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체스 속 백색왕과 군주제의 상징성

체스이야기 (3)

by JINOC

중세 유럽에서 왕은 단순한 통치자가 아니라, 신이 선택한 존재였다. 왕권신수설(Divine Right of Kings)에 따라, 왕의 권력은 신에게서 직접 부여된 것으로 여겨졌다. 체스에서도 백색 왕이 반드시 보호받아야 하는 존재인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체스에서 백색이 항상 선공하는 것은 ‘선한 왕국이 먼저 움직인다’는 의미로 해석되었다. 백색 왕은 신의 가호를 받는 존재였으며, 그를 보호하는 것은 왕국의 의무였다. 반면 흑색 왕은 반역자의 왕, 혹은 이교도의 왕으로 여겨졌고, 그를 무너뜨리는 것이 게임의 목표였다.


체스는 이렇게 유럽 왕권 질서를 반영하는 도구였으며, 중세 군주들에게 정치적 상징성을 부여했다. 루이 9세(성 루이)는 체스를 즐기면서 ‘신이 선택한 백색 왕’을 자처했으며, 잉글랜드의 헨리 8세는 자신을 체스의 왕에 빗대어 절대적인 권력을 강조했다.


그러나 체스판 위에서 백색 왕만 존재하는 것은 아니었다. 맞은편에는 언제나 흑색 왕이 있었다. 역사는 절대적으로 흑과 백으로 나뉘지 않았고, 때때로 흑색 왕은 실제 역사 속에서 승리를 거두었다.


대표적인 사례가 **영국 내전(1642~1651)**이다. 당시 잉글랜드 국왕 찰스 1세는 자신을 ‘백색의 왕’으로 묘사하며, 반란군을 혼돈의 흑색 세력으로 규정했다. 하지만 결과적으로 그는 왕권을 잃고 처형당했다.


백색 왕이 반드시 승리하는 것은 아니었던 것이다.프랑스 혁명(1789)도 마찬가지였다. 루이 16세는 신성한 왕권을 지닌 백색의 군주였지만, 결국 단두대에서 최후를 맞았다. 혁명 세력은 기존의 왕권 질서를 뒤집었고, 체스의 백색 왕은 더 이상 절대적인 존재가 아니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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