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혼돈의 중심, 카이로에 도착하다

이집트 국립박물관과 칸 엘 칼릴리 시장

by 소심천
21시간 만의 카이로 도착

에어차이나에서 운항하는 비행기에 탑승하여 상하이 푸동공항 경유 후 약 21시간 만에 카이로에 입국하였다.

이집트는 직항 항공편이 없기도 하지만, 난 여행 비용을 줄이고자 늘 경유를 택하곤 한다.

장시간 비행은 몸이 굳는 것 같아 경유지에서 기지개도 좀 켜고,

여행지가 아닌 곳의 공항과 면세점, 식당을 구경하며 그 나라도 간접체험을 할 수 있다는 장점도 있다.

갈 때는 경유지인 중국에서 8시간이나 대기를 해야 했기에 매우 힘들었다.

와중에 친구는 라운지 이용 가능한 카드의 실적을 채워서 나를 두고 라운지에 다녀왔다.

혼자 라운지 입장하는 친구 배웅하기


총 세 번의 기내식은 전부 먹을만했다.


카이로 시내에 있는 숙소로 이동

그렇게 카이로에 도착했을 땐, 현지시간 오전 10시쯤이었고,

인드라이브 앱으로 택시를 불러서 곧장 숙소로 갔다.

이집트는 우버와 인드라이브, 혹은 현지 택시들을 이용하는데,

우버는 비싸다고 했던 것 같고, 가격 흥정이 가능하다는 점에서 인드라이브를 애용했다.

현지 택시는 내릴 때 바가지를 씌울 수도 있기 때문에 거의 이용하지 않았다.

(인드라이브는 잡을 때부터 가격을 정해놓기 때문에 그럴 일은 거의 없지만,

간혹 도로 이용료를 요구하거나 생각보다 길이 너무 험하면 합의된 가격에서 더 부르기도 했다.)

이집트 도착해서 탄 첫 택시


보통은 트렁크에 짐을 실어주는데 앞자리에 이렇게 구겨 넣어 주셨다.

추가로 카이로 교통에 대해 말하자면, 굉장히 무질서하고 혼돈 그 자체라고 생각하면 될 것 같다.

차선이 없는 곳도 많고 있어도 유명무실하다.

차선을 가운데 두고 달리는가 하면 깜빡이 없이 끼어들기는 기본이고,

정말 말도 안 되는 틈으로도 비집고 들어와 10초에 한 번씩은 도로에 클락션 소리가 난다.

멀쩡한 차도 찾기 힘든데, 오래된 차들이 많고

차 내외부가 더러운 것은 기본이며 어디 하나 금가고 부서졌음에도

청테이프로 간신히 역할을 부지하며 다니는 것 같았다.

차 내부에 에어컨이 없는 건지 있지만 틀지 않는 건지는 모르겠지만 에어컨을 느껴본 경우가 거의 없었고,

그렇기 때문에 더운 날씨에 창문을 열고 달리는데 각종 매연과 먼지, 담배냄새에 정신이 혼미하였다.

카이로에 도착한 1일 차부터 기관지가 썩어 문드러지는 기분이 들었지만,

며칠 지내다 보니 어느새 적응을 하였고, 그럴 수밖에 없었다.


그렇게 매연과 담배냄새를 맡으며 이국적인 카이로 풍경을 보며 달리다

타흐리르 광장에 위치한 우리의 첫 숙소에 도착하였다.


이집트에는 승강기 문이 없는 구식 엘리베이터가 많았는데, 이 숙소도 그랬다.

문을 닫고 버튼을 누르면 바로 승강기가 작동하고

벽을 타고 올라가는 게 다 보여서 혹시라도 틈에 뭐라도 끼일까 노심초사했다.

바깥 승강기 문도 탁 소리가 날 때까지 제대로 닫아 줘야 다른 층에서 이용 가능해서

나중에 승강기를 제 때 이용하지 못하고, 10층이라 짐 때문에 계단으로도 갈 수 없어 사람을 부르는 사태도 발생했다.


체크인 시간에 비해 일찍 오게 되었지만 우리가 묵게 될 방을 지금 청소 중이라 30분이면 체크인이 가능하다고 하여 로비에서 조금 기다리기로 하였다.

우리가 카이로에서 첫날 묵은 숙소는 '마디나 호스텔'인데,

바로 다음날 시와라고 하는 오아시스 마을에 갈 예정이라 전날 시와로 가는 버스 편을 예매해야 했고,

매표소에서 가까운, 그리고 시와에 다녀오는 동안 짐을 맡기는 것이 가능한 숙소로 정한 것이다.


21시간 비행 후 도착하면 피곤할 것 같아 첫날 일정을 딱히 세워두지 않고 컨디션 보고 정하려고 했는데, 둘 다 장시간 비행 동안 정신 못 차리고 잔 덕분인지 컨디션이 나쁘지 않아 얼른 씻고 관광하러 나왔다.


시와로 가는 버스티켓을 끊기 위해 타흐리르 광장에 위치한 매표소에 들렀다가 쿠샤리를 먹으러 갔다.

매표소에 가기 위해서는 매우 혼잡하고 신호등도 없는 타흐리르 광장의 8차선 도로를 건너야 했는데, 거의 목숨을 걸고 건너고 나서야 원래 이곳이 그렇게 악명 높은 도로였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그런 곳을 무사히 건넜다니, 뿌듯한 마음이 들었다.


이집트에서의 첫 식사, 쿠샤리

쿠샤리는 안남미에 파스타, 마카로니, 렌틸콩, 병아리콩, 마늘, 양파를 튀긴 다음 매콤하고 쌉싸름한 토마토소스를 끼얹은 이집트 전통 음식인데, 갈릭 소스와 매운 소스는 개인이 더 첨가할 수 있어서 매운 소스를 왕창 곁들여 먹었고 그 덕분에 옆 테이블에서 '핫 코리안~!'이라는 찬사를 들을 수 있었다.


이집트 국립박물관 방문_투탕카멘의 황금마스크

밥을 먹고는 타흐리르 광장에 위치한 이집트 국립박물관에 갔다.

카이로에는 방문할 만한 박물관이 크게 3곳이 있는데, 국립박물관, 문명박물관,

그리고 내가 방문한 시기에는 아직 정식 오픈 전이었던 이집트 대박물관이 있다.

위치나 관람 소요시간, 전시 유물의 성향이 전부 달라서 언제 어디를 방문해야 할지 고민이 많았는데,

우선 거리가 가깝고, 내부에 에어컨이 없으며 유물이 전시보다는 방치에 가깝다는 평이 많아

가기에는 제일 꺼려졌던 국립박물관을 숙제처럼 먼저 방문하게 되었다.


평소 이집트를 포함한 세계사에 그렇게 관심이 많은 편도, 박학다식한 편도 아니었지만

4,000년의 역사를 지닌 이집트에 방문하면서 적어도 어느 정도의 기본 지식은 갖추어야 할 필요성을 느꼈고,

또한 유물이나 유적을 관람할 때에는 많이 알면 알수록 경이롭고 재밌는 것이 사실이기 때문에

애굽 민수와 EBS, 벌거벗은 세계사 등의 영상을 활용해 수박 겉핥기식으로 공부를 해갔다.

그렇게 쉽고 빠르게, 2주 남짓의 시간 동안 수천 년의 역사를 어느 정도 숙지할 수 있을 거라는 착각과

한국어 가이드가 애초에 드물었고, 이집트 가이드 섭외 시 비싼 돈에 비해 양질의 설명을 들을 수 있을까 하는 의구심이 합해져

박물관이나 유적지 투어에 가이드를 섭외하지 않았다.

당연히 뿌리내리지 못한 얕은 지식들은 그다지 투어에서 빛을 발하지 못했고,

챗지피티와 블로그 방문 후기를 활용하여 관람 동선과 꼭 봐야 할 유물들만 빠르게 관람하고 나왔다.


칸 엘 칼릴리 시장_이집트 전통 시장

다음 방문지는 칸 엘 칼릴리 시장이었다.

칸 엘 칼릴리 시장은 약 600년 동안 이어져 온 중동 최대의 전통 시장으로 14세기 맘루크 왕조 시절 상인 '자르크스 알 칼릴리'가 건설한 대규모 카라반세라에서 시작되었다고 한다.

향수와 오일부터 은세공, 골동품, 직물 거리 등이 있는데,

'엘 피샤위'라고 하는 1797년에 문을 연 카이로에서 가장 오래된 카페에 먼저 들렀다.


이집트 어디를 가나 달고 맛있는 망고 주스 두 잔을 시켰는데,

딱 봐도 관광객이라 그런지 사장님이 야외 좌석에 앉힌 덕분에 5분에 한 번씩 호객 행위를 당하였다.

5~6살 정도 돼 보이는 어린아이들이나 아기를 안은 여자들도 돌아다니며 파피루스나 마그넷 등 각종 기념품을 팔아서 마음이 조금 약해질 때도 있었는데,

누군가의 정당하고 합법적인 노동 행위를 가여워하는 것도 예의가 아닌 것 같아 마음을 다잡았다.

애굽 민수 유튜브를 보다가 곽민수 소장이 일부 한국 사람들이 이집트 여행에 다녀와서는 수천 년 전에는 그렇게 잘 살던 이집트 사람들이 지금은 왜 이렇게 못 살고 있냐는 이야기를 들을 때마다,

한국을 기준으로 생각하기 때문에 그렇지 이집트 사람들이 못 사는 건 아니라고 하였다.

GDP를 놓고 생각해 본다면, 한국이 1인 기준 세계 12위로 매우 높은 편이고, (지금은 34위 정도)

이집트도 42위로 세계평균의 33% 정도 되는 상위권에 속한다.

이 이야기를 듣고 가서 그런지 한국과는 상이한 노동 주체와 행위에 멋대로 안타까워하는 무례한 일도,

그로 인해 마음 아플 일도 줄일 수 있었다.


칸 엘 칼릴리 시장은 특히 알라딘 영화에 나올 법한 이국적인 풍경의 조명가게가 유명하다.

해가 지고 조명에 불이 들어올 때 가야 더욱 아름답기 때문에 저녁에 방문하는 사람들이 많다.

이 시장은 모든 제품이 흥정을 통해 구매가 이루어지는데,

흥정에 자신 없는 사람들을 위한 정찰제 가게가 있고 한국인 후기에서도 꽤 유명하다.

'조르디'라고 하는 곳인데 블로그를 보고 위치를 찾아가도 되지만

이미 현지인들도 잘 아는지 조르디를 찾냐며 위치를 가르쳐 주기도 한다.

(하지만 카이로에서 현지인이 베푸는 친절은 늘 경계해야 한다.)

조르디에서 상형문자가 그려진 티셔츠와 태국의 코끼리 바지와 비슷하게 생긴 바지,

팔찌 등을 사서 나왔는데, 전부 몇 천 원, 몇 백 원이면 살 수 있는 가격이었다.

팔찌가 가격에 비해 예쁘고 퀄리티가 좋았는데 더 사 올 걸 하는 후회가 나중에야 들었다.


시장에서 또 구매한 것이 있는데 바로 캐리어다.

이집트에 오기 전부터 캐리어 한쪽 바퀴가 불안 불안했는데,

이집트에서 심지어 첫날 시장에 가서 캐리어를 살 생각은 없었지만

그 크고 무거운 것을 들고 다니다 여행 중간에 망가져 버리면 더 골치 아플 것이기 때문에

우연히 지나친 캐리어 가게에서 30인치 캐리어를 하나 장만했다.

한화로 6만 원 정도의 가격이었는데, 후에 이 캐리어도 바퀴 한쪽이 망가져서 힘들게 끌고 다녔다.

가게에 들어서자마자 사장님이 캐리어를 바닥에 내던지고 캐리어에 물건을 집어던지며

심지어는 나보고 캐리어에 올라오라고 억지로 잡아 끄셨다.

캐리어가 실리콘 재질이라 절대 부서지지 않는다는 사실을 원하지 않은 방식으로 보여주신 것이다.

내가 볼 땐 이때 조금만 덜 집어던졌어도 여행 기간 동안 바퀴가 건실했을 것 같기도 하다.

이집트에 가져간 고장난 캐리어(좌)와 시장에서 새로 산 캐리어(우)


그렇게 정신없던 첫날 카이로 여행을 마치고 샤와르마로 저녁을 먹은 뒤 숙소로 복귀했다.

이때 먹은 샤와르마가 굉장히 저렴하고, (한화 약 2,000원) 맛있었는데

후에 피라미드가 있는 기자 쪽에서 비슷한 샤와르마 가게를 찾지 못해서 계속 생각이 났다.

숙소 근처에서 먹은 샤와르마


다음날엔 카이로 2일 차 여행을 한 후, 시와로 가는 12시간의 나이트 버스를 타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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