해 주고 그리워하죠.

살다 보면 누구나 행복하고 좋았던 추억이 있고 슬프고 아팠던 추억도 있어요.

좋은 과거만 있는 사람은 세상에 단 한 명도 없어요.


나쁜 일들은 흐르는 세월의 강에 흘려버리고 좋았던 일은 인생의 바위에 새겨요.



행복했던 날들이 언제였죠?

어릴 적 아빠와 노을 지는 마을 언덕 위에 달리기를 하던 날.

친구들과 놀러 간 바닷가에서 칼이 없어서 수박을 주먹으로 깨서 먹던 날.

아내가 나의 청혼을 서슴없이 받아 주던 날.

남태평양의 작은 섬으로 신혼여행을 가던 날.

첫 아이가 태어나던 날.

아이가 “아빠”라고 말하던 날.

아이가 자전거를 처음 타던 날.

아이가 전교 1등을 했다고 성적표를 받아 오던 날.

아이가 대학 합격증과 4년 전액 장학 증서를 받아 오던 날.

아내와 단 둘이 주문진 바닷가를 산책하던 날.


예전에 한 친구의 아버지 문상을 간 일이 있었어요.


그런데 초상집 분위기가 우울하고 어두울 줄 알았는데 마치 무슨 잔치 집 온 것처럼 밝았어요.

제가 친구에게 물었죠.

“분위기가 왜 이래?”

“아버지 유언이셔. 한 세상 재미나게 잘 살고 가니 절대 울지 말거라.”

90이 넘은 고령에도 늘 밝고 행복하셨던 아버지는 죽기 전날 자식들을 모두 모아 놓고 웃으며 마지막 작별을 하셨다고 해요.

가끔 보면 너무 자기희생적이고 이타적인 사람일수록 얼굴 표정이 어두워요.

웃는 모습을 보기 어렵죠.

세계적인 여배우 메릴린 먼로가 이런 이야기를 했어요.


“유머가 없는 사람과 사는 것은 생감자를 씹어 먹는 것과 같다.”


자식이 행복하게 살려면 부모부터 행복해야 하죠.


불행한 부모가 불행한 자식을 만들고 행복한 부모가 행복한 자식을 만들어요.

얼마 전 아파트단지 내에서 산책을 하는데 한 젊은 엄마가 초등학생 정도 돼 보이는 남매를 데리고 아파트 공원에서 운동을 하더라고요.

그런데 그들의 대화를 우연히 듣다 보니 참 이상했어요.

아이들은 한국말로 하는 데 엄마는 계속 영어로 말하는 거예요.

제가 듣기에 엄마는 무척 영어를 잘하고 발음도 원어민스럽더라고요.

그런데 아이들은 가끔 영어와 한국어를 섞어 쓰더라고요.


아마도 엄마는 아이들에게 어려서부터 영어를 생활화해서 잘하게 하고 싶은 모양이더라고요.

자식을 향한 엄마의 마음이야 하늘만큼 바다만큼이죠.

하지만 엄마의 생각과 행동이 아이들을 행복하게 하는지는 늘 조심스러운 선택이에요.

자녀 교육에는 시간과 정성을 다 쏟아야 하지만 공부는 교육의 일부이지 전부가 아니에요.

필요하면 학원도 보내고 과외도 할 수 있지만 아이의 마음에 너무 커다란 짐을 올리지는 말아야 해요.


저도 학생 가르치는 사람이지만 가끔 숙제를 안 해와도 모른 척해주고, 가끔 지각을 해도 야단하지 않죠.

결석을 자주 하는 중학교 1학년 학생이 있었어요.

그런 녀석은 다음 날 반가워하며 와락 안아주죠.


"어머, 너~무 보고 싶었어. 얼마나 보고 싶었다고. 아팠니?"


그러면 녀석은 그냥 씩~ 웃어요.


그런데 며칠 전 녀석이 필통에서 샤프심 한통을 저에게 주며 스승의 날 선물이래요.

나도 모르게 눈물이 날 뻔했죠.


그 아이는 공부는 싫어도 선생님 때문에 오죠.

그러다 언젠가 꽂히는 날 서울대 가고 의대도 가는 거니까요.


혹시 끝까지 공부를 못한대도 상관없어요.

예전에 한 여학생은 하루에 영어단어 10개를 못 외울 만큼 학습 능력이 부진했지만 결국 유명한 아이돌 가수가 됐어요.

그 집에 애가 셋인데 그중 제일 공부 못한 딸이 지금은 부모님 차를 사줘요.

공부 잘한다고 인생 성공하고 공부 못한다고 인생 못 사는 거 아니죠.

저도 학창 시절 공부를 못했지만 저희 어머니는 매일 같이 저에게 말했어요.

“어쩜 우리 아들은 이렇게 잘생겼니.”


“넌 어른이 되면 꼭 기사가 운전해 주는 차 탈 거야.”

보시면 알겠지만 제가 객관적으로 잘생긴 얼굴은 아니잖아요.

그런데 엄마 눈에는 세상 누구보다 귀한 보물 아니었겠어요.

그나마 제가 이렇게 사는 건 늘 저를 안아주고 지지해 준 부모님 덕이죠.


“행복은 선택”

행복한 일이 있어서 행복한 게 아니라 행복하기로 마음먹으면 행복해지죠.

오늘부터 행복한 추억을 만들어요.

행복한 추억을 어떻게 만드냐고요?

친구를 만드세요.


저에게는 10년 이상 나이가 많은 친구도 있고 10년 이상 어린 친구들도 있죠.

선생님 중에도 친구가 있고 동생 중에도 친구가 있죠.

동성이어도 이성이어도 상관없어요.


친구가 별건가요.


"마음이 통하고 만나면 좋은 사람이 친구"

밥도 사주고 커피도 좀 사주세요.

상대방이 언제 사주나 기다리지 말고 먼저 사주세요.

친구를 사귀는데 돈을 아끼지 말아요.


아주 먼 훗날, 한평생 잘 살았다고 말할 만큼 행복한 추억을 만들어 보세요.



마지막 죽기 전날 딸에게 “넌 엄마처럼 살지 말아.”라는 말보다


“너도 엄마처럼 행복하게 살다가 천국에서 만나자.”

라고 고백할 수 있다면 얼마나 멋진 삶일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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