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 빅뱅.
어떤 것을 계속해서 나열할 때 그 사이의 순서에 따른 규칙이 있으면 좋을 것이다. 그것(a)에 따라, 세 번째 전개는 쇼팽의 에튀드(F. Chopin, Étude)이다.
나는 모차르트와 더불어 쇼팽이야말로 일반인 분들에게 가장 친숙한 작곡가이지 않을까?라는 생각이 있다. 이유는 딱히 모르겠으나, 그냥 그런 느낌이 맴돈다. 아마 그 유명한 녹턴의 영향이지 않을까 생각된다.
쇼팽의 별명이라면 '피아노의 시인'이다. 그 얼마나 아름다운 호칭인가? 이런 호칭이 붙을 만도 한 것이, 그의 음악들은 감수성이 흘러넘친다. 다른 작곡가의 곡들이 그렇지 않다기보다는, 쇼팽 특유의 목소리가 특히 관객들을 감성에 젖게 하는 그런 묘미가 없다고는 할 수 없을 정도의 양으로 나타나 있다.
그런데 반전이 있다, 대강 말하자면 쇼팽은 감성적으로 연주하면 안 된다는 것이다. 이게 뭔 말인가? 우리가 아는 쇼팽이 잘못되었다는 것인가?
놀랍게도 참이다. 대부분의 독자가 생각하는 쇼팽의 이미지는 잘못된 것이다. 문제는 필자가 오로지 글만으로 이것을 설득할 수 있는지에 대한 자신감은 좀 없다만, 그래도 한 번 자신감을 가지고 써내려 가보겠다.
글쎄다, 일단 내가 이것에 대해 자신감이 없는 까닭이란 무엇이냐 하면, 반문하려는 그 생각을 가진 사람들의 생각을 내가 누구보다도 잘 알기 때문이다. 심지어 대부분의 사람들은 듣기만 하지, 연주까지 하는 내가 그 생각을 모를 리 있겠나? 난 누구보다, 즉 나와 비슷하게 음악을 하는 사람이라면 당연히 그 생각을 직관적으로 잘 알 것이다.
그런데 내가 그 생각을 가졌을 때, 레슨을 갈 때마다 들었던 말이 있다. '쇼팽과 슈만은 베토벤 바로 이후, 즉 초기 낭만주의에 활동한 작곡가이기에 너무 음악에 젖어 감성적으로 연주하면 안 된다.' 글쎄 이걸 바디랭귀지도 없이 표현하려니 너무 어려워 설명을 덧붙이자면, 혹시 독자는 루바토(rubato)라는 것을 제대로 사용하기 시작한 작곡가가 누구인지 아나? 루바토라는 것은 —고급스러워 보이게 말하자면— 리듬을 늘려 음악의 긴장감을 조작하는 것이다. 그런데 루바토에서 가장 잊어먹으면 안 되는 것이, 늘렸으면 다시 당겨야 한다는 것이다. 늘린 만큼 당기니 결과적으론 박자에 영향을 주지 않는 게 이론적으론 맞다.
이 루바토를 제대로 사용하기 시작한 사람이 바로 쇼팽이다. 그렇다 보니 뭔가 루바토를 많이 사용하고: 음악에만 흠뻑 빠져 노래하고... 그런 것이 생각날 수 있는데, 그것은 틀린 것이다. 루바토를 사용하니 뭐니를 따지기 전에 먼저 생각해야 하는 것이 쇼팽은 베토벤 직후의 사람이라는 것이다. 베토벤은 고전주의 시대와 낭만주의 시대를 이어준 사람으로, 베토벤 직후라면 당연히 고전주의 시대의 향을 많이 가졌을 것이다. 그런 쇼팽을 너무 낭만주의 음악처럼 연주한다? 그건 음악사적으로 틀렸다는 것이라는 것을 인지할 수 있다.
그런 루바토 가득한 음악을 하려면 쇼팽보단 더 이후로 가야 한다. 적어도 쇼팽은 그런 음악을 생각하면 안 된다.
기껏 해봐야 30줄 정도 되는 글 가지고 완전한 반론을 제시하는 것은 쉽지 않아 보인다. 왜냐하면 그저 내가 그때 들었던 말과 거의 다름없어 보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좀 더 덧붙이자면, 내가 이것을 깨닫는 데까지의 경험을 좀 적으면 괜찮지 않을까 싶다.
내가 그런 생각을 할 때 즈음, 그때면 내가 한 학기에 한두 곡씩은 쇼팽 곡을 연습할 때였다.
그때 한창 위에서 내가 한 말을 레슨 갈 때마다 들었다. 쇼팽은 그렇게 너무 음악적으로 하면 안 된다... 너무 루바토 많다... 등등이다.
그런데 내가 그 말을 수긍하겠나? 독자여, 당신의 생각을 이리저리 쑤셔 반추해 봐라, 내가 저 말을 했을 때 "아~ 그런 거였구나!!"라고 소리치며 완벽하게 수긍을 할 수 있었나? 혹시나 그랬다면 내가 직접 찾아가 악수를 청하겠다.
나도 독자와 같은 생각이었다, '쇼팽이...?' 딱 이 느낌이다. 적어도 우리가 생각하는 쇼팽의 이미지는 그러하지 않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때면 내가 한창 루바토를 그리 잘하는 조성진의 연주를 많이 들었을 때라, 그가 루바토를 하는 면만을 바라봐 더욱이 그 말을 도저히 수긍할 수 없었다.
그 뒤 몇 개월이 지나고 난 쇼팽의 곡이라곤 에튀드만을 연습했다. 에튀드는 그런 것을 생각할 겨를 조차도 없다. 잊고 있었겠지만 이번 글에 에튀드에 대한 이야기도 포함될 테니 나중에 말하도록 하자.
그때 이후부터 지금까지 연습한 쇼팽의 곡은 오로지 100% 에튀드뿐이다. 난 진짜 정말로 오랜만에 쇼팽의 다른 곡들 좀 연습하고 싶다...
그리고 왜인지 그와 비슷한 시기 즈음 내가 에튀드를 제외한 쇼팽의 곡을 잘 듣지 않았다. 딱히 이유도 없고, 내가 그러고 싶어서 그런 것도 아니다. 그런데 아무튼 오랫동안 쇼팽 곡을 듣지 않았었다. 끽해봐야 다섯 연주도 안될 것으로 생각된다.
그리고 거의 1년 정도가 지난 뒤, 정말 오랜만에 쇼팽 곡을 들어봤는데, 그때서야 선생님께서 말씀하셨던 문장을 이해할 수 있었다. 그때의 감정은 이루 표현할 수 없다, 정말 고전이라는 75%의 아랫물이 나머지 25%의 윗물-낭만을 단단히 지탱해주고 있는 것이 느껴졌다. 마치 어릴 땐 이해 못 하던 영화를 나중에 이해하게 된, 딱 그 감정이다. 그때서야 진정한 쇼팽의 풍미를 느껴보고 쇼팽의 매력을 깨달은 것 같았다.
사실 난 피아노를 직접 하는 사람이다 보니 시간의 흐름에 따른 실력 상승에서 얻은 감각으로 깨달은 감이 크다. 그래서 클래식 음악을 듣기만 하는 사람들의 과정은 어떤지 모르니 이것이 얼마나 도움이 될지는 모르겠다. 어쩌면 난 아주 무의미한 일을 한 것일 수도 있으나, 그러면 좀 어떤가? 내가 쇼팽에 관해 처음 얘기함에도 가장 처음으로 꺼내는 이야기일 정도로 큰 가치가 있다고 생각하는데 말이다.
다 잊어먹어도, 수긍하지 못하여도, 이것만은 기억하라, 쇼팽은 낭만 속 고전이 아니라 고전 속 낭만이다. 만약 수긍하지 못하겠다면, 무식하게 쇼팽 음악 연주를 들을 때마다 떠올려 보내라, 나와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뛰어난 연주자가 당신과 나까지 상상할 수 없는 비범한 생각과 복잡한 과정을 거쳐 "내가 말한 것의 틀을 지키며 만들어낸 음악"이 지금 당신이 듣고 있는 음악이라고 말이다. 음악은 절대적이다, 즉 쇼팽 곡에서 내가 말한 것을 벗어날 일은 절대 없다. 벗어났다면 그건 —낮잡아 말하자면— 틀린 음악이다. 니가 뭔데 그렇게 말하냐고? 내가 그랬으니까. 그리고 아직도 그러니까.
물론 예외는 있다. 내가 이렇게 말했다고 엄청난 거장이 이 범주에서 벗어나게 연주하는 걸 봤을 때 욕을 마구마구 분사하면 안 된다. 그 사람도 그 나름의 이유가 있을 것이고, 약간 거장의 특권이라고 생각하자. 그래야 비로소 음악이라는 것이 완성될 수 있을 테고 말이다. 사실 보통은 그게 더 좋잖나?
이곳에서 쇼팽에 대한 말은 처음 꺼낸지라, 개인적으로 쇼팽에 대해 가장 크게 느낀 언덕을 주저리주저리 얘기하였다. 약간 길어진 감이 있는데, 일단 더 중요한 해설을 이어 나가 보자.
사실 필자가 말하는 것 중 더 중요한 것은 쇼팽의 '에튀드'이다. 나는 이미 다른 곳에서 이것에 대해 아주 다양한 방식으로 표현한 바 있고, 그에 따라 꽤나 애착도 가며 분명히 특별하게 생각이 되는 물질이다. 그러나 이것도 베토벤 소나타와 마찬가지로 모든 곡이 너무나 중요하기 때문에, 이미 좀 길어진 거 설명을 나눠서 하면 더 좋을 것으로 보인다. 곧 이 글은 '쇼팽'이 주를 이룰 것이다.
쇼팽이 작곡한 에튀드는 총 27곡이다. Op. 10에 12곡, Op. 25에 12곡, 그리고 Dbop. 36에 3곡이 있다. 이 중에서 중요한 것은 Op. 10과 Op. 25의 24곡이다. 나머지 3곡도 좋으나, 이 24곡만큼 중요하지도, 그리 연주를 많이 하지도 않는다.
쇼팽이 작곡한 에튀드는 꽤나 독특하다. 이것을 말하려면 에튀드에 대한 관점을 생각해 보아야 한다. 에튀드, 즉 연습곡 중 가장 유명한 예시를 뽑으라 하면 체르니와 하농이 있다. 동네 피아노 학원 가면 항상 들리는 그 체르니와 하농 맞다. 그게 무슨 곡인가? 손가락 연습곡이다. 하농은 오로지 100% 테크닉 연습, 체르니는 테크닉 연습에 약간의 음악을 넣은 것이다.
이 둘이 작곡한 에튀드의 연습 방법은 지금 생각해 보면 아주 무식하다. 당시엔 팔거치대가 있는 의자에 앉아 팔을 묶고 손가락 연습을 하는 그런 방법을 이용하였다고 한다. 이건 내가 생각해 보아도 그다지 좋은 연습 방법은 아니다.
그 이후에 등장한 게 쇼팽이 작곡한 에튀드이다. 그런데 한 번 비교해 봐라, 체르니와 하농이 작곡한 에튀드와 말이다. 뭔가 훨씬 더 예술 같은 음악이 보인다. 물론 시대의 차이도 있겠지만, 그것보단 쇼팽이 에튀드를 무대에서도 연주할 있을 만큼의 음악으로 만든 최초의 작곡가이기 때문이다. 에튀드를 오로지 테크닉만이 아닌, 음악적인 면을 결합해 예술적인 곡으로 승화시킨 사람이 쇼팽이라는 말이다. 쇼팽이 이런 새로운 관점을 선보인 뒤에 리스트, 라흐마니노프 등의 작곡가들도 연주용 에튀드를 작곡한 것이다. 즉 쇼팽이 연주용 에튀드의 선구자라는 말이다.
쇼팽은 동시에 또 다른 시도를 하였다. 여러 곡들인 묶인 에튀드라는 곡집에 스토리를 입히는 것이다. 그래서 에튀드들을 보면 마지막 음과 첫음이 같은 곡들이 몇 있다. 스토리가 있다는 방증이다. 그런데 아쉽게도 이것은 제대로 실현되지 못하였다. 후에 이런 스토리적인 면은 프렐류드(24 Préludes, Op. 28)에서 진정으로 선보이고, 에튀드에선 리스트가 이를 계승하였다.
이번에 소개할 곡은 F. Chopin Étude Op. 10 No. 1 in C Major이다. 쇼팽이 처음으로 작곡한 에튀드로, 필자도 연습했던 곡인데 왼손이 쉽다고 방심한다면 당신의 오른손이 조각조각 박살 날 것이다. 오른손의 아르페지오 연습 곡인데, 무지하게 어렵다. 대부분의 쇼팽 에튀드가 이러하다. 이것이 위에서 에튀드는 그럴 겨를 조차도 없다고 말한 까닭이기도 하다.
오늘의 연주자는 임윤찬. 다 아는데 말이 필요한가? 이만하면 됐다.
F. Chopin Étude Op. 10 No. 1 in C Major
"Op. 10 - No. 1의 도입부는 빅뱅 이후 수많은 별과 마주하는 느낌을 불러일으킵니다. 차갑고 광활하게 펼쳐진 곡에 압도되어 두려움과 경외심까지 동시에 느껴집니다."
- 임윤찬
혹시나 2화부터 지금까지의 숨겨진 장치를 발견했다면, 당신은 비범한 능력을 가지고 있다고 내 참으로 인정하겠다. 그러나 쉽지 않을 것이다, 참으로 그러할 것이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