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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모의 기대가 우리에게 남긴 상처들

심리학 이야기

by 이상혁 심리상담가

부모의 과도한 기대는 자녀에게 무거운 짐이 되곤 합니다. 특히 한국 사회에서는 더욱 그렇죠. "항상 1등급은 해야지.", "명문대 들어가야 한다.", "넌 꼭 고소득 전문직이 되어야 해." 자녀들은 어린 시절부터 이런 말들을 일상적으로 들으며 자랍니다. 부모는 자녀가 더 나은 삶을 살기를 바라며 이런 기대를 표현하지만, 그 무게는 어린 자녀에게는 너무나 무겁습니다.


특히 초등학교 때부터 시작되는 성적에 대한 압박은 아이의 일상을 완전히 바꿔놓습니다. 학교가 끝나면 학원을 전전하고, 밤늦게까지 공부하는 것이 당연시됩니다. 시험 기간이면 "이번에는 꼭 좋은 성적을 받아야 해"라는 말을 수없이 듣습니다. 만일 시험 성적이 조금이라도 떨어지면 부모의 실망스러운 표정과 한숨을 마주해야 합니다. 이런 압박감은 밥을 먹을 때도, 잠을 잘 때도 따라다닙니다. "다른 애들은 다 공부하고 있을 텐데..."라는 생각에 마음 편히 쉬지도 못합니다.


이런 기대와 압박은 자녀의 자존감에도 큰 상처를 남깁니다. "난 왜 이것밖에 못하지?", "부모님 기대에 못 미치는 걸 보면 난 정말 못난 사람인가봐"와 같은 자책이 일상이 되어버립니다. 밤마다 이불 속에서 흘리는 눈물, 가슴 한켠에 자리 잡은 무거운 돌덩이 같은 압박감, 그리고 끊임없는 자기 비하는 청소년기를 거치며 더욱 깊어집니다.


시험 성적이 발표되는 날이면, 아침부터 속이 울렁거리고 손발이 차가워집니다. 성적표를 받아들 때의 그 떨림, 혹시라도 부모의 기대에 미치지 못했을 때 마주하게 될 실망스러운 표정에 대한 두려움은 매 학기마다 반복되는 악몽이 되어버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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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심리적 부담은 신체 증상으로도 나타납니다. 시험 기간만 되면 찾아오는 두통, 식욕 부진, 불면증은 이제 친숙한 동반자가 되었습니다. 밤에는 잠을 이루지 못해 뒤척이다가, 아침이 되면 피곤함에 절어 일어나기 힘들어합니다. 하지만 그마저도 푹 쉴 수 없습니다. "너는 이렇게 잠만 자고 있을 거니?"라는 부모의 말에 억지로 몸을 일으켜 책상 앞에 앉습니다.


매 순간 부모의 기대를 의식하며 살아가야 하는 현실은, 마치 누군가가 계속해서 어깨를 누르고 있는 것 같은 무게감으로 다가옵니다. 자유롭게 숨 쉬고 싶어도, 그 무게를 쉽게 덜어낼 수 없습니다. 부모의 기대와 관심은 자신을 옥죄는 밧줄처럼 느껴집니다.


특히 입시를 앞둔 고등학생 시기에는 이러한 압박감이 절정에 달합니다. "다른 집 애들은 다 좋은 대학 가는데 너만 뒤처지면 어쩌려고 그러니?" 같은 말들은 이들의 어깨를 더욱 무겁게 만듭니다. 대학 입시가 인생의 전부인 것처럼 느껴지고, 그 속에서 자신의 진정한 가치나 꿈은 점점 희미해져 갑니다.


성인이 된 후에도 이러한 경험은 마음 속에 깊은 상처로 남습니다. 직장에서도 끊임없이 완벽을 추구하게 되고, 작은 실수에도 과도하게 자책하며, 타인의 평가에 지나치게 민감해집니다. 자신의 진정한 행복이나 원하는 것보다는, 여전히 다른 사람의 기대에 부응하기 위해 살아가는 모습을 보입니다.


오랫동안 자신의 진정한 욕구와 감정을 억눌러온 자녀들은 종종 예상치 못한 방식으로 그 억압된 감정을 표출하기도 합니다. 더 이상 부모의 통제와 기대를 견디지 못하고 어느 순간 반발심이 폭발하듯 터져 나오는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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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음에는 작은 반항으로 시작합니다. 부모의 전화를 받지 않거나, 일부러 늦게 귀가하고, 대화를 피하기 시작합니다. "이제 내 인생은 내가 결정한다"라는 생각이 강해지면서, 부모의 조언이나 걱정도 모두 간섭으로 느껴지게 됩니다. 부모와의 대화는 점점 더 날카로워지고, 사소한 일로도 감정이 폭발하며, 때로는 큰 다툼으로 이어지기도 합니다.


이전까지 부모에게 순종적이었던 자녀가 갑자기 강하게 자기주장을 내세우기 시작합니다. "더 이상 부모님이 원하는 대로 살고 싶지 않아요"라며 정면으로 맞서게 됩니다. 때로는 집을 나가버리거나, 부모님과의 관계를 완전히 단절합니다.


이런 반발은 단순한 반항이 아닌, 오랫동안 쌓여온 억압감과 자기결정권에 대한 강한 갈망의 표현입니다. 자신의 삶을 스스로 통제하고 싶은 마음, 자신만의 선택을 하고 싶은 욕구가 한계점에 다다랐을 때 터져 나오는 겁니다.


때로는 현재의 진로를 갑자기 포기하거나 전혀 다른 길을 선택하는 등 부모가 가장 원치 않는 길을 선택을 함으로써 자신의 독립성을 증명하려 합니다. 부모가 설계한 인생 경로를 전적으로 거부하면서 목소리를 내고 자신만의 길을 찾으려 시도합니다.


하지만 이러한 반발은 또 다른 고통을 낳기도 합니다. 부모님와 관계가 완전히 깨어지면서 오는 죄책감, 외로움, 불안감이 밀려옵니다. 독립을 외치면서도 한편으로는 부모의 지지와 인정을 여전히 갈망하는 자신을 발견하게 됩니다. 이런 양가감정은 더 큰 혼란과 고립감으로 이어질 수 있습니다.


부모도 자녀의 갑작스러운 변화에 큰 충격을 받습니다. 그동안 자녀를 위해 최선을 다했다고 생각했는데, 오히려 그것이 자녀를 억압했다는 사실을 받아들이기가 쉽지 않습니다. 자녀의 반발을 이해하지 못한 채 더 강한 통제를 시도하거나, 반대로 완전한 단절을 선택하기도 합니다. 이런 상황은 부모와 자녀 모두에게 깊은 상처가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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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정한 치유는 이런 극단적인 대립이나 단절이 아닌, 서로를 이해하고 존중하는 과정에서 시작됩니다. 자녀는 그동안 억눌러왔던 자신의 감정과 욕구를 차근차근 살펴보면서, 동시에 자신을 그렇게 몰아부쳤던 부모의 의도가 무엇이었는지 생각해 볼 시간이 필요합니다. 부모 역시 자녀를 독립된 인격체로 인정하고, 자신들의 기대와 통제가 자녀에게 어떤 영향을 미쳤는지 돌아보아야 합니다.


시간이 걸리겠지만, 결국 중요한 것은 균형을 찾는 것입니다. 부모의 사랑과 기대를 완전히 거부하는 것도, 반대로 자신의 욕구를 완전히 억누르는 것도 해답이 될 수 없습니다. 자신의 진정한 모습을 인정하면서도 부모님과의 관계를 새롭게 정립해나가는 것, 그것이 진정한 치유의 길입니다.


이런 과정을 거치면서 많은 사람들이 깨닫게 되는 것이 있습니다. 부모의 과도한 기대가 결국은 사랑에서 비롯되었다는 것, 그리고 그 사랑이 때로는 서툴게 표현되었다는 것입니다. 이러한 이해는 부모를 용서하고, 동시에 자신을 용서하는 데 도움이 됩니다. 완벽한 부모도, 완벽한 자녀도 없다는 것을 받아들이면서, 서로를 있는 그대로 인정하고 사랑하는 법을 배우게 됩니다.


부모의 기대에서 벗어나 진정한 자아를 찾아가는 여정은 쉽지는 않지만, 이는 더 건강하고 행복한 삶으로 나아가는 데 필요한 과정입니다. 그리고 이 과정을 통해 우리는 진정한 독립을 얻게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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