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랏으로 도망친 어느 퇴사자

1부. 굿모닝, 달랏

by 이수하

‘Blessed are the poor in spirit(심령이 가난한 자는 복이 있나니), Blessed are those who mourn(애통하는 자는 복이 있나니)’



달랏으로 도망쳤다. 도저히 견딜 수가 없었다. 애써 외면했던 것은 내가 외면한다고 사라지는 것이 아니었다. 깊은 우울감은 거대한 파도가 되어 내가 도망칠 수도 없이 내 삶을 덮쳐버렸다. 그렇게 나는 다시 표류하게 됐다. 이런. 겨우 육지에 도착했다고 생각했는데.

곰팡이를 제때 청소하지 않으면 온방을 뒤덮는 것처럼 내 방은 그야말로 곰팡이로 뒤덮였다. 아. 망했다. 젠장, 사실은 알고 있었어. 내가 괜찮지 않다는 것을. ​

동굴로 들어가면 뭐 어때. 도망치면 뭐 어때. 너 영영 동굴에만 있을 거 아니잖아. 교회 언니가 해준 말에 힘입어 생명력 없는 무기력한 몸뚱이는 손가락만 틱틱 눌러서 달랏행 비행기를 끊었다. 스카이스캐너는 나에게 익숙한 어플이니까 큰 힘이 들지 않았다. 그리고 달랏은, 나에게 행복한 기억이 있는 곳이니까. 불행한 나는 행복한 기억이 있는 곳으로 도망가자고 결심했다. 도망가자. 그래. 도망가자. 여기 있어봤자 그냥 숨 막혀서 죽어버릴 거야. 그리고 이 선택은 훗날 내가 그 해에 가장 잘한 선택으로 꼽혔다. 기행인 듯 도망일기인 이 이야기는 한 사람의 성장통을 담고 있다. ​


그렇게 나는 다시 배낭여행을 떠났다. 나의 행복한 기억이 묻은 달랏으로 6년만에 갔다.



성장통. 아픈 게 너무 싫지만 늘 그 자리에 머물러 있을 순 없다. 성장기 때 성장통은 왜 있을까. 안 아프면 좋으련만. 그러나 성장통은 내가 현재 성장하고 있다는 증표가 된다. 근데 성숙통이란 말은 왜 없을까. 성숙기에는 사람이 자연스럽게 무르익는 걸까. 아니면 어릴 때 아프게 느꼈던 것들이 그 지점에 가면 익숙해지는 걸까. 나는 언제쯤 무르익으려나.



다음 화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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