히피들의 성지, 여행자들의 무덤

3부. 두낫띵, 빠이

by 이수하

여행자들의 무덤이라고도 불릴 정도로 여행자들로만 이루어진 마을인 빠이. 이곳은 장기 여행 중인 유럽인들로 가득하다. 빠이는 내가 지금까지 여행한 여행지들과는 확연히 다르다. 진짜 이상하고 어색한 여행지라고 느낄 정도다. 모든 여행 인프라가 있지만 딱히 크게 할 게 없다.

합법적 게으름의 마을, 그래서 히피들의 성지인걸까. 한 번 오면 떠나고 싶지 않아서 여행자들의 무덤인걸까.

여행자들로만 이루어진 시골마을 이곳 빠이에서 뭔가 특별히 할 일을 기대하는 것은 어리석다. 이미 이곳 자체로 특별한 것이기 때문이다. 이미 이곳에 왔다는 것만으로도 일상에서 절대 누릴 없는 무엇을 누리는 것이고, 나는 빠이에서 일상에서 절대 누릴 수 없는 것을 지금 누리고 있는 중이다. ​

숙소에서 만난 고양이들


사람이 부지런해야 할 때가 있고 여유로울 때가 있다. 둘의 분명한 공통점은, 둘 다 시간이 지나면 어쩌면 다시 오지 않을 시간이라는 것이다. 충무로에서 호텔리어로 있을 때는 매일 해야 할 일이 정말 많았다. 주어진 매일이 정말 바빴다. 영영 그렇게 바쁠 줄만 알았다. 그러나 갑자기 눈을 떠보니 나는 태국 시골마을에 있다. 여기에서는 놀랍도록 진짜 할 일이 없다. 처음엔 이토록 할 일이 없다는 것이 어색하게 느껴졌다. 그러다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그땐 그때 나름이고 지금은 지금 나름이구나. 그땐 내가 열심히 부지런히 사는 때라면 지금은 여유롭고 그 여유로움 속에 즐겁게 잠기는 때구나.

그땐 그때 나름이고 지금은 지금 나름이다. 지금 이 순간 어떠한가. 어떠한들 다시 오지 않을 순간이기에 감사로 벅찬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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