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 3. 4. 뒤섞인. 난삽한. 괴상야릇한.
이번 화는 꽤나 복잡하다. 제목부터 이상하지 않은가?
아— 틀렸다, 사실 2화부터 이상하고 복잡하기 그지없다. 미리 말하자면 앞서 발행한 글들을 보지 않으면 이해 못 할 이야기를 할 것이다. 그러나 봐도 이해하지 못할 수 있다, 3화와 4화의 초반에 있는 a, 즉 이제 내가 설명할 난해한 장치를 해설할 테니 말이다.
1화를 쓰고 2화의 곡으로 무얼 선정할까? 일단 유명한 곡으로 하고 싶었기에 떠올랐던 곡이 바흐의 평균율 클라비어 곡집 1권의 1번이다. 뭐 여기까진 문제없다. 아주 자연스럽다.
그런데 1화를 자세히 본 독자라면, 3화에서 이상한 낌새를 느꼈을 수 있다. 베토벤 피아노 소나타 1번? 이거 일반인들 중에 아는 사람이 있는가? 그 유명한 비창과 14번(흔히 월광이라 부르는)이 있는데 뜬금없이 1번? 유명한 곡을 선보일 것이라 말했던 1화와 전혀 맞지 않는 흐름이다. 적어도 필자의 의도는 그러하다.
2화부터 4화까지에서 일맥상통하는 이야기가 있다. 바흐의 평균율, 베토벤의 피아노 소나타, 쇼팽의 에튀드. 이 세 가지는 피아노를 연마하는 사람이라면 평생 동안 연구해야 하는 서적이다. 정말로 죽을 때까지 끝없이 해야 하는 곡들이 바로 저 세 가지이다. 그러니까 죽기 직전에 누가 "베토벤 소나타 13번!"을 외치면 바로 피아노 앞에 빛의 속도: 약 30만 m/s로 달려가 끝내주는 연주를 들려줄 수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필자가 임의로 이것들에 대해 명칭을 붙여보자면 "3대 건반 악기 음악" 정도로 말할 수 있겠다.
2화에서 평균율 1권의 1번을 선정하니 저 3개의 곡집이 내 머릿속에서 촤라락 펼쳐졌다. 그러니까 내 입장에선 이 중요한 세 가지를 절대 빼먹을 수 없는 것으로, 굳이 난해하게 맨 앞 회차에 떡하니 박아버리는: 1화 후 제대로 이야기가 시작하자마자 약속을 태연히 박살 내는 만행 아닌 만행을 저지른 것이다.
"어떤 것을 계속해서 나열할 때 그 사이의 순서에 따른 규칙이 있으면 좋을 것이다.", 자연스레 스며든 것을 해설하기에 너무나 완벽한 문장이지 않나? 똑같은 게 3번 나오는, 음악에서도 난감하게 되는 상황을 들이대니 2~4화는 난감한, 이상한 화가 되는 것이다. 사회는 비정상인 9명과 정상인 1명이 있다면 정상인이 이상한 사람이 되니 말이다.
그런데 말이다, "어떤 것을 계속해서 나열할 때 그 사이의 순서에 따른 규칙이 있으면 좋을 것이다." 다들 알겠지만 이 문장에 색이 있지 않았나? 그 색은 너무나도 분명히 다른 색이었다. 2화부터 4화까지 각각 이것과 이것과 이것, 색깔이 기껏 해봐야 10개 있는데 그 10개에 내가 원한 색이 완벽하게 있었다. 무슨 의미인가? 저 색깔들에 의미가 있다는 소리겠다.
이건 스크리아빈(A. Scriabin)의 공감각적 사고에서 나온 건반들의 색채로, 그는 건반(음)마다 고유의 색깔이 있다고 생각하였다. 이 색채 음악을 따른다는 가정하에, 위에서 말한 화와 곡집에 해당하는 색깔에 대응하는 음을 찾아보면 각각 도, 솔, 시♭이다.
자, 이제 우리의 머리가 불탈 시간이다. 나도 이것을 이곳에서 설명하는 게 적절한지, 그리고 이걸 내가 왜 자초했는지에 대한 참으로 비범한 질문이 떠오르나, 뭐 일단 해보자. 덕분에 아주 독창적인 브런치북이 되어간다.
이것은 음악의 이론과 연관이 있으며, 음악을 전공한다면 꼭 배우게 되는 것이다. 이해하지 못하겠다면 이번 화에서도 곡은 빠지지 않았으니 글을 아래로 내려도 좋다. 근데 설마 내리겠나? 내가 아는 이곳은 그런 곳이 아니다.
음악엔 '음정(interval)'이라는 것이 있다. 음정은 음과 음이 얼마나 떨어져 있는지를 의미한다. 음정의 단위는 '도'로, 피아노 건반을 생각하면 쉽다. 예를 들자면 도와 솔은 5도, 파와 시는 4도, 그런 식이다. 같은 위치의 같은 음은 1도, 한 옥타브 위에 있는 같은 음은 8도가 될 것이다. 위 건반 그림을 참조하면 편하다, 음정을 생각할 땐 일단 흰 건반만을 생각하도록 하자.
이것을 이해하였다면 다음 설명할 것은 음정에서의 관계이다. 내가 처음으로 선정한 색깔이 도에 해당하는 색깔이지 않나? 곧 내가 도를 으뜸음으로 하여 설명할 것을 의미한다. 으뜸음이란 음계의 중심이 되는 음으로, 일단 복잡하게 알 필요는 없고 도가 중심이라는 것만 기억하자.
그리고 두 번째로 선정한 솔, 이것과 도 사이의 음정 간격은 5도이다. 그렇다면 아까 말했듯 도가 중심이기에, 도를 으뜸음, 그리고 솔을 딸림음이라 할 수 있을 것이다. 딸림음이란 으뜸음에서 5도 위에 있는 음으로, 이것은 음악에서 아주 중요한 의미를 지닌다. 여담으로 으뜸음과 위로 4도 관계, 즉 아래로 5도 관계인 음은 버금딸림음이라 부른다.
그런데 여기서 조금만 확장을 해보자, 화음이란 것으로 말이다. 화음이란 간단히 여러 음이 동시에 울리는 것을 말한다. 이 화음엔 3화음이라는 요소가 있는데, 으뜸음을 도라고 했을 때 3도 위 음과 5도 위 음, 즉 미와 솔을 도와 동시에 울린다면 그것은 도를 으뜸음으로 한 다장조(C Major)의 3화음이 되는 것이다. 이때 가장 아래 있는 음, 이 경우에는 도를 근음이라 부르고, 3도 위에 있는 음을 3음, 5도 위에 있는 음을 5음이라 부른다.
이걸 조금 더 어렵게 말한다면 3음이 으뜸음과 장3도, 5음이 으뜸음과 완전5도 관계라면 그것을 우리는 장3화음이라 부른다. 모르면 넘기자. 여기서 이건 몰라도 된다.
이 화음을 설명하는 까닭은 도, 솔, 시♭을 가지는 화음, 즉 곧 나올 7화음을 설명할 때 나의 입장에선 3음을 끼워 넣는 게 너무나 당연하기 때문이다.
여기서 좀 어렵지만 이것을 더 확장하여 버금딸림, 딸림과 연관시켜 본다면 다장조 음계에서 주요 3화음을 도출해 낼 수 있다. 아주 간단하다, 으뜸음을 도, 파, 솔로 가지는 화음을 찾으면 된다. 그러니 각각 도미솔, 파라도, 솔시레가 될 것이다. 다르게 말하자면 으뜸화음(도미솔)으로부터 4도 위의 화음(파라도), 5도 위의 화음(솔시레)이 각각 저렇게 되는 것이다. 사실 이건 여기서 몰라도 된다. 그런데 내 욕심은 언제나 과하기에 한 번 적어봤다.
그런데 하나 잊은 게 있지 않은가? 시♭, 이 친구는 꽤나 특이하다. 3화음, 즉 5도 위까지 음을 쌓는 것이 가장 일반적인 화음의 경우이다. 그런데 여기서 음을 하나 더 쌓는 다면, 그것은 으뜸음으로부터 7도 위에 있는 음(좀 더 자세히 말하자면 단7도 관계의 음), 즉 7음을 쌓을 수 있다. 그리고 7음을 쌓은 화음을 우리는 7화음이라 말한다.
이것들이 여기서 필요로 하는 음악 이론들이다. 그리고 문학적인 것과 더 말끔히 결합하기 위해 5도 관계에 대해 추가 설명을 덧붙이면 좋아 보인다.
아까 말했듯 음악에서 5도 관계란 무척이나 중요하다. 아주 많은 음악들이 1도-5도-1도의 규칙으로 만들어져 있다. 5도가 나온다면 1도를 부르게 되는 성질이 있다. 예를 들어볼까? 우리 모두가 아는 곰 세 마리의 마지막 세 음을 보면 미-레-도로, 이것을 3화음으로 연주해 본다면 아래부터 솔도미-솔시레-미솔도, 즉 1도-5도-1도가 된다.
이해가 되지 않는가? 또 하나 예를 들자면, 꽤나 유명한 곡인 베토벤 피아노 소나타 21번, ―흔히 발트슈타인이라 부르는― 이 곡의 1악장은 다음과 같이 끝난다.
약간 달라 보일 수 있으나, 가장 위에 음을 빼고 생각해 보자. 어차피 가장 아래 음과 같은 음이다. 그러면 오른손을 봤을 때, 미솔도-솔시레-도미솔이다. 뭔가 보이지 않는가? 1도-5도-1도이다. 첫 번째 음의 위아래 순서만 약간 바꾼 것이다. 왼손도 똑같다, 너무나 완벽한 1도-5도-1도 구조이다.
하나 더 해볼까? 1화에서 소개했던 베토벤 피아노 소나타 4번, 이 곡의 1악장은 다음과 같이 끝난다.
조성이 달라 다르게 보일 수 있으나, 약간만 생각해 보자. 이 곡은 E-flat Major로, 그렇다면 으뜸음은 미♭일 것이다. 이것으로 으뜸화음(1도)을 만들면 미♭솔시♭, 딸림화음(5도)은 시♭레파로 된다. 오른손을 봤을 때, 역시 1도-5도-1도를 따르고 있다. 세 음 중 첫음은 1도의 위아래 순서만 바꾼 것이며, 두 번째 음은 5도에 7음과 같은 음을 쌓고 순서만 바꾼 것이다. 마지막 음도 1도에 단순히 같은 음을 하나 추가한 것이고 말이다. 그리고 왼손을 보아라, 1도-5도-1도의 각각 으뜸음인 미♭-시♭-미♭가 나오고 있지 않나? 너무나 완벽한 1도-5도-1도이다.
5도의 중요성까지 알았다면 이 글의 1차 목적은 이미 끝났다. 이 지식들을 지금까지 왜 이리 설명하였겠는가? 주체를 잃지 마라, 바흐의 평균율은 도이며 베토벤의 피아노 소나타는 솔이며, 쇼팽의 에튀드는 시♭이리라. 그렇다면 이게 뭘 의미하겠는가? 지금까지 이 글을 잘 이해하였다면 너무나 쉽게 결론을 도출해낼 수 있다.
-바흐의 평균율은 건반 악기의 으뜸이며, 베토벤의 피아노 소나타는 그것의 연장이자 대담한 기둥이다. 쇼팽의 에튀드는 이것들을 받침으로 삼고 위대한 탑을 쌓은 것이다, 우리는 이것을 단 3가지 색깔로 표현할 수 있으며, 그것이 성립되려면 스크리아빈의 색채 음악이 필요하다.
그러기에 작은 프레이즈, 즉 2화부터 지금 이 화까지를 완성하려면 스크리아빈의 음악이 소개되어야 할 것이다.
지금 이 글에 어울리는 스크리아빈의 음악이라면 무엇이 있겠는가? 나는 당당히 후기 음악이라 답하겠다. 그렇다, 나는 또 한 번 1화 후 제대로 이야기가 시작하자마자 약속을 태연히 박살 내는 만행 아닌 만행을 저지를 것이다. 즉 나는 같은 만행을 두 번 저지른 멍청이로, 이 글은 멍청이가 쓴 아주 비범한 글이다.
이번에 소개할 곡은 A. Scriabin Étude Op. 65. 이 곡은 No. 1~3까지로 이루어진 곡이다. 스크리아빈의 후기 음악들은 아주 복잡하다. 멍청이 필자도 잘 모른다. 그런 곡을 지금 이 5번째 글에서 소개하는 대담성을 가진 사람은 내가 거의 유일하지 않을까? 그렇다, 필자는 이 세계에서 가장 대담하고 참으로 유일한 멍청이다.
오늘의 연주자는 블라디미르 소프로니츠키(Vladimir Sofronitsky). 내 첫 글에서 다뤘던 거장이다. 모든 것이 걸레 짜듯 뒤틀린 이 글의 마지막을 장식해 주실 것이다.
아, 그리고 스크리아빈의 후기 음악들은 자면서 듣지 마라. 악몽 꾼다. 경험담이다. 진짜 악몽 꾼다.
3화와 4화가 동시에 올라가는 사태가 발생하였는데, 위대한 베토벤 피아노 소나타, 즉 딸림음이 동시에 쇼팽의 에튀드, 즉 7음을 가져온다는 것을 표현한 것이다.
라며 포장하고 싶지만 그냥 실수다. 심심한 사과를 표한다.
복습을 해볼까? 위 파란색은 스크리아빈의 색채 음악에 따라 시를 의미하며, 그것은 시♭과 불협화음을 이룬다. 그러니까 난 완벽한 화음 속에 불협화음을 던진 것이다.