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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면집

4월의 봄

by 글임

뭐가 그렇게 화가 났는지, 먹던 그릇이며 숟가락이며 다 바닥에 밀어버렸다. 분에 못 이겨 책상을 밀고 의자를 넘어뜨린다. 과격한 몸짓을 보여야만 관심을 가져주었던, 고래고래 소리를 질러야만 들어주었던, 지난날들의 잔여물이리라. 어느 날은 잘 차려놓은 밥도 입에 대지 않는다. 가장 좋아하는 고기 반찬도 발걸음을 돌리지 못한다. “밥 안 먹어!”, “안 나갈 거야!” 라는 말을 곱씹자니, 곧 여기 와서 나를 좀 봐 달라는, 내 속상함을 좀 이해해 달라는 듯하다.


여즉 살아오며 반목하는 어른들과 함께한 흔적이다. 엄마와 아빠의 다툼에 아이는 외로웠겠다. 갈라지듯 뒤섞이는 두 목소리가 낯설어서, 일그러진 표정이 두려워 방으로 도망친 아이는 사무치게 외로웠을 것이다. 아이는 어두운 방에 혼자 있는 걸 무서워했다. 불을 끄면 귀신이 나올 거라고, 거미가 날 잡아갈 거라고 말했다. 아마도, 귀신처럼 소리 없이 다가오는 두려움이, 내 의지와는 상관없이 나를 잡아가는 외로움이, 불 꺼진 방 안을 더 어둡게, 더 어둡게 만들었으리라.


세월을 견디기만 해도 어른이 된다면, 아이를 낳기만 하면 부모가 되는 거라면, 얼마나 좋을까. 분노와 수치스러움을 무릎 쓰고 의연히 서로의 표정을 읽어볼 수는 없었을까, 무책임과 두려움을 마주하고 손을 맞잡을 수는 없었을까. 여전히 눈을 부라리고 싸우기에 바쁜 우리가, 깃발을 흔들며 나만 맞노라고 소리치는 우리가, 유리창을 부수고 물건을 던지는 우리가, 미안하다고 말한다. 어른들의 발구릉에 피어난 먼지가 키작은 아이들에게 가장 먼저 닿을 텐데, 4월의 하늘은 먼지만 가득하다.


나는 한때 승객이 가득한 기차에서 고래고래 소리를 질렀던 그 아이와 약속했다. 다음에도 이렇게 주체할 수 없이 힘들 때, 내가 손 잡아줘도 괜찮냐고 물어볼 테니, 내 손 잡고 조금 있어 보겠냐고 약속했다. 그리고 어느 날, 다시는 볼 수 없는 어른들이 늘어나는 게 두려워서, 이별 앞에 하염없이 멈춰 버린 그 아이는 한 손에는 내 손을 잡고, 한 손은 모든 걸 놓아준 채 흔들었다. 다음에 또 만나자고,


홀로 선 광장에도 봄은 오는가

나는 언젠가 홀로 선 그 아이의 곁에

떳떳한 어른이 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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