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 글은 머더 미스터리 <어른이 되렴, 웬디>의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어른이 되렴, 웬디.'
약 두 시간의 플레이가 끝난 뒤, 엔딩북에서 낭독한 저 대사 한 줄에 목이 매였다. 다 큰 어른들끼리 노는 자리에서 눈 벌게져 울고 싶진 않아, 최대한 태연히 숨을 고르고 게임을 진행했다.
여운을 조금 더 즐길 수 있었으면 했지만, 어른의 세계는 음, 이런 거니까.
잠들기 직전의 지금에 와서야 혼자 조용히 곱씹어본다.
ㅡ
본인 자식을 먹여 살릴 돈을 위해 내 딸의 죽음을 은폐시킨 기자.
본인의 딸에게 꼭 맞는 장기이식 적합자라는 이유로 내 딸을 제대로 응급처치 하지 않은 의사.
갓 태어난 본인 자식의 미래를 위해, 내 딸을 차로 치여 죽인 사실을 덮어버린 내 조수.
각자의 자식을 위한 것이었으니, 하며 그 모두를 용서하는 기분도, 본인은 이제 썩어 문드러져 이 세상에서 사라지겠지만, 그럼에도 영원히 살아가야 할, AI가 되어버린 내 딸을 위해 그 모든 실험을 준비하였던 그 기분도 나는 모른다.
다만, 그 마음만은 이렇게 전해져 기분이 참 눅눅하다.
장마철, 곰팡이 그득 핀 방 한 구석에 쭈그리고 앉아 숨 쉬는 듯한 그런 눅눅함.
습한, 회색 빛 재질의 냄새가 코를 찌르는 그런 기분.
무너져 내린 거무죽죽한 천장 벽지를 애써 모른 척하며, 그 아래 위치한 가스레인지 앞에 서서 콧노래 부르며 즐거이 고기를 굽던 당신 생각이 나서,
퉁명스레 말 한마디 않고 머물다가 가도, 늘 저 멀리 점으로 사라져 보이지 않을 때까지 손 흔들어 주던 당신 생각도 나서.
비록 습기를 흠뻑 먹어 송골송골 곰팡이 피어버린, 더덕더덕 뭉쳐진 검은 얼룩들 사이로 간간이 보이는 그런 모습들 뿐이지만서도,
단 한 톨도 주어지지 않았던 칭찬들이, 꼭 가시 돋친 껍질을 벗겨야만 보이는 사랑들이 지저분히 엉겨 붙어 나오지만서도.
그럼에도 당신 생각이 나서.
그래서 나는 눈이 벌게지고 말아, 이 새벽에 이 글을 쓰게 되었다.
아직 뽀송뽀송한, 어디 하나 젖지 않은 기억만을 가진 너는, 그래.
어른이 되렴. 아주 멋진.
웬디.
응원한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