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립밤

by 옆집 사람

립밤을 처음으로 끝까지 써봤다.

정말 처음인가, 곰곰이 생각해 보고 또 해보고 또 해보고 또 해봤지만, 음. 맞는 것 같다.

아님 뭐.. 마는 거고.


아무튼 다 쓴 립밤으로 한마디 하고 싶으니까 아니어도 그런 걸로 하려고.



다 써버린 립밤은 쓰레기통에 버렸다.

기념으로 가지고 있기에도 애매하고 한 물건이니까.


그런데, 어째 영 종일 그 버려버린 립밤 생각이 머릿속에서 떠나질 않는다.


아까워서 같은 쫌생이 감상은 아니고, 그냥 뭐랄까.


그렇게 끝까지 늘 함께했던 친구인데, 이렇게 혼자 쓸쓸하게 쓰레기통에 버려져 폐기될 것을 생각하니 왜인지 모르게 막 좀 기분이 그렇다.


더 이상 나올 것도 없고, 쓸모도 없는 물건인데, 왜 그런 생각이 날까.



나는 뭐든 쉬이 놓지를 못하는 사람이다.

다 써버린 립밤도, 더 이상 나오지 않는 케첩도, 뚜껑까지 열어 탈탈 털어 쓴 로션도, 그리고 지난 관계들도.


바닥까지 알차게 싹싹 긁어 썼지만, 그래도 꼭 버려야만 했는지, 그저 방 한구석에 영원히 둘 수는 없었는지 싶다.

물론 무엇이건 사용기간을 지나면 녹이며 곰팡이며 하는 것들이 슬고, 칙칙해져 해로워지는 것은 알지만, 끈적끈적 아쉬운 것은 어쩔 수 없는걸.


케첩은, 로션은, 네가 주었던 신발박스는 여전히 못 버렸지만, 그래도 오늘의 나는 립밤을 과감하게 쓰레기통에 던졌다.

타라라락 소리가 날 만큼!


만세!

나도 이제 립밤정도는 쓰레기통에 과감하게 버릴 수 있는 멋진 어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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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 목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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