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와 함께 했던 시간 (~1993)
나는 어렸지만 짐작할 줄 알았다. 엄마 아빠의 사랑은 계속될 수는 없다는 것을 말이다.
매일매일 날카롭게 섞이는 둘의 음성으로, 그리고 노려보는 눈동자와 공허한 표정들을 통해 나에게 주입식 교육을 실천해 주셨으니까.
내가 통제할 수 없는 거대한 소용돌이는 어린아이에게 무력감 또는 회피감을 주었고, 나는 아마도 기다렸던 듯하다. 이 싸움의 끝을. 부모님도 여러 번 언질을 주며 나를 준비시켰다.
엄마는 "더 이상은 엄마 같이 못 살겠어.", 아버지는 "지훈아. 엄마 아빠가 떨어져 있을 수도 있어."
"왜 같이 못살아? 왜 떨어져 있어?"라고 두려움에 물어봤지만, 대답을 듣기는 힘들었다.
형언하기 어려운 수많은 사건들과 각자의 상처와 아픔들을 어린 나에게 풀이할 수는 없었을 게다.
그날이 왔다. 엄마가 사라지는 날.
어린이집에서 돌아오니, 피아노학원에 가득 차 있던 피아노들이 마법처럼 사라져 있었다. 엄마도 홀로 나가 살기에는 돈이 필요했을 것이다. 허전하게 먼지가 굴러다니는 공간을 바라보며, 이미 예견했던 상황이었음에도 구멍 난 듯한 내 감정이 어떤 상태인지.. 어린 내가 알고 있는 범주의 것이 아니었다. 벽에 기울어져 걸려 있는 바흐 초상화는 더 이상 망태할아버지로 보이지 않았다.
그날부터 두 사람은 몇 개월 간의 별거가 시작되었다. 단단히 마음을 먹고 그 많은 피아노들을 정리한 엄마였기에 사실 별거라고 부르기에는 애매했다. 이별이었다. 나는 친할머니네 집에서 고모와 함께 살았고, 그 기간 나에게 아무 기억도 남아 있지 않다.
어느 햇살이 맑은 날, 아버지가 어린이집에 나를 데리러 오셨다. 검은색 르망에 나를 태우고 엄마를 보러 가자 하셨다. 이제 엄마랑 같이 사는 건가? 시간이 지났으니 화해하는 건가? 잠깐 기대에 휩싸이는 마음이었지만, 아버지는 나의 섣부른 기대를 진정시켜 준다.
"엄마랑 화해해 보려고 하는데 이번이 정말 마지막일 수도 있어" 아버지의 음성은 참 굵고 낮아 신뢰가 간다.
창문 바깥을 바라보면서 나지막이 말한다. “응. 엄마도 같이 살면 좋겠다.” 의미 없는 애걸복걸 애원은 하지 않는다. 기대도 담지 않는다. 어차피 결과는 정해져 있는 것 같으니.
어느 넓은 주차 타워에 도착하였다. 반대쪽 차에서 엄마가 내리고 아버지 차로 다가온다. 나는 내려서 엄마와 꼭 껴안았고 엄마는 눈물을 훔치는 듯하다. 곧이어 둘이 이야기를 나누어야 하니 다시 차에 타라고 하여 차에 올라탔다. 그리고 둘을 쳐다볼 수 없었다. 지난 부부싸움에서 둘의 싸움을 바라보지 않는 것이 학습되어 있던 나는 고개를 돌려 쳐다볼 용기가 나지 않는다.
어느 정도 거리가 있어 웅얼웅얼 목소리만 들리고 어떤 대화를 나누시는지 들리지 않았다. 다만, 그날은 이상하게도 음성은 높지 않았고 차분했다. 호통치지 않는 둘에 모습에 안도할 뿐이다. 그렇게 길지 않은 둘의 대화가 끝나고 아버지는 차에 타서 나에게 예상했던 결론을 들려준다. 이제 엄마를 못 볼 것이라고.
“엄마 같이 살면 안 돼?”라고 울먹였지만 엄마 표정을 보고 더 이상의 투정은 부리지 않는다. 슬프게 눈물 지었지만, 굳게 마음먹은 표정이었으니.
몇 분 지나지 않아 함께 타고 다니던 검은색 르망이 아닌, 누가 타고 있을지 모르는 낯선 차로 걸어가는 엄마를 보며, 잘 지내라고 손을 흔들었다.
부모의 이별을 담담하게 수용하며, 엄마의 안녕도 챙길 줄 아는 성숙하고 어린 김지훈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