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도 어린 시절을 떠올리면 가장 먼저 생각나는 장면은 인생에서 처음으로 맞이했던 크리스마스이다.
조금 더 자세하게 이야기하자면, 크리스마스가 무엇인지는 이미 알고 있었지만, 그렇게 행사로써 마주한 것은 처음이었던 그런 날이었다.
그날은 아침부터, 얼마 넓지도 않은, 구조가 애매해 볕도 잘 안 들던 색동어린이집이 분주했다.
그 어린 나이에도 무언가 좋은 일이 일어날 것 같다는 것은 곧장 알 수 있었다.
두근거리는 기분이 들었다.
그렇지만 그 기분, 얼마 가진 않더라.
나는 그때도, 지금도 매사 썩 즐거워하지 못하는 사람이니까.
그래서 그렇게 조금 풀 죽은 채로 큰 멍이 든 눈을 통해 바쁘게 움직이는 사람들을 보고 있자니, 왜인지 저것들은 나를 위한 것이 아닐 것 같은 기분이 갑자기 훅 들어왔다.
별로 받고 자라지를 못해서 그런지, 당연히 나를 위한 자리는 없을 것 같은 그런 기분.
그러고 나니 곧장 심술이 나, 자리를 박차고 일어나서는 '저 산타 할아버지는 봉고차 아저씨야!'라고 외쳤다.
선생님들의 당황이 역력한 낯빛을 보며 내심 흐뭇한 기분이 들었다.
너네는 모르는 엄청난 사실을 간파한 내가 대단스러웠다.
사실은, 글쎄.
그 사실을 몰랐던 애가 있었을까.
아이들을 싫어하던 봉고차 아저씨 특유의 그 뚱한 표정을 한 산타가 또 어딨다고.
그 애들은 나보다 영리하고 어른스러워서 단지 못 본 척하며 그 순간을 즐기고 있었던 것이었겠지.
그러고는 중간 기억은 없고, 선물 증정으로 내 기억은 건너뛴다.
그 중간 무언가 들은 아마 기억도 안 날 정도로 지루했었나 보다.
다들 하하 호호 즐거워해도 나랑은 관련이 없다 생각했었을 테니.
선물 증정은 봉고차 아저씨가 호명하면 일어나 선물을 받아가는 방식이었다.
몇 차례 기억나지 않는 이름들이 지나가고 이내 내 이름이 불렸다. 기뻤다. 엄청. 드물게도.
방금 전까지만 하더라도 다 취소되었으면 좋겠다 싶었던 그 기분은 어디 가고.
선물도 엄청 커 보였다. 거기 있던 그 누구보다도.
그래서 신이 나서 봉고차 아저씨에게 허겁지겁 가니, 아저씨가 살짝 노려보며 '뭐?'라고 하더라.
들어보니, 내 이름을 부른 것이 아니래.
방금 전까지만 해도 파티를 망치려던 애가 선물을 준다고 하니 자기 차례도 아닌 때에 신나서는 허겁지겁 뛰어 나가던 모습이 참 추했을 것이다.
다들 그리 기억하겠지.
혹은 나만 그리 생각하고 나만 기억할지도.
아무튼, 그 후 정작 진짜 내 차례에 받은 것은 정체불명 캐릭터가 그려진 싸구려 문구 세트였다.
착각에 대한 부끄러움보다, 봉고차 아저씨의 짜증스러운 '뭐?'보다, 내 손에 쥐어진 문구 세트가 더 부끄럽고 서글펐다.
내가 착각했던 그 선물은 뭐 멋진 장난감이었겠지.
그렇게 크고 멋져서는 그렇게 설레게 했으니까.
비록 내 것이 아닌 것이었지만, 잠시나마 즐거웠고 설레었으니까 좋았다고 해야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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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간이 흘러 어른이 된 나는 그때의 나와 별반 다르지 않다.
좋은 일이 있어도 그렇게 기쁘지 않고, 진정으로 기쁜 일이 생긴다면 그것은 대부분 내 착각이고 그런, 아무튼 내 손으로 잘 차려진 파티를 망치곤 하는 그런 어른이 되었다.
그럼에도 꼴에 어른이랍시고, 생존을 위해 배운 잡기술이 생겼다.
괜찮은 사람인 척 하기. 유식한 말로는 의태.
나는 그 괜찮은 사람인 척을 참 잘한다.
속은 도로 포장재처럼 시꺼멓고 끈적끈적하면서, 주둥이만은 청산유수인지라 그 타르를 깜빡 속여 솜사탕마냥 나눠주곤 한다.
너한테도, 당신한테도 심지어는 나한테도.
그래서 나는 세상만사 운이 없고, 내 가치를 알아봐 주는 사람이 적다고 착각을 하곤 한다.
그렇게 달달한 솜사탕인 내가 이럴 리가 없지 하며.
사실은 입에 넣고 씹고 있는 건 타르 덩어리인데.
그런 나도 진짜 솜사탕을 만들려고 시도는 정말 많이 해봤다. 진짜로. 거짓 없이.
그런데 내가 가진 건 설탕 한 톨 없고, 오직 55갤런짜리 공업용 타르뿐인걸.
날 때부터 55갤런짜리 드럼통 속에 포장되어 나왔는데 뭘 어떡하겠니.
나도 내가, 네가 씹는 것이 달달해서 기분 좋은 것이면 좋겠다.
부디 해로운 것이 아니면 좋겠다.
나도 햇살 아래 손잡고 걸으며 너와 산책을 하고,
옆에 나란히 누워 시시껄렁한 사진을 나눠보며 같이 웃고,
휴대폰 하나, 나란히 앉아 같이 보며 같이 살 집을 고르는,
그런 순수하고 즐거운 순간만을 함께 하고 싶었다.
질척 질척한, 속에 든 것을 억지로 떠먹이고 싶지는 않았다. 진심으로.
그런데 숨긴다고 숨겨지나. 결국 그 맛이 아닐 텐데.
나는 늘 한창 좋을 때, 산타 할아버지의 정체를 밝히고야 마는 것이다.
이번도, 저번도, 저저번도, 아무튼 계속 세어 올라가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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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영화 만드는 일을 한다.
자세히는 이야기 못하겠지만, 아무튼 그쪽 종류의 일.
그런데 나, 영화 잘 안 본다. 내가 작업한 것도.
나는 그런 사람인 것이다. 그냥 순수히 즐기질 못하는.
그래서 나는 취미가 없다.
이것저것 시도야 많이 해봤다.
복싱도 해봤고, 그림도 그려봤고, 식물도 길러봤고, 게임도 해봤고, 책도 읽어봤고, 터미널에서 제일 빠른 표 끊어서 아무 데로나 떠나는 여행도 해봤고. 등등.
뭐 아무튼 이것저것 참 많이도 했었다.
심지어는 한 때 공부도 취미였다.
혹시라도 나에게 꼭 맞는 무언가가 있지 않을까.
세상 어디에는 있지 않을까 하며 부단히도 움직였었다.
그런데 없더라.
나한테 꼭 맞는 취미. 복잡한 생각 없이 순수히 즐길 수 있는 것.
그래서 내 취미는 당신이다. 그냥 당신이 좋고, 당신이 재밌고, 당신에게는 다 주고 싶어 진다.
아무튼 내가 즐기는 유일한 일이니, 취미이다.
아님 말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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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무슨 생각으로 이 글을, 그것도 하필 여기에 쓰고 있는지 잘 모르겠다. 별로 깊게 생각하고픈 기분도 아니고.
그냥 기분이 허해서일까, 아니면 이 모든 것들을 알고도 손 내밀어줄 사람을 바라서일까.
후자라면, 평소 하던 대로 그냥 타르 한 덩이 들고 잡숴보실래요? 솜사탕이에요 하면 참 쉬울 것을, 왜 이런 수고를 할까 싶다. 스스로.
그렇지만 나는 이제 더 이상 내가 좋아하는 사람들에게 유해롭고 싶진 않다.
뷔페에서 '여긴 딱히 드실 게 없어요. 그냥 통에 담긴 타르입니다. 그래도 접시에 담아 가실래요?' 하면 누가 담아가겠냐만 싶지만서도,
한 편으로는 나도 똑같이 색동어린이집 다녔는데.
나도 한 번쯤은 그 크고 멋진 상자 받으면 안 될까.
남의 차례가 아닌, 내 차례에, 내 이름 앞으로 그 상자 주면 안 될까.
한 번쯤은 받아도 될 것 같은데 나도.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