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류의 흔적 [두번째 이야기] _ 백제시대 구구단 목간
한적한 박물관의 유물 전시관, 유리 진열장 안에 단정히 놓인 목간 한 조각이 눈길을 끈다. 이 목간은 바로 백제 시대에 만들어진 것으로, 고대 한국의 교육 수준을 엿볼 수 있는 놀라운 증거다. 자세히 들여다보면 숫자와 단순한 곱셈식이 빼곡히 적혀 있다. 그렇다. 이것은 구구단이다. "구구단"이라는 단어만 들어도 현대인들에게 떠오르는 건 어린 시절의 잔혹한(?) 추억일 것이다. 그런데 1500년도 더 된 백제 시대에도 아이들이 구구단을 외우며 머리를 싸매고 있었을 거라니! 이 놀라운 발견은 역사적 흥미와 함께 현대와의 연결고리를 제공한다.
백제의 구구단 목간은 단순한 나무판이 아니다. 당시 백제는 중국 및 일본과 활발한 교류를 통해 선진 문화를 받아들였고, 교육과 학문 발전에도 큰 관심을 보였다. 이 목간은 그 시대 아이들이 곱셈을 학습했던 방식과 교육의 일면을 보여준다. 나무에 직접 손으로 새겨진 구구단은 오늘날의 종이와 프린터 대신, 자연의 재료를 활용해 지식을 전달했던 백제인의 실용적인 지혜를 보여준다.
이 유물은 학문에 대한 백제인의 진지한 태도를 입증한다. 단순히 지식을 배우는 것을 넘어, 이를 체계적으로 가르치고 기록하는 문화가 형성되었음을 시사한다. 그러나 그 시절의 아이들 역시 "삼삼은 구, 삼사는 십이..."를 읊조리며 어른들의 압박 속에 공부했을 것을 상상하면 묘한 동질감이 느껴진다.
시간은 흘러 현대 사회로 돌아온다. 21세기에도 여전히 구구단은 초등학교에서 필수 학습 요소다. 이제는 손으로 새긴 목간 대신 화려한 애니메이션과 앱이 학습 도구로 사용되지만, 아이들의 탄식은 똑같다. "선생님, 왜 우리가 이걸 외워야 해요?"라는 질문은 시대를 초월한 공통의 외침이다. 그리고 그에 대한 어른들의 대답도 여전히 비슷하다. "이건 기본이야. 알아야 해!"
한편, 현대의 학부모들은 고대 백제 시대 부모들보다 훨씬 치열한 학구열을 보인다. 학원, 과외, 온라인 강의까지 동원하며 자녀들을 "학습 전투"의 최전선에 내몬다. 백제 시대의 부모들도 혹시 목간을 들고 "이건 반드시 외워야 훌륭한 사람이 될 수 있어!"라고 설득했을까? 아니면, "우리 애가 '칠팔에 오십육'을 외웠다! 역시 우리 집안 천재야!"라며 자랑했을까?
현대 사회의 교육 경쟁과 비교하면, 백제 시대의 목간 교육이 어쩐지 낭만적으로 느껴진다. 목간을 만들기 위해 나무를 자르고, 글자를 정성스럽게 새기던 과정은 단순히 교육을 넘어 삶 속의 예술이었다. 요즘 아이들이 애니메이션 구구단을 외우며 고통스러워하는 모습을 보면, 백제 아이들의 목간 공부가 조금 더 평화로웠을지도 모르겠다.
구구단이 우리에게 가르치는 것
결국 구구단은 단순한 곱셈표를 넘어 시대를 관통하는 상징이 되었다. 백제 시대의 목간과 오늘날의 디지털 학습 도구는 각각 그 시대의 문화를 반영하며, 지식을 전수하는 도구로써 동일한 역할을 한다. 그리고 한 가지 확실한 것은, 어느 시대이건 아이들은 공부를 싫어하고, 어른들은 그들에게 공부를 강요한다는 사실이다.
하지만 이렇게 생각해보자. 구구단은 단지 숫자의 조합이 아니다. 그것은 인류의 학습과 교육에 대한 열정, 그리고 이를 전수하려는 노력의 집합체다. 비록 아이들에게는 고통일지언정, 이는 세상의 이치를 배우는 첫걸음이다. 백제의 목간에서부터 오늘날의 스마트폰까지, 구구단은 시대를 초월해 지혜의 씨앗을 전하고 있다.
그러니 오늘도 자녀가 구구단을 외우다 "왜 해야 하냐"고 물으면 이렇게 대답해보자. "백제 시대에도 애들은 이걸 외웠단다. 너도 역사의 일부야!" 어쩌면 아이도, 우리도, 고대와 현대를 연결하는 이 유쾌한 고리를 조금 더 즐길 수 있지 않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