깊은 협곡을 지나며

중국 (7)

by 이수하

호도협 트레킹 코스를 완주했다. 완주. ‘완주’라는 한 글자에 나는 눈물이 철철 났다. 멈추지 않았다. 단단히 고장나버린 수도꼭지처럼 나는 눈물을 토했다. 이리도 눈물이 철철 나는 것은, 결과물인 ‘완주’가 있기까지의 과정 때문이리라. 무사히 나는 깊은 협곡을 지나갔다. 내 인생에도 분명 깊은 협곡을 지나가는 시기가 있었다. 지금 생각해보면 어릴 적 나는 우울감이 짙은 아이였다. 짙은 우울감과 함께 유기불안도 있었던 것 같다. 그리고 20대 때는 내가 정서적으로 병들어가고 있는지 나조차도 몰랐다.

고등학생 때부터 부모님 사업이 어려워지면서 가세가 기울었다. 나의 터전에 짙은 어둠이 드리웠다. 재정적인 어려움은 나아질 기미없이 점점 고조되고 부모님과의 갈등은 깊어졌다. 그렇게 내 마음의 골도 점점 깊어졌다. 설상가상 대학교에선 제대로 적응하지도 못하고 학과에 흥미를 갖지 못한 채 인생 최고로 성적이 바닥을 쳤다. 학사경고까지 받았다. 많이 헤매고 방황하고 우울한 시기였다. 그러나 우울에 대해 잘 몰랐다. 기쁨이는 알았지만, 슬픔이는 몰랐다.

점점 깊어지는 우울감을 방치하니 나는 점점 깊게 병들어갔다. 나 스스로를 너무 아프게 했다. 나를 키워준 할머니가 갑자기 돌아가신 서른, 단단히 병든 마음은 도저히 못 참겠는지 크게 발악하며 내게 경고했다. 병은 육체와 삶까지 끔찍하게 덮쳤다. 아무것도 할 수 없었고 아무도 만날 수가 없었다. 제대로 움직일 수 없었고 아무것도 먹을 수도 없었다. 살은 급격하게 빠지고 몸이 점점 앙상해지는 것이 보였다. 나에겐 엄마인 사랑하는 할머니를 잃은 충격으로 마침내 나는 나의 아픈 상태를 처음 ‘인지’하게 되었다.

- 아. 나 아프구나.

처음 간 정신과. 처음 해본 검사. 의사는 말했다. 수치가 매우 높다고. 입원을 해야 하는 수준이라고. 서른에 나는 처음으로 우울증 진단을 받았고 처음으로 우울증 치료라는 것을 받았지만 삶 전체를 돌아보면 나는 장기간 우울감 혹은 우울증을 앓아왔다. 나의 아프고 병든 마음은 내가 ‘최초로 인지’를 한 시점부터 회복의 길을 걸을 수 있었다. 쉬었다. 그냥 쉬었다. 어차피 아무것도 못하고 이대로는 못 산다. 엄청 쉬다가 조금 힘을 얻고 해보고 싶은 일을 했다. 다행히 일을 하면서 마음이 맞는 좋은 사람들을 만났다. 호텔 뒤 남산을 등산하고, 호텔 앞 글쓰기 공간에서 글을 쓰면서 마음은 정말 많이 호전됐다.

그러나 잘 다니던 직장에서 갑자기 실직하게 되면서 다시 우울이 폭주했다. 그렇게 나는 다시 쉬었다. 이번엔 머무르는 여행을 하면서 제대로 푹 쉬었다. 처음 진단을 받았을 때, 의사는 쉬는 것을 권고했다. 그러나 그땐 미치게 아프면서도 쉰다는 것이 무척 불안했다. 여기에서 내가 쉬면 다른 사람들에 비해 뒤쳐질 것만 같았다. 하지만 이번엔 불안한 마음없이 쉬었다. 당연한 얘기지만, 아프면 쉬어야 한다. 여행지에서 느긋하게 책을 읽고 글을 쓰며 그렇게 느릿느릿 쉬었다. 자연의 아름다움과 장엄한 대자연의 경이로움을 마주하며 좋은 에너지를 채웠다. 홀로 푹 여유롭게 책을 읽으며 좋은 생각들을 채웠다. 글을 쓰면서 생각을 또렷이 정리했다. 나의 마음이 보이고, 내가 가진 생각이 보이고, 깊게 뿌리박힌 신념이 보였다. 나라는 한 존재가 보였다.

병을 방치하면 죽는 것처럼 우울증을 방치하면 자살사고가 난다. 나는 나의 장례식을 간절히 바랐고 지나가는 차가 나를 제발 쳐서 죽여주기를 늘 간절히 바랐다. 자살기도를 했었다. 근데 호도협을 트레킹하면서 기가 막힌 절경을 보는데 살아있길 잘했단 생각이 들었다. 세상에 이런게 있었구나. 이렇게 멋지고 아름다운게 있었어. 살아있길 정말 잘했다. 그렇게 깊은 협곡의 세월은 기쁨이 밖에 모르는 나를 다채로운 한 인간으로 빚어갔다.

산 시체처럼 침대에서 일어나지 못한 때부터 호도협의 장엄한 절경을 걸을 때까지, 정말 수고했다. 정말 고생했다고, 단 한 번만이라도 나를 이렇게 꽉 끌어안아주자. 이렇게 꼭 인정해주자. 그리고 나의 속도로 걸어가면서 푹 적실 때까지 빛으로 나를 물들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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