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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이로의 가장 새것과 가장 낡은 것

이집트 대박물관과 쓰레기마을의 동굴교회

by 소심천

이집트에서의 두 번째 날이 밝았다.

이 날은 시와로 가는 12시간의 나이트 버스를 탑승하는 대장정의 날이었기 때문에

느지막이 일어나서 아직 정식 오픈 전이었던 대박물관에 방문하였다.


이집트에서의 첫 조식

숙소를 나서기 전에 호스텔에서 제공하는 조식을 먹었다.

이집트는 조식을 기본적으로 제공하는 숙소가 많았는데,

오믈렛과 팔라펠, 걸레빵 그리고 과일주스를 주었고, 어딜 가든 이 조식 구성은 거의 비슷하다.

친구는 저녁을 늦게 먹고 자서 속이 안 좋다고 나 혼자 가서 먹게 되었는데

오믈렛과 팔라펠이 고소하게 맛있었고, 딸기주스가 특히 정말 달고 맛있어서 바로 친구에게 내려오라고 연락하여

결국 친구도 함께 조식을 먹고 대박물관으로 향하였다.

호스텔에서 제공한 조식 사진


이집트는 박물관과 유적지에 웬만하면 입장료가 있는데,

현지인에 비해 외국인에게는 10배 넘는 가격을 지불하도록 한다.

외국인 입장에서는 아쉽긴 하지만 관광국가로서의 이집트 정부의 현명한 선택이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국제학생증이 있을 경우 50% 할인된 가격으로 티켓 구매가 가능한데,

학생은 아니기 때문에 국제청소년증을 2만 원 내고 한국에서 발급받아 왔다.

학생증이 아닌 국제청소년증은 할인받지 못하는 경우도 있다고 들었는데,

웬만하면 할인을 해주고 나중에 이야기하겠지만 처음엔 안된다고 하다가 팁을 주면 입장시켜 주기도 한다.

이집트 대박물관은 그 어떤 입장료보다도 가장 비쌌지만 청소년증으로 할인을 받지 못하였다.


이집트 대박물관은 여행 계획을 수립할 당시에는 방문할 계획이 없었다.

아직 정식 오픈도 전이었고, 가장 중요한 투탕카멘의 황금마스크를 포함한 특별관이 아직 국립박물관에 전시되어 있다고 들었기 때문이다. (카이로에서의 일정이 그리 넉넉하지 않은 이유도 있었다.)

대박물관은 국립박물관이 너무 오래되었고, 유물 포화 상태에 이르렀기 때문에 유물을 더 넓고 좋은 환경에서 전시하고자 짓기 시작하였다고 하고,

축구장 3개 정도 되는 박물관의 엄청난 규모 때문인지

이집트 정부의 일처리가 느린 탓인지 오픈도 몇 년이나 미뤄졌다고 하였다.


하지만 일부 개관한 곳이 있어 관람할 유물이 그래도 꽤 많을 것이라 생각하였고,

애초에 박물관 내부 디자인 자체가 사진으로 보았을 때도 웅장하고 아름다웠기에 가기로 하였다.


이집트 대박물관 방문

박물관에 입장하기 전 외부에 람세스 2세 시기에 제작된 오벨리스크가 있다고 들었는데,

오픈 준비 때문인지 접근을 차단해 놓아 가보지는 못하였다.

오벨리스크 바닥면에 람세스 2세의 서명이 있어 지상에서 좀 띄워놓았다고 하여 직접 보고 싶었는데 아쉬웠다.

박물관에 입장하면 거대한 람세스 2세의 석상이 반겨주는데,

람세스 2세 석상과 사진을 찍을 수 있는 간이 사진 촬영기가 비치되어 있어 누구나 사용 가능했다.

람세스 2세 석상


에스컬레이터 혹은 계단을 타고 올라가면서도 유물을 볼 수 있도록 석상과 기둥 혹은 문들을 올라가는 길에 전시하였다.


그렇게 전시관 앞까지 올라가면 기자의 피라미드 3개를 한 번에 볼 수 있는 뷰가 나온다.

여기서 많은 사람들이 사진을 찍거나 여유롭게 앉아 피라미드를 구경하고 있다.

이집트 대박물관 피라미드 뷰


전시관에 들어가면 세로로는 시대별(고왕국, 중왕국, 신왕국), 가로로는 테마별(사회, 정치, 종교)로 전시를 깔끔하게 해 놓았다.

그저 발길이 닿는 대로 흐르듯이 관람을 하면서 내 눈엔 그저 비슷해 보이는 석상들과 기둥, 관들을 관람하였다.


악어미라

악어미라도 보았다.


기자에 있는 피라미드 3개는 쿠푸, 카프레, 멘카우레 왕의 피라미드인데,

피라미드 건설을 최초로 추진한 왕, 그러니까 그 3 왕조의 아버지, 할아버지, 증조할아버지인 스네프루 왕의 석상이 대박물관에 전시되어 있고,

스네프루의 석상이 창문을 통해 3개의 피라미드를 지켜보는 위치에 놓여있다고 하여 다른 건 잘 몰라도 그 석상은 찾아가서 관람하였다.

대박물관 설계자의 기막힌 의도이며, 애굽민수도 특히 이 배치를 매우 흡족해하였다.

피라미드를 바라보는 스네프루 왕의 석상


관람을 마치고는 'Zooba'라고 하는 이집트에서 유명한 식당이 대박물관에도 지점이 있어 점심을 먹기 위해 방문하였다.

팔라펠과 쿠샤리, 그리고 다양한 종류의 치즈가 들어간 피자 비슷한 것과 딸기주스를 시켰다.

걸레빵은 시키지 않아도 어느 식당을 가든 기본적으로 나온다.

평소에 치즈를 좋아하기 때문에 피자가 제일 맛있었고, 팔라펠과 쿠샤리는 어딜 가든 비슷한 것 같다.

Zooba에서 먹은 음식


대박물관이 엄청 크고 관람할 게 많아서 블로그에서 후기를 보았을 때는 빠르게 봐도 4시간은 그냥 지나간다는 이야기를 듣고 오전부터 방문했는데, 좁은 견문과 부족한 배경지식으로 2시간 만에 관람이 끝나버렸다.

오후 계획을 따로 세우지 않아서 카이로에서 시간이 되면 가보고 싶었던 동굴교회에 가기로 하였다.


카이로 동굴교회

이집트 동굴교회의 정식 명칭은 '성 시몬 수도자 교회'로 1970~80년대에 이집트의 콥트 기독교인 공동체가 만든 교회라고 한다.

동굴교회를 가려면 쓰레기 마을이라는 곳을 지나쳐야 한다고 들었는데, 그 이유는 설립 목적과 관련이 있다.

당시 이들은 사회적으로 소외되고 가난한 사람들이 많았는데, 특히 '자발린'이라 불리던 쓰레기 수거 공동체가 중심이었고, 카이로 시민들이 버린 쓰레기를 모아 재활용하며 생계를 이어가던 이들이 무카탐 산기슭에 정착하여 설립한 것이 이 동굴교회라고 한다.

이들은 신앙생활을 이어가고 싶었지만, 가난과 차별 속에서 제대로 예배드릴 공간이 없었고, 그래서 산을 통째로 깎아 동굴 속에 교회를 건설하였다고 한다.


쓰레기 마을도 카이로 관광지를 찾아보면서 궁금했던 장소 중 하나였는데, 택시를 타고 지나가보니 생각보다 환경이 너무 열악하여 직접 방문하지 않은 것에 큰 안도를 느꼈다.

길거리에 쓰레기가 빈틈없이 즐비해 있었고, 택시 기사가 길을 물어보려고 잠깐 창문을 내렸을 때 차로 들어온 쓰레기 냄새가 정말 지독했으며, 거리를 거니는 사람들은 누더기 옷에 맨 발, 그리고 모든 곳에 파리가 들끓었다.

이집트에서는 창문이 없거나 늘 내린 상태로 가는 택시가 많았는데, 동굴교회에 갈 때 그런 택시를 타지 않을 수 있음에 감사한 마음이 들었다.

차창 밖으로 본 쓰레기마을의 풍경은 정말 TV에서 후원 광고를 하는 동안 보여주는 아프리카에서도 정말 가난한 지역의 풍경을 실제로 보는 듯한 기분이어서 마음이 좋지 않았다.

지금은 쓰레기 마을 주민들이 쓰레기를 팔아 나름 풍족한 삶을 살고 있다는 이야기도 듣기는 했는데, 그 사실을 납득하기에는 그날의 시각적 충격이 훨씬 더 커서 받아들이기 힘들었다.

좁은 길에 크고 작은 차들도 많아 2km 남짓의 거리를 거의 30분가량 정체와 걸음마를 반복하며 달려서 동굴교회에 도착하였다. 기사님에게는 이런 험한 곳을 운전하게 하여 미안한 마음에 팁을 드렸다.

택시 안에서 바라본 쓰레기마을


힘들게 도착하긴 했지만 그만큼 훌륭하고 멋진 교회였다.

동굴을 통째로 깎아서 만든 교회라니.

한 곳에서는 짚라인을 타는 사람들도 있었다.


이집트에서는 사진 찍어달라는 사람들, 특히 아이들이 많았다.

난 혹시 AI에 사용될까 걱정되어 사진을 찍어달라는 부탁을 거절하고 의리 없게 친구만 혼자 찍도록 두었다.

이집트 아이와 사진 찍어주는 친구


쓰레기 마을을 지나면서 이미 다 쓴 체력과 불쾌한 냄새에 지친 우리는 동굴교회 구경을 빠르게 마치고, 인드라이브 앱으로 택시를 불렀다.

힘겹게 들어온 만큼 쉽게 잡히지 않을 거라는 예상과 달리 2km 남짓의 거리의 숙소까지

약 200파운드(6,000원)의 가격에 바로 잡혀서 친구와 가슴을 쓸어내렸으나

기사님이 이곳이 어딘지 잘 모르고 잡은 관계로 한참이나 기다려서 탔을 뿐 아니라 가격도 더 많이 지불하였다.

쓰레기 마을을 지나려면 고생인 걸 알아서 더 지불한 가격이 정당하다고는 생각했으나,

이집트 인드라이브 기사들은 목적지에 대한 이해가 없이 무턱대고 잡는 경향이 있는 것 같다.

여행 끝무렵 카이로에서도 기자의 피라미드가 아닌 최초의 계단식 피라미드를 가려고 했다가 한참 헤매서 결국 입장도 못하고 다시 숙소로 돌아왔던 일도 있었다.

동굴교회 전경


아무튼 무사히 숙소에 와서 근처로 저녁을 먹으러 갔다.


소고기 타진과 렌틸콩 수프, 그린샐러드 뭐 이렇게 시켰던 것 같다.

소고기 타진은 장조림 맛이었고, 렌틸콩 수프가 고소하고 녹진한 게 정말 맛있었다.

과자 부스러기 같이 보이는 사진 속의 스낵을 렌틸콩 수프에 찍어먹는 건데,

밀가루 덩이를 오래된 기름에 튀긴 맛이라 그렇게 많이 먹지는 않고 수프만 떠먹었다.

여행 초기에는 컨디션 때문인지, 이집트 음식이 기름진 탓인지 활동량이 많아도 소화가 잘 안 돼서

밥을 먹으러 가면 샐러드 위주로 먹고 얼마 먹지를 못하였다.

이 때는 오히려 친구가 잘 먹었고, 여행 후반에는 내가 컨디션을 되찾고 친구가 감기에 걸려서 반대의 상황이 발생했다.


밥을 먹다가 바로 옆 테이블에 유럽인으로 추정되는 여자와 히잡을 쓴 중동 여자들이 식사를 하고 있었는데,

어쩌다 대화를 하게 되어서 K팝이나 K드라마 등 소소한 이야기를 나누었다.

친구가 옆테이블에서 먹는 호떡같이 생긴 음식이 궁금해서 무엇이냐고 물어봤는데,

미트파이 비슷한 음식이라고 했고 맛보라고 덜어주기까지 하셨다.

당연히 그런 목적으로 물어본 게 아니라 사양했지만, 괜찮다며 주셔서 친구가 궁금해하던 음식까지 맛볼 수 있었다.

미트파이


보기엔 호떡 같았는데 메밀전병 같은 파이에 안에 다진 고기 같은 것이 소스와 버무려져 들어 있었다.

난 고기향이 입맛에 맞지 않아 한 입만 먹고 손을 대지 않았고,

친구는 굉장히 맛있어하면서 잘 먹었다.

후에 시와에 가서 낙타고기를 먹었는데 이때 먹었던 고기향이 나에게는 낙타고기향과 비슷하게 느껴졌다.


그렇게 식사를 마치고 시와에 가는 나이트버스에 타기 전 묵었던 호스텔에 짐을 맡기고, 화장실에서 간단하게 세안과 양치를 하였다.

각자 1개씩 가져온 30인치 캐리어를 숙소에 맡기고 작은 여행가방에 3일가량의 시와 여행에서 필요한 짐을 간단히 꾸려 갈 생각이었는데, 수영복도 있고 밤에 무척 추운 사막에서의 잠자리에 대비한 겉옷으로 인해 둘 다 생각보다 짐이 많았다.

그래서 곧 운명하기 직전인 내 캐리어를 험하게 끌고 다니다 버릴 생각으로,

우리 둘 짐을 같이 넣고 가져가기로 했다.


시와로 가는 버스를 타기 위해서는 카이로 1편에서도 말한 것처럼 악명 높은 타흐리르 8차선 도로를 신호등 없이 생명의 위협을 느끼며 건너야 했는데,

30인치 캐리어를 끌고 건너는 타흐리르 광장은 정말 태어나서 해본 적 없는 어떤 중요한 결심이 필요한 일이었다.

과장이 아니라 다 건너고 나서 든 생각은 앞으로 인생에서 어떤 무모한 일을 만나도 도전해 볼 수 있겠다는 자신감마저 생기는 경험이었다.


그렇게 가장 기대했던 '시와'라는 오아시스 마을로 가는 12시간의 버스 여정이 시작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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