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성 에세이
"여보세요?" 누군가의 목소리가 수화기 너머로 들려오면, 세상은 잠시 둘로 나뉘어져. 이쪽과 저쪽. 다른 곳은 없어. 지금 이 순간만큼은 그 목소리의 주인공과 나, 단 둘만의 세상이 만들어지는 거야.
요즘엔 잘 없지. 이렇게 전화로 마음을 나누는 일이. "전화 좀 하자"는 말 대신 "메시지 보낼게"라는 답이 돌아와.
언제부터 우리는 목소리를 들려주는 대신 글자만 보내게 된 걸까. 편리해진 건지, 불편해진 건지 모르겠어. 문자는 항상 완벽한 답변을 요구하잖아. 맞춤법도 틀리면 안 되고, 이모티콘 하나도 신중하게 골라야 해. 잘 못 보낸 메시지 하나 때문에 분위기가 엉망이 되거든.
그래서 가끔 예전이 그리워. 수화기를 들고 한참을 떠들던 그때. 서로의 숨소리, 웃음소리, 심지어는 침묵까지도 의미가 있던 시절.
그땐 서두르지 않았어. 상대의 말끝을 굳이 예측하려 하지도 않았지. 그저 기다렸어, 다음 말을, 다음 숨소리를, 다음 이야기를. 전화기를 들고 이불 속으로 들어가 밤새 속삭이던 비밀들, 그리고 아침이 되어서야 겨우 끊었던 수화기. 전화 요금은 내 연애의 가격표였지. 이런, 너무 옛날 얘긴가?
어젯밤에는 오랜만에 친구와 통화를 했어. 카톡의 말풍선으로는 도저히 전할 수 없는 이야기들이 있더라고. 목소리에 담긴 떨림, 웃음 속에 숨은 눈물, 침묵 사이로 새어 나오는 한숨까지. 그런 것들은 절대 텍스트로 표현할 수 없는 거야.
누군가는 말해. 이제는 다른 시대라고. 메시지와 DM으로도 충분하다고. 맞아, 세상은 변했지. 하지만 전화만큼 인간적인 게 있을까? 졸린 목소리로 "뭐해?"라고 물어보고, 대답 없는 상대를 향해 "여보세요?" 하고 두세 번 더 부르고, 끊기 아쉬워서 몇 번이고 "언제 잘거야?" 하고 물어보는 그런 소소한 온기 말이야.
그래서 나는 전화가 좋아. 특별한 이유 같은 건 없어도 돼. "그냥, 네 목소리가 듣고 싶어서." 이거면 충분하지. 뜬금없지만, 이런 게 우리에겐 필요한 것 같아. 완벽하지 않아도 돼. 어설퍼도 괜찮아. 그냥 끊기지 않는 전화처럼, 서로를 향한 마음만은 계속 이어졌으면 좋겠어.
벨이 울린다. 이제 전화 받으러 가볼게. 또 한참을 떠들겠지. 내일도, 모레도 할 이야기가 끝없이 이어질 거야. 그래서 좋아. 우리가 아직 서로의 목소리가 필요한 사람들이라는 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