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벽 세 시야. 누군가는 이 도시가 잠들었다고 말하겠지. 하지만 알잖아, 거짓말이란 거. 도시가 완전히 잠드는 순간 같은 건 없어. 특히 서울 같은 곳은. 여기선 불이 꺼지는 법이 없지. 사람들의 머릿속은 항상 반쯤 켜져 있고, 가로등은 늘 지독한 불면증에 걸려있어.
쭉 뻗은 도로에는 택시 몇 대와 편의점 간판 불빛 뿐이야. 고요하다고 말할 수도 있겠지만, 나는 좀 다르게 봐. 이건 고요하다기보다는 멍 때리는 시간 같아. 하루 종일 너무 많은 이야기 속에 파묻혀 있다가 이제야 겨우 한숨 돌리는 느낌?
이 시간, 깨어 있는 사람들은 더 흥미롭지. 각자 나름의 사연으로 잠들지 못하는 사람들이야. 회사원은 눈 밑에 다크 써클을 단 채 보고서와 씨름하지. 작가는 떠오르지 않는 영감을 쥐어 짜내며 키보드를 두드려. 울고 있는 이의 손에는 이별 메시지가 떠 있고, 편의점에서 컵라면을 먹으며 멍하니 밤거리를 내다 보는 사람도 있지. 어떻게 보면 다들 고독의 선수들이야. 이 도시에서 홀로 견디는 법을 터득한 거지.
나는 새벽 세 시를 좋아해. 왜냐고? 그때만큼은 핑계를 대지 않아도 되거든. 낮에 우린 “바빠서 그래”라거나 “할 일이 너무 많아” 같은 변명을 입에 달고 살잖아. 하지만 새벽 세 시에는 그런 말이 통하지 않아. 그냥, 깨어 있는 거야. 이유 같은 건 필요 없어.
이 시간엔 도시가 진짜 얼굴을 드러내는 것 같아. 낮 동안의 북적이는 가면을 벗고 조용히 혼잣말을 하는 것처럼 모든 게 더 진하게 느껴져. 공기도 그렇고, 도로의 냄새도 그렇고. 심지어 간간히 꺼내 보는 오래된 기억들도 지금은 더 생생해져. 어떤 날은 잊었다고 생각했던 옛사랑의 얼굴이 떠오르고, 때로는 낮시간의 쓸데없는 대화 한 조각이 날 붙잡고 놓아주지 않아.
서울. 이 도시가 참 신기한 게, 늘 바쁘고 정신없는데, 새벽이 되면 감정이 가득해지는 것 같아. 낮에는 고층 건물과 자동차들, 그리고 무수한 인파 속에서 길을 잃은 것 같다가도, 새벽 세 시에는 갑자기 이 도시가 날 이해하는 것처럼 느껴져. “그래, 너도 많이 힘들지?”라고 말하는 것처럼.
새벽 세 시의 특별한 느낌은 오직 그 시간만이 줄 수 있는 진실이야. 낮 동안에 우리가 부여잡고 있던 모든 허상들이 사라지는 순간. 그때는 거울 속의 내 얼굴조차 거짓말하지 못해. 피곤하고, 조금은 지쳐 보이지. 하지만 어쩐지 솔직해서 안심이 돼.
그러니까, 깨어 있어도 괜찮아. 도시의 밤은 잠들지 못하는 사람들에게 작은 공간을 내주니까. 그걸로 충분하지 않아? 한 잔의 커피, 흐릿한 가로등 불빛, 그리고 네 머릿속에 떠다니는 생각들. 누군가에게 억지로 설명하지 않아도 돼. 그냥 고독한 순간들을 느껴. 언젠가 그 고독이 너를 가장 진솔한 곳으로 데려다 줄 테니까.
그러니 오늘 밤, 잠들지 못한다면 창밖을 한 번 내다 봐.
도시의 불빛이 널 기다리고 있을 거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